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대비 훈련의 중요성
어떠한 계기가 있기 전까지 그리고 그 계기가 지속하고 믿고 있던 가치관이나 이념까지 바꿀 만큼 합당할 때 사람은 바뀐다.
그렇다고 방울토마토가 수박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줄기 쳐 기대고 있던 단단한 벽을 허물고 그 바깥의 세상을 보았을 때 나는 벽에 국한되지 않고 넓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벽에 가려 받지 못했던 반쪽짜리 햇살은 비로소 하나가 되기에 덕분에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고 차디찬 바람덕에 과실은 단단해질 것이며 더 넓게 뿌리를 뻗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계기가 뭔지 이미 알고 있지만 그걸 무시할 뿐 언제든지 벽을 허물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 계기는 불행이라는 우악스러운 망치로 내리쳐 벽과 함께 상처 입고 같이 으스러질 것이다.
결국 벽은 허물어야 한다. 인지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허물어질 것이니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다만 벽에 붙어 기생하지는 않았음 한다. 가느다란 줄기가 아닌 굵은 대마저 벽에 붙어있다면 그 고통을 참기는 힘들 것이다.
17살 즈음 어떠한 계기로 화를 더 이상 내지 않기로 마음먹은 나는 아직까지도 잘 지켜내고 있다. 가끔은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상대방을 더욱더 피 말리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맞다고 생각한다.
화를 내는 것은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감정중 꼭 필요한 감정이라지만 굳이 애써 그것을 필수요소로 두고 기분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화를 낸다면 그것 또한 나한테 못할 짓이다.
그렇게 감정을 자제하고 진정하는 연습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건 돌부처가 아닌 광대였다.
화가 나려고 하면 주위 혹은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잠시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몇 곡 듣고 온다. 그렇게 5~10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라앉은 채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나는 대화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학창 시절 때부터 토론부였던 나는 어떠한 것에 물음을 가졌고 대화로써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나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으려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떠한 주제로 지속된 대화를 이어가지 않는다. 몇몇의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에 침범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때로는 방어적인 태세로 일관하기에 대화가 아닌 배척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더러 있어 재밌고 즐거운 이야기만 하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이다.
정치, 사회, 젠더, 가족의 이야기는 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편이다. 사실 이 주제들은 그 누구라고 해도 어렵고 난해하며 굳이 이 이야기를 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 주제는 주제에 맞는 사람들에게 넘겨두고 우리는 그저 개인의 생각으로 만족하고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을 덧씌우려 하는 무례한 행동은 하지 않길 바란다.
어떠한 불협화음이 있어서 서로 감정이 날카로울 때 나는 어떻게든 대화로써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몇 시간이 걸리던 대중교통이 끊기든 간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날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박힌 화살촉에 살갗이 붙어 화살 박힌 몸이 되어 나중에 다른 날붙이가 몸에 닿을 때 그 화살촉과 함께 뽑히지 않은 상처로 남는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바락바락 소리 지르며 화를 내도 달라지는 건 없다. 감정만 내세운 주장과 의견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다. 반대로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의견을 위해서 나는 화를 내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은 억누르고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기는 한데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정말로 무례한 일을 제외하고는 그렇다.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의견을 말하지 않고 꾹 참는다거나 내세우지 않는 건 아니다. 누구보다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고 그 의견을 표현함에 있어서 세로가 아닌 완만한 대각선 정도로 세울 뿐 나의 방향성은 확실하다.
어찌 되었건 싸우고 싶지 않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기억에 남을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