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owne Jun 11. 2021

헌 책 이야기

책이 늘 문제

내가 사는 책의 90%는 철학책이다. 그중 동양철학 분야가 80% 정도를 차지하는데 대략 이틀에 한 권 꼴로 책을 사지않나 싶다. 한 달로 치면 분량도 분량이지만 비용도 적지않다. 이 비용을 줄이는 방법 중의 하나는 헌 책을 구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헌 책을 구입하는 것이 꼭 비용 때문만은 아니다. 더 이상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을 구하는 방법이 헌 책 말고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동양철학서의 경우에는 중국책, 일본책 같은 것도 헌 책 사이트에 종종 올라오는데 직접 수입하는 수고로움을 줄일 수도 있고 가격도 싸서 횡재한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다. 또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는 고색찬연한 영인본 책들이 나오기도 한다. [퇴계전서]나 [율곡전서] 같은 책들 말이다. 이런 책들은 <예스24>나 <알라딘> 같은 곳에서는 구할 수 없다.


구입을 하고 보면 헌 책이라고 꼭 누가 사용했던 것만은 아니다. 창고같은 곳에서 오래 잠자다가 헌 책으로 풀리는 경우도 꽤 많아서 실제로 구입하고 보면 거의 새 책인 경우도 많다. 이젠 구할 수 없는 책을, 실제보다 저렴하게, 새 책 수준으로 산다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는가.


헌 책을 사다보면 재미있는 경우도 많다. 가령, 어느 저자가 누구에게 친필 서명하고 기증한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도 하는데 얼마전에 산 책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 학자가 모 정치인에게 선물한 책이어서 깜짝 놀랐다. 그 정도 사회적 지위가 되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선물받은 책을 헌 책으로 팔았을까.(어쩌면 본인이 판 것이 아닐지도) 책 중간에서 1만원 짜리 지폐가 나온 적도 있었고 전화번호를 메모한 쪽지가 나온 적도 있다. 그 책을 내놓은 사람은 나중에 그 전화번호를 애타게 찾았던 것은 아닐까. 또, 도서관 직인이 찍힌 책들이 입수되기도 하는데 처음엔 누가 훔쳐다가 팔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꼭 그런건 아니고 도서관에서 책을 폐기하는 경우에 그렇게 흘러나오기도 한단다.


본인들은 알 것이다~

책에 따라서는 가격이 새 책보다 더 비싼 경우도 흔하다. 그러니까 나름 명저같은 경우는 서너배 비싸게 나오기도 하는데 그 값을 주고도 저 책은 꼭 소장해야해, 라는 생각이 들어 구입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하지만 얼마 후 기적같이 개정판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초판을 소장한다는 허탈한 자부심에 기댈 수 밖에)


이렇게 구입한 책들을 다 읽지는 않는다. 물리적으로 그럴 시간도 안되고 책의 특정 부분만 보기 위해 사는 경우도 있다. 또 꼭 지금 볼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가지고는 있어야 할 책이라는 판단 때문에 사기도 한다. 때로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떡볶이를 먹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책을 사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구입한 책들을  쌓아둘 방법이 없다는 인데 방이 뺑둘러 책장인 것은 물론,  책장에도 2, 3중으로 책들이 쌓여간다. 쌓여가는 책들을   드는 생각은  하나다, "죽기전에    있을까."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다음처럼 분류가 가능할 듯도 싶다.


1.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책

2. 지금은 아니지만 죽기 전엔 꼭 볼 책

3. 볼 것 같지는 않지만 절대 방출 할 수 없는 책

4. 볼 것 같지도 않고 결국엔 방출해야 할 책

5. 무의미한 책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책이 쌓여가는 것이 내 머리속이 풍요로와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카멀라 해리스에 대한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