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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Feb 29. 2016

<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

천재적 사유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한 인간의 사상이 아무리 독창적이고 천재적이라 해도 그것이 우주공간의 진공상태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분명 시대와 역사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도 예외는 아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먼저 19세기말 오스트리아-헝가리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인 빈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과학의 지형도를 보여준다. 제국은 늙었고 곧 세계사적 변혁의 기운이 싹틀 판이다. 세기말적이고 부르주아적인 허위의식과 퇴폐의식이 늙은 제국의 분위기를 장식할 때 일단의 사상가들과 과학자들, 예술가들은 낡고 진부한 장식들을 걷어내고 '실증주의'로 무장하여 새 사조의 개척에 나선다. 바로 그 지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탄생했고 성장했다.

이 책의 미덕은 19세기말 빈의 사상적 흐름과 전개를 상세하게 보여주면서 그것과 아울러 비트겐슈타인 철학에 있어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지점, 그 자신이 그토록 강조했음에도 러셀조차 오해했던 지점, 즉 논리가 아닌 윤리,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닌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사상적 연원에 대해 일관된 안목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초월적인 실존주의와 톨스토이적 윤리가 실은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논고>에서 말하고 싶었던 핵심적인 것이며 그것은 명제적 표상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서 논리적으로는 무의미한 것이지만 그 가치는 결코 말로써 형언할 수 없다는 것, 바로 그것이 그가 <논리철학논고>에서 말하고 싶었던 점이란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진정 새로운 철학으로 낡은 철학을 대체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철학 자체를 종식시키고 싶었던, 그래서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들은 형이상학적으로 이러쿵저러쿵 말해 질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보이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 그의 태도는 구도적이고 수행자적이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을 좋아했던 면에서 우리는 그의 논리적이고 실증주의적인 모습을 본다. 하지만 권선징악의 서부영화를 좋아했고 타고르의 시를 좋아했던 면에서 우리는 그의 윤리적이고 초월적인 풍취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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