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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Feb 29. 2016

나를 설명 (못)하는 일..

나는 누구란 말인가

작가, 디자이너, 크리에이터, 사진, 여행, 글쓰기, 음악, 영화, 독서, 문학... 많은 사람들이 저런 단어들로써 자신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설명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니, 저런 단어들로써 자신이 설명되는 사람들이 많은 곳(브런치)에 내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하더라도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이 뭔지는 모르겠다. 창조자? 뭘?

나도 생각해 보았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인적사항 빼고, 개인적인거 빼고, 이것빼고 저것빼고... 하니 딱히 할 말이 없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해서인가. 그럴수도 있다. 그냥 가볍게, 가볍게 뭐? 난 뭐지?

신춘문예에 당선된 적이 있다는 사실로 '문학'이라는 말과 나를 엮고, 그걸 나에 대한 설명이라고 말하는건 일종의 왜곡이다. 문학이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라 사실관계가 그렇다. 문학에 대해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어떻게 나를 설명한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문학과 관련된 행위/사유를 (거의) 하지 않는다. 밥벌이를 말함으로써 내가 설명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건 나를 설명하는게 아니라 지칭하는 행위에 가깝다. 가령 '종로구청 교통계 아무개'라고 해봐야 (내가 실제로 저 곳에서 일한다는 건 아니고) 그건 나를 설명하는게 아니라 나를 가리키는 행위일 뿐이다.

'자기소개'와 '나를 설명하기'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철수를 설명하는 것과 철수를 소개하는 것은 비슷한 일일까. 글쎄, 그건 단지 소개와 설명이라는 용어의 쓰임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 당신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모세의 질문에 신은 "나는 나다("I Am That/Who I Am")"라고 대답한다. 신이 던진 저 대답은 마치 푸른 하늘을 설명해보라는 말에 '푸른 하늘은 푸른 하늘이지'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혹은 우파니샤드의 어법을 빌려 '철수는 무엇이 아니다, 무엇이 아니다'하는 식으로 나열해보아도 철수가 설명되지는 않을거 같다.



결론은, 내가 누구라고 자신있게 말할 자신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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