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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Jun 15. 2023

고깔모자를 쓴 당나귀

탈부착식 뿔과 다인승 유니콘



슬픔과 외로움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애써 묻어둔 이야기를 내 입으로 내뱉어 나를 나를 다시 괴롭히기 싫었고 그로 인해 나를 공감해 준다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나와 같은 감정 혹은 비슷한 감정이라도 가지게 하기 싫었던 나는 그 누구보다도 주위사람들을 위해서 굵은 선을 그어 나의 감정들이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막아냈지만 그 굵은 선은 밖에서 보았을 때 그늘져 더욱 커졌고 그들은 애석하게도 선의 그림자에 가려 허둥대며 선을 덧칠하는 나를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선을 긋다 보니 나는 선을 긋기 편하게 머리에 기다란 뿔을 박아 일각수가 되었고 간단한 고개저음으로도 선을 그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성장하면서 선의 깊이 또한 깊어졌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의 길게 뻗은 뿔을 가로저을 뿐 그 이외엔 없었다.


그 뿔은 안으로도 깊어져 내 안에 점점 들어와 나와 하나가 되었고 더 이상 선을 긋는 뿔갈이를 하지 않으면 머릿속이 더욱더 아파왔다. 그렇게 외로이 고개를 가로젓다 보니 자연스레 가로저음 들이 나를 잠식했고 어떠한 것에 끄덕이기가 힘들었다.




나는 결국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그 순간부터 나는 외로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며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지금도 물론 상대적으로 어리겠지만 정신적으로 어리던 그 시절 나는 유독 친구들과의 관계를 넓게 가지는 것을 좋아했다. 심지어는 이 지역 저지역에 무리들을 하루에 2~3번 정도 시간별로 만날 정도로 사람을 좋아했는데 그렇게 사람과 사랑이 많은 곳에서 자란 나는 대인관계의 유지에도 꽤나 소질이 있었던 편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백 명이 넘어가는 친구들을 왜 그렇게도 일일이 소중하게 챙겼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정이 많아 그런 듯싶었지만 그때의 나는 꽤나 냉철하고 칼같이 못된 인연들을 잘라내는 아주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때는 어리기도 어렸기에 잘잘못을 따지기도 어려웠고 그저 내 눈 밖에 난다면 그대로 급급히 잘라대기 바빴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많았기에 그렇게 잘라내도 나는 혼자일 수 없었기에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시간이 흘러 어리숙한 성인이 되어버린 나는 고작해야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남게 되었고 슬슬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을 지켜야만 했다.


어려서부터 나보다는 남에게 베푸는 걸 좋아한 나는 남들을 관찰하고 예상하는 걸 즐겼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그것이 눈치로 바뀌게 되었다. 누구든 본인의 나약한 모습이나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걸 알지만 유독 친구들을 이끌고 조율하는 위치에 자리했던 나는 병적으로 그런 모습들을 감추었고 경조사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친구들 앞에선 눈물 한 방울 흘린 적이 없다.


그렇게 항상 멋있는 모습을 보여야 했고 외로움마저도 나에게는 못난 모습이었기에 나는 무조건 외롭지 않았어야 했다. 신기하게도 만남의 기회가 없었다고 자부하지만 꽤나 많은 연애 횟수를 가진 나는 사실 어떠한 관계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만남의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아무나 만나지는 않았는데 조금 재수 없긴 하지만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 미리 채가는 거라고 한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내가 만약 힘들거나 슬플 때 혹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때 마저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당찬 모습이었고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항상 나는 외로웠고 슬픈 일이 나를 옥죄이고 있었으며 참을 수 없는 힘듦이 새벽녘 밤공기를 타고 들어와 나에게 속삭였다. 그렇게 아프고 병들어버린 나를 보곤 '절대 이 모습은 보여줄 수 없어'라고 생각했다.


숨기는 것에 익숙해 지자 나는 스스로 상상 속의 동물이 되어 숲 속으로 숨었고 가끔 꿈인 듯 나타나 친근하게 이야기하며 재밌게 놀고 마시지만 다음을 기약하기에는 어디에 사는지도 언제 올지도 모를 유니콘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내 등 위에 올라타 나의 행동과 시선이 일치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나를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애초에 나는 30인승 고속버스가 아니거니와 시간마다 제깍제깍 오는 순환제 운행수단이 아니다.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기는 싫다. 차라리 내던지고 느긋한 소로 살겠다.


언젠간 머리에 박힌 뿔을 뽑아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박아놓은 후 해시계 정도로 쓰고 싶다. 그때는 숲이 아닌 마구간에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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