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own Jun 16. 2023

추미상관구조

오레오가 맛있는 이유



미학에 대해 심도 있게 파고 들어갔던 어느 날 나는 길바닥에 짓이겨지고 심지어는 누가 밟았는지 필터가 터져 찢겨있는 담배꽁초를 보고는 '꽤 나쁘지 않은 피사체인데?'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추'의 세계가 나의 아름다움의 한켠에 자리 잡았다.


더럽고 악하며 질퍽이는 그것은 오히려 다른 아름다운 것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하였고, 더 나아가 그대로 하나의 아름다움이 되어 원래의 깨끗하고 정갈했던 것들과 상반되었다.


그 둘은 철저히 대립되어 어느 곳 하나 서로 침범할 수 없었고 그렇게 멋과 추의 공존이 나의 미의 기준이 되었다.




'예술 같은 다비드상과 그걸 조각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허리굽은 대머리의 못생긴 노인'이 중 어떠한 것이 더 아름다운가?


당연히 둘 다 아름답다. 그럼 예시를 바꿔 이야기해 보겠다.


'꼽추의 대머리인 추한 얼굴을 가진 노인을 조각하는 다비드상을 닮은 조각미남'이 중 어떠한 것이 더 아름다운가?


일반화하기는 싫지만 조각미남은 뭘 하든지 간에 아름답다. 하지만 그가 조각하는 건 엄청난 망작이고 예술이 아닌 쓰레기에 불과하다. 아마 그 조각의 네임택을 마르셀 뒤샹이 와서 '샘'이라고 적지 않는 이상은 그가 만든 작품은 추하다.


추의 미학은 멋이 공존하여야 완성된다. 재료를 하나하나 섬세하게 집어 접시 위에 아름답게 배치하는 요리사, 작전중 밤낮 구분 없이 부동자세로 먹지도 씻지도 않고 대기 중인 군인, 단 한순간 정상에 꽂을 깃발을 위해 올라가는 산꾼, 몸에 쇳물이 튀고 미세한 쇳가루가 폐에 붙어 숨소리 내쉬기도 벅찬 대장장이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본인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그것 외에는 없다.


그들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더라도 혹은 얼굴이 못 생기고 배가 튀어나왔더라도 그들은 그 행위 자체로 멋이 있다. 그렇기에 아름답다.


추는 오히려 멋을 대비시켜 더욱 빛나게 해주는 반사판이며 멋 또한 추를 가려주는 가림막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추을 논하기에는 나의 지식이 꽤나 부족하지만 여전히 편협한 나는 그렇다고 정의한다.


직업의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는 없다. 매일을 성장하고 항상 진취적이며 노력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한낯 생명체이며 수면을 취하고 영양소를 보충해야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하고 사랑을 해야 하며 울고 웃어야 한다. 만약 수면을 취하면서 일의 성취를 얻어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루시드드리머는 아직 내가 보지 못했기에 당연하게 말하는 것이다.


일은 언제나 힘들고 고된 것이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어느 정도 다들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있기에 본인이 겪은 일이 힘들다고 자각하지만 어느 정도 배려가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을 존중해 주고 같이 힘들어한다.


억세게 말하자면 그 정도로의 배려가 없는 사람들은 진취적이지도 않다. 상대방의 힘듦을 무시하고 본인만 강조한다면 이것 역시 무지함이다.


'Homo unius libri'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전해준 이 말을 번역하자면 모두가 아는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라고 오역하는데 사실 본래의 의미는 '책 한 권을 꼼꼼히 읽은 사람이 무섭다'로 오히려 본인의 분야에 통달한 사람을 칭송하는 것에 있다. 그 한 권이 성경이라 본질이 살짝 흐려지긴 하지만 오역은 오역이다.


그렇게 직업의식은 그것에 통달하는 것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겸손해야 하며 낮은 곳에서 배워야 하고 눈은 높이 쳐들어 더 나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


그것이 싫다 하면 추락하라. 당신에게 달릴 깃털하나 없을 것이며 떨어지는지도 모르는 채 낙하하는 속도에 적응하여 안주할 것이다.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고 머리를 빗으며 값비싼 물건을 두르고 다녀 주위의 부러움을 사지만 책 한 권 읽지 않고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에 정의가 없으며 의식이 없이 그저 돈을 버는 행위를 지속하지는 않는가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나는 추함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멋있어 지기를 바란다. 물론 다비드가 다비드상을 조각하면 더할 나위 없지만 너무 비현실적이라 따로 적어두지는 않았다. 해당 사항에 있다면 진심으로 죄송함을 내비친다.


발전함에 있어 새로운 것을 찾아나감에 있어 흙탕물이 옷에 튀는 것과 머리의 헝클어짐이 신경이 쓰인다면 잠시 멈춰 정돈하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이미 나아가는 방법을 알았으며 실천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늦는다는 생각하지 말고 멈추어 더 정확하고 짧은 길을 찾는 것도 좋다.


나의 미숙한 행동과 모자란 직업의식에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사람, 멋이 없는 것보다 못난 게 나은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고깔모자를 쓴 당나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