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과일보다 길가의 과일이 커 보이는 법
밥을 먹고 나면 항상 후식으로 과일을 권하곤 하는데 나는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제철인 과일이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이 무르익고 가장 많이 풍성하게 열릴 시기에 나는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들떠도 보지 않았으며 달콤할 수 있었던 기회를 차버린 건 나였다.
항상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하고 재밌는 친구들과 놀기를 원했던 나는 현실감 있는 돈이나 명예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했다. 지금의 삶이 만족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더욱더 좋은 방향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미 가치관은 굳어버려서 내가 즐겁고 원하는 방향으로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너무나도 불행하고 지속하기 힘들다. 이성적이고 나에 대해 냉정하다고 자부하는 나는 아주 감정적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회상하는 걸 보니 아마 현실에 찌들어 요새 많이 힘든가 싶기도 하다. 조금 충격적인 건 내가 기회에 있어서 계산적이지 않고 나의 행복을 추구했다는 편인데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고 너무나도 편협한 모습에 아주 만족스럽다.
아마 지금 지친 것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현실감 없는 직업이나 꿈들을 찾아 이리저리 찾아다닐 것이고 행복을 찾아 걱정 없이 유영할 것이다. 잠깐일 테지만 그동안은 앞에 뚫린 여러기지 갈래길이 아닌 길가에 고여있는 물 웅덩이에 비친 나를 보는 것도 좋은 행동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살지 않는 마법사나 일각수가 될 수는 없는데 아마 내가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온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직업에 대해 충분히 현실감 있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고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 속에서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이 직종에 자리 잡았다.
유독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고 길가에 물 웅덩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물가를 연상시켰다. 어딜 보아도 내가 비쳐 내 헝클어진 머리와 해진 옷가지를 보고 있자니 더는 나를 고집할 수 없었다.
아마 고개를 살짝이라도 들어 수평선을 보았다면 저 멀리 길의 끝자락에 수면 위로 뜬 두 개의 달과 뿌리 없는 나무 샌드위치처럼 겹친 돌멩이를 볼 수 있었겠지만 역시나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는 어색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기회는 항상 빛 좋은 모습으로 가로수에 열려 과일코너에 진열된 홍시처럼 겉은 반들반들했으며 윤택하고 정돈되어 있었고 나는 그걸 선택해 그저 집어 먹어삼키기만하면 되었다.
하지만 나의 가방엔 커다란 늙은 호박이 들어있어 무겁기도 했으며 만약 내가 저 홍시를 손으로 잡아 손자국을 내 먹게 된다면 지금까지 이 무거운 호박을 들고 걸어온 내가 한심해질 것 같아 그만두었을 때도 있었다.
난 언젠가 이 호박을 가지고 길가 어딘가에 내려놓을 때가 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길가에 과일들은 널려있고 난 아직 과수원을 걷고 있는 중이다.
가로수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잡초와 작은 꽃들만이 즐비하는 들판이 나올 때 내가 들고 있는 것이 달콤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