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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Jun 13. 2023

이타적 무단투기

죄책감 스티커 미부착



양손에는 와인을 먹기 위한 잔과 병이 들려있고 이 시간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강근처 벤치에 앉아 무척이나 한가로운 새벽을 보내려 한다. 내일의 영감을 또는 당장 오늘의 기억으로 조합해 낸 메타포를 위해.


작곡을 하는 건 꽤나 쉬운 일이다. 아무렇지 않게 사랑을 이야기하고 무심하게 아파하며 당연하게도 헤어지면 그만이다. 예술가들이 바람과 대마를 피우는 것에 대한 가십거리는 나에게는 그저 카페에서 커피냄새가 나는 정도의 이해가 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도덕성이란 우선적으로 내가 맞닥뜨린 이 것은 나의 예술성과 영감에 한해 당시 대립되었던 성스러운 어떠한 것이었고 나는 CCM은 작곡하지 않을 것이기에 당차게 도덕 시험지에 '결여'라는 도장을 두세 번 빨갛게 찍었다.




어릴 적부터 독실한 기독교 부모님들의 열렬한 지원덕에 나는 주말과 크리스마스에는 항상 교회에서 살았고 그렇게 나 또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23살이 될 무렵 나는 어떠한 계기로 인해 교회를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히도 그렇게 가꿔지고 꾸며졌던 청소년기에 반항이라도 하듯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닌 그저 단순히 친구들과 바다로 놀러 가는 것 그것뿐이었다.


교회에 가지 않으면 천벌을 받고 지옥에 떨어지고 사지가 찢기는 고통을 죽어서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아마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망상증 학창 시절 대인관계에 대한 콤플렉스까지 겹쳐져 청소년 때 가질 수 있는 사회집단인 학교에서 마저 사람을 믿지 못하였다.


그래도 항상 믿는 신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최전방에서며 그의 자애로움에 보답하고자 그가 머문 곳의 바닥을 닦았다. 모든 게 맞아 떨지긴 했지만 나에게 비빌언덕이라곤 그 십자가 아래 세 단계의 계단 중 가장 아래계단 두 개의 평행한 직선 중 가장 아래 꼭지점이였기 때문에 항상 올려다보며 그를 찬양했다.


그나마 나를 괴롭히지 않은 친구들과 함께 바다에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이전부터 그 무리 속에서도 겉도는 느낌이 있던 나는 새로운 언덕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걸 내가 개척하기 위해 간절함이 내면에서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렇게 나는 새로운 언덕을 찾아 신을 저버렸다.


물론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엄청난 폭언과 함께 사탄의 앞잡이 수준의 처우를 당했지만 그렇게 저버린 신념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더 이상 비빌곳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더 높은 언덕을 찾아 헤매는 언덕결핍자가 되었다. 간절히 바라는 건 신뿐만이 아닌 내가 기준이 된 삶이라는 것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언덕을 찾아다니며 개척자 콜럼버스처럼 노래구절로 길고 예정 없는 하지만 실체는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 한없는 여정을 달랬고 그렇게 작곡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 양쪽을 실현시키려면 어쩔 수 없는 처사이기도 했다.


저버리는 것에 익숙해진 나는 어느새 죄책감이라는 항목에 다다랐고 평범한 인간이고 싶었던 나는 입구가 좁은 소스통에 넣어 필요할 때마다 넓고 얕게 짜서 겉치레 정도로 죄책감을 표현했다.


그렇다고 잔인하거나 비인간성이 짙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가 예술을 행할 때 그때 만이라도 적어도 내가 언덕을 찾는 여정 중에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에 담긴 것들이 제한이 없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악어가죽을 벗기고 곰의 담즙을 빨아먹으며 새치기를 하겠다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이제 그가 없이도 완벽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하며 착해야 한다.


작은 언덕, 큰 언덕이 연속되어 어느샌가 요새와 같은 산맥이 이루어질 때 나를 위한 견고하고 강인한 성벽이 보이고 내가 그걸 발견했을 때 그때엔 그 안에서 속죄하고 뉘우치겠다. 그전까지는 어려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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