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다 내 것이 되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 여유로운 산책을 한다.
나는 언제나 평일을 사랑했고, 특히 평일 오전의 평화에 감탄했다. 북적대며 정신없이 흘러가버리는 주말에는 좀처럼 집 밖으로 나가기 두려웠다. 평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평일 오전에 집을 나서면 어느 곳이든 한가하다. 그럴 때면 발걸음도 가볍고 경쾌하다. 아직 평일 한낮의 평화로움을 맛보지 못했다면 기회를 만들어 한번 걸어봤으면 싶다. 출퇴근길, 주말에만 느꼈던 동네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단지 회사 하나 관뒀을 뿐인데 갑자기 일주일이 다 내 것이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평일이, 평일의 낮이 온전히 내 것이다. 배워보고 싶었던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구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에는 다양한 강좌들이 있는데 재밌는 건 모두 평일 오전 반이다. 퇴사하자마자 두 개의 강좌에 수강등록을 했다. 화요일 오전과 금요일 오전, 매주 나는 그곳에서 동네 사람들을 만난다.
더 이상 영화 볼 때 시간표에 구애받지 않는다. 어떤 시간에 어디서 상영한대도 볼 수 있다. 친구와의 약속도 언제든지 잡을 수 있다. 내일 볼래? 갑작스러운 제안에도 흔쾌히 수락할 수 있다. 훌쩍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내키면 하루 더 놀다 와도 된다. 백수가 누릴 수 있는 무한한 자유에 흠뻑 빠졌다.
내일은 뭐 할까? 즐거운 생각에 잠긴다. 아, 그 미술관에 새로운 전시가 재미있어 보이던데 거길 가볼까. 거길 갔다가 그 근처에 저장해 둔 초밥집을 가도 좋겠다. 혼자 하루의 계획들을 세워 본다. 그리고 그 계획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고 그렇다고 해도 나의 하루는 여전히 나의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다. 퇴사한 이후로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한낮 동네를 산책하듯 걷고 있자면 다정하고 행복한 풍경들이 자꾸 눈에 띈다. 짝꿍과 손 잡고 줄을 서서, 조잘대며 선생님 따라 이동하는 유치원생들. 짐을 들어주러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다 서로를 맞이하는 노부부.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닌 채 뒤에서 숨죽여 따라가고, 발견하면 까르르 웃음 짓는 연인들.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하다 잠시 멈춰 서서 길가의 장미꽃 향기를 맡는 중년의 아저씨.
내가 마음이 여유로워서 그런 풍경들이 보이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한가할 수밖에 없는 시간대라 그런 풍경들이 펼쳐지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출퇴근길 전쟁통에 그런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는 쉽지 않다.
나는 미뤄뒀던 집안일들도 하나씩 처리한다. 이를테면 작년 코펜하겐 여행 때, 루이지애나 미술관에서 구매하고 캐리어에 어렵게 담아서 가져온, 돌아와서는 집 한구석에 박아두고 거치적거리기만 했던 포스터들. 근처 화방에 가져가 표구작업을 맡겨서 걸어둔다. SNS로 팔로우만 해두었던 채소시장도 방문해서 채소를 한 아름 사 온다. 그곳에서 사 온 냉이로 냉이 된장찌개를 해먹는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동네 꽃집에서 꽃을 한 아름 사와 꽂아둔다. 그것만으로 금방 행복해진다. 이런 잔일들을 하다 보면 일주일이 금방 가버린다. 물론, 마음 한편에 작은 불안감은 있다. 이 불안감이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아직 불안감이 작게 움츠리고 있을 때, 이 여유를 즐겨보기로 한다.
2024년 2월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