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누이는 이승훈에게 시집갔다. 이승훈은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3형제의 매부다. 정씨 가문의 장남인 정약현(다산의 아버지 정재원의 첫 부인 남씨 소생)은 이벽의 누이와 혼인했고, 그들 사이에 난 딸 정명련은 황사영과 결혼했다. 정약현은 이벽의 매부이며 황사영의 장인이다. 이가환의 누이가 시집가서 이승훈을 낳았다. 이가환은 이승훈의 외숙부이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공유하는 동시에 지식인들이었을 뿐 아니라, 중첩되는 혼인관계로 그 비전을 혈연화했던 친인척들이었다. 정약종, 이가환, 황사영, 권철신, 주진모, 이승훈은 모두 1801년 처형되었다." 김훈, <자전거 여행2>, 216p.
"형틀에 묶인 정약용, 황사영, 이승훈들은 살아 남기 위하여 서로가 서로를 밀고하며 울부짖었다. 정약용의 배교는 철저하고 거침없었다. 그는 주진모를 밀고했고 천주교를 색출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을 포청에 조언했다. 정약용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고 발뺌하자 이승훈은 자신이 정약용에게 세례준 사실을 폭로했다.
치욕은 완벽하고도 심도있게 무르익었던 것이다. 그후 18년의 강진 유배기간 동안 그는 자신의 생애의 한복판에 들어앉은 그 치욕에 관하여 침묵하였다.
자산(玆山)은 흑산(黑山)이다. 나는 흑산에 유배 있어서 흑산이란 이름이 무서웠다. 집안사람들의 편지에는 흑산을 자산이라고 쓰고 있었다. 자(玆)는 흑(黑)자와 같다. <자산어보 서(玆山魚譜序)> 정약전
흑산에 유배된 정약전은 그 아득한 섬의 물가에서 흑산바다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면서 16년의 세월을 보냈던 모양이다. 정약전은 어패류 생태학 개설서인 자산어보(玆山魚譜) 한권을 남기고 섬에서 죽었다." 김훈, <풍경과 상처>, 48p.
"정약전은 묻지 않는 창대를 편하게 여겼다. 창대는 섬의 사람이었고, 여기의 사람이었다. 서울과 권세를 묻지 않더라도, 삶은 가능할 것이었다, 창대의 얼굴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저녁의 적막은 힘들었고 마주 앉은 침묵은 더욱 어려웠다. 정약전이 말했다.
- <소학>을 늘 읽는가?
- 가진 책이 그 뿐이어서......
- <소학>은 어떻던가?
- 글이 아니라 몸과 같았습니다. 스스로 능히 알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 그렇지. 그랬겠어.
- 그렇습니다. 물 뿌려 마당 쓸고 부르면 대답하는 일이 근본이라고 했는데, 그 분명함이 두려웠습니다.
(중략)
- 늘 물고기를 들여다 보느냐?
창대가 웃었다.
- 세상을 직접 대하라고 <소학>에서 배웠습니다. 섬에 책이 따로 없으니......" 김훈, <흑산>, 116-117p.
양근을 잘라버린 서러움[哀絶陽]
노전마을 젊은 아낙 그칠 줄 모르는 통곡소리
현문을 향해 가며 하늘에 울부짖길
쌈터에 간 지아비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남자가 그 걸 자른 건 들어본 일이 없다네
시아버지는 삼상 나고 애는 아직 물도 안 말랐는데
조자손 삼대가 다 군보에 실리다니
가서 아무리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이정은 으르렁대며 마굿간 소 몰아가고
칼을 갈아 방에 들자 자리에는 피가 가득
자식 낳아 군액 당한 것 한스러워 그랬다네
무슨 죄가 있어서 잠실음형* 당했던가
민땅 자식들 거세한 것 그도 역시 슬픈 일인데
자식 낳고 또 낳음은 하늘이 정한 이치기에
하늘 닮아 아들 되고 땅 닮아 딸이 되지
불깐 말 불깐 돼지 그도 서럽다 할 것인데
대 이어갈 생민들이야 말을 더해 뭣하리요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는데
똑같은 백성 두고 왜 그리도 차별일까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워보네
<다산시문집 4권>
*잠실음형 : 남자는 거세(去勢)를 하고 여인은 음부를 봉함하는 형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