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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Jun 12. 2023

골든벨

울리지 말아야 할 것들



공원 근처에 살았을 때에는 햇빛이 좋은 날에 공원 벤치에 앉아 글을 쓰곤 했다.


흔하디 흔한 검은색 제도샤프를 눌러 심이 나오게   다시 넣고 5번을 연달아 딸깍 인다. 그렇게 길게 뽑힌 샤프심으로 힘조절을 정성스레 해가며 샤프심이 부러지지 않게 집중하며 글을 썼다.


언제부터 그렇게 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다른 것들도 거의 이러한 느낌으로 무언가에 집중해야    가지의 부정적인 제약을 나에게 부여하는데  페널티들을 이겨내고서 수행하는 무언가는 그저 평범하게 집중할 때보다  배는  집중이 되었다.




가끔은 지인들이 연락 와서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을 때 '너무 힘들고 지치는 일이 많아'라고 하고 싶다. 정말로 힘들고 지치는 일이 많다는 게 아니라 복에 겨운 소리지만 그런 일들이 없어서 안 해본 지 오래기에 그렇다.


 잔잔한 삶을 추구하고 무탈하고 평온한 물에 잠갔다가  전분물 같은 일상을 집착이다 싶을 정도로 유지하고 있는 나는 감정소모에 무척이나 힘들어한다.


그래서 지금은 정말 해야  상황이 아닌 이상은 감정소모를 하고 싶진 않지만 예외는 항상 있고  주연이 아닌 농도를 맞추거나 반죽의 겉면을 바삭하게 해주는 용질정도이기에 라는 생각으로 감정소모를 줄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나는 호환성이 좋은 편이다. 어떤 누구와도 대체가 가능하고 대체하지 않더라도 굳이 나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럴 필요가 있다면 그건 가족이나 연인정도의 친분이여야지 가능하다. 다른 이들이 그렇다면 그들은 한 가지의 재료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다양한 활용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장인이거나 혹은 정말 심각한 수준의 전분콜렉터 정도가 아닐까라고 지레짐작 중이다.


이성적인 사람은 공감을 잘하지 못한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바이다. 그건 아마 당신이 정말 이성적이지 않거나 이상적인 척하려고 하는 무례한 사람을 만나 이런 말들이 나온 거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누군가가 감정으로 공감을 원하면 이성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공감을 하면 가장 효율적인지 어떻게든 찾아내는 게 정말 이성적인 사람이다.


감성에 젖어 같이 눈물 흘려주는 것이 합당하다 생각하면 그렇게 할 것이고 묵묵히 들어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생각하면 그렇게 할 것이다. 사실은 당신들이 감성에 호소하기 전에 대부분의 상황들은 미리 만들어 놓은 수십 가지 공감 알고리즘 안에 하나를 끄집어내 당시의 시놉시스에 일일이 대조하여 짜 맞춰 가장 높은 수의 결과값으로 다시 제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딱히 해줄 말은 없다. 하지만 나도 슬픈 영화를 보면 운다.


이렇게 모든 걸 상정범위 내의 알고리즘 내에서 해결하는 나는 흔들리거나 무너질 일이 없었고 학창 시절에는 실패하는 법을 찾으려 노력하기까지 할 정도의 시건방진 태도로 일관하여 어느 순간 현실에 찌들어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과 당이 떨어진다는 것에 아직도 이해를 할 수 없긴 한데 후자의 경우는 제쳐두고 전자의 경우 남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자존감이 너무 가득 차 때론 건방져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너무 차고 넘치는 자존감이 조금 깎여나가도 티가 나지 않을 정도의 미미함이었고 나의 가장 크고 두터운 무쇠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이걸 잘 다루기 위해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자존감으로 중무장해 외부의 침입에도 잔잔한 삶을   있었다.


그러나 두터운 무쇠로 만든 종의 내부는 비어있었고 울려대는 종소리와 쿵쿵 울리는 자그마한 진동은 어쩔  없었으며 나는  작은 파동에도 머리가 울릴 정도로 불안해했다.


나는 아마 대체되길 바라는 걸지도 모르겠다. 젤라틴,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등 나를 대체할 것들은 수두룩 하였고 내가 그것들에 비해 좋거나 우수한 점을 찾기보다는 나는 그저 내가 강한 내리침에 단단해지고 부드러운 수저질에 자연스레 떠지는 전분을 택했기에 이기적 이게도 주위와의 관계에서도 나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기적 이게도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라 나의 잔잔함을 깨지 않아주었으면 한다. 가끔 재미가 없어 내가 나를 를 뒤흔들긴 하지만 그건 내 세계와 내가 동시에 일정주기로 흔들려 항상 수평을 유지하기에 역학적으로는 잔잔하다고 볼 수 있지만 누군가는 나를 재미로 흔들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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