성리학을 생각함
나라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외국의 군대가 거리를 활보했고 기존의 질서는 효력을 상실했다. 평생을 나라와 성리학에 헌신한 늙은 사대부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임금에게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렸다. '내 말이 듣기 싫으면 이 도끼로 내 목을 치시오.'
위대했던 주자朱子의 나라는 이제 제 한 몸 가누지 못했지만 그러나 그 가르침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조선말에 이른 성리학의 사유는 매우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발전했지만 거기에는 이 세계의 질서에 대한 날카롭고 양보할 수 없는 신념이 내포되어 있었다. 철학적인 견해 때문에 당파는 나뉘었지만 충절忠節과 위국爲國에는 서로 다름이 없어서 충절에 방점을 찍은 이들은 절개를 지켜 목숨을 버리거나 은둔했고 위국에 방점을 찍은 이들은 재산을 털어 총칼을 구입했다.
명망있는 사대부를 중심으로 지역의 의병활동이 일어났다. 사대부들이 지역에서 존경을 받지 못했다면, 그리고 그들이 재산을 내놓지 않았다면 계층을 망라한 의병투쟁은 불가능했다. 상투를 자르고 안 자르고는 결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유가의 가르침은 그런 것의 고수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영어를 익히고 그 유용성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
성리학이 나라를 망쳤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단순히 한 가지 요인이 작용해서 500년을 존립한 나라가 망했다고 생각하는 건 생각하기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물론 국가가 힘이 없었고 성리학의 이념이 급변하는 세계를 다 담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 해줄 수는 없다. 조선을 망친 건 성리학이나 고종이 아니라 일본이다. 이 단순한 진실을 외면한 채 피해의 원인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찾는 오래된 습관은 자신의 존엄만을 해칠 뿐이다.
불꽃으로 살다간 조상들 덕분에 광명한 세상에서 산다. 하지만 어둠은 끊임없이 몰려오고 여차하면 광명의 불꽃은 꺼질지도 모른다.
내 몸은 단지 내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귀한 선물이다. 그 사실을 알면 내 몸을 함부로 망칠 수 없다. 이 나라는 조상들이 물려준 귀한 선물이며 후손들이 살아갈 터전이다. 반드시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 문화의 높은 힘을 이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