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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Apr 05. 2016

금강경, 해방의 텍스트

वज्रच्छेदिकाप्रज्ञापारमितासूत्र

반야경전군群에 속하는 금강경, 반야심경은 우리나라 조계종의 핵심 경전이며 대승불교, 선불교의 중추가 되는 텍스트들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조계종 사찰들이 밤낮없이 독송하는 반야심경은 팔만대장경의 가르침을 단 몇 글자로 압축해놓은, 그야말로 핵심 경전(heart sutra) 이다.


반야심경을 다 읽는 건 5분이면 족하다. 한문으로 260 글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반야심경은 외계어나 다름없다. 한문 해독이 문제가 아니라 고도의 압축과 추상성 때문에 해설서가 곁에 없으면 반야심경은 그냥 글자 무더기일 뿐이다.


하지만 금강경은 좀 다르다. 첫 장면을 열면 부처님이 식사하시고 자리에 앉아 설법하시는 정경이 펼쳐지면서 제자들과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반야심경에서 압축적으로 묶여있던 내용들이 풀어서 전개된다.


금강경은 해방의 텍스트이다. 금강경을 읽다보면 온갖 도그마로 분칠됐던 마음의 더께가 벗겨지며 동굴에서 뛰쳐나오는 경험을 한다. 중국 선불교의 슈퍼스타 혜능도 금강경의 한 구절을 듣고 깨우침을 얻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비숫한 경험을 한다. (나도 처음 금강경을 읽고 뇌의 배선들이 재배치되면서 3일 동안 발이 땅에 닫지 않았었다.)


금강경의 가르침은 급진적이고 파괴적이다. 하지만 각종 편견과 신념으로 화석화된 마음을 돌이키는 일은 급진적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니체는 '진리는 미풍처럼 오는 것'이라고 했지만 진리는 때로 벼락처럼 닥친다. 사실 '금강'은 원래 산스크리트어로는 바즈라, 곧 벼락이란 뜻이었다. (그 뜻이 너무도 고귀해서 중국사람들은 그것을 벼락이 아닌 보석, 다이아몬드로 해석했다. 대륙답다.)


반야경전은 다음처럼 말한다.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은,

1. 행함을 받아들이지 않고

2. 행하지 않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3. 행하고 행하지않음을 또한 받아들이지 않으며

4. 받아들이지 않음을 또한 받아들이지 않으며...

*『대품마하반야바라밀경』참조


같은 반야경전 그룹에 속하는 능가경에서는 다음처럼 말한다.

어느 날 깨달음을 얻은 때로부터 어느 날 열반에 들 때까지 나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말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의 말이다.

*『능가아발다라보경』참조


보기에 따라선 기이하고 충격적인 언어들이다.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매사를 부정하는 듯한 '~않고, ~않으며' 하는 말이나 '말하지 않는 것이 말'이라는 말은 뭔가. 왜?


사유 가능한 모든 사태의 논리적 가능성과 언설의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해서이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논리의 한계는 언어의 한계이고 사유의 한계이다. 논리와 언어와 사유는 동일한 볼륨을 갖는다. 반야경전의 저자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 따라서 논리를 먹통으로 만드는 일은 곧 언어와 사유를 먹통으로 만드는 것이다. 언어의 길을 끊어 버리고(言語道斷) 사유의 작동을 중지시키려는(不可思議) 목적이 아니라면 저런 반야경전의 표현은 납득될 수 없다.

반야경전의 언어는 현대 기호논리학에서 말하는 배중률이나 모순률의 위반을 내포하고 있다. 논리가 허물어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원효는 그것을 '억지로' 말하는 것이라고 했고 말로써 말을 여읜다(依言離言)고도 했다. 한술 더 떠서 능가경은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의 말'이라고 했다.


저런 마인드에서 염화미소니, 불립문자니 하는 선가禪家의 말들이 나왔다. 개구즉착(開口卽錯; 입을 열면 이미 틀린 것)이라는 말도 한다. 세상의 어떤 종교와 이념도 불교처럼 자신의 자취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던 경우는 없었다.


왜 반야경전은 마음의 논리적 작동을 먹통으로 만들어 입을 틀어막고 사유불능 사태를 만들려고 할까. 왜?



왜?


불광사, <대품마하반야바라밀경> (上)


티베트 여행중에 구입했던 금강경. 인쇄상태가 조잡해서 점점 바래지고 있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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