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 없는 건축물
어떠한 사람을 내 삶에 투영하거나 위대한 분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지식이나 언어등 어떠한 것도 배우거나 따라 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들이 애써 이룩해 놓은 작품을 그대로 베껴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나의 가치관이나 이념이 담긴 상자 속에 잘게 뿌려진 유리조각처럼 뿌려져 조금 더 빛나고 잘 보이게 해주는 정도의 오마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길 기둥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예를들어 집안, 업무, 사회 등 여러단체나 넓은 공간에 붙히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이것이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기둥은 홀로 서있으면 돌덩이인지 나무떼기인지 아니면 어떠한 건물구조를 받치는 중요한 구조인지 모른다.
하지만 보와 지붕은 다르다. 보의 경우는 크기와 종류에 따라 조금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는 하지만 지붕의 경우 어디다가 가져다 놓아도 건물의 지붕이다.
그렇게 나는 수평구조를 좋아하게 되었고 어떠한 것을 받쳐 버티기보다는 폭넓게 안아주는 것이 좋다.
기둥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거나 거센 바람이 불면 끌어안아 잡고 버틸 수 있겠지만 나의 집은 그렇게 비바람이 치지 않으며 홍수가 나거나 바닷가처럼 파도가 치지 않는 곳에 위치하기에 나는 지붕이 되려 한다.
수직으로 올곧게 오른 직선의 기둥보다는 잘 가다듬은 신사의 콧수염처럼 고풍스럽게 휘어진 곡선의 지붕이 되어 누군가의 주위마저 그늘아래 편히 쉬게 하고 싶다.
목조 또는 갈색을 선호하게 된 계기는 딱히 없다.
그저 그것이 나에게 아름다웠고 좋았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갈색의 공간에 담긴 것들은 낡으면 낡는 대로 더욱 짙어져 멋스러워졌고 새로이 자라나면 반들반들하게 빚어져 정갈했다.
시대를 통과하며 시간을 담을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매료되었고 그렇게 나 또한 그러한 색이 되고자 한다.
회색의 공간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에는 내 물감이 너무나도 채도가 높아 무언가를 하지 않거나 채운 것이 탁해져 버려야 할 때에만 이용했다.
갈색 지붕을 얹은 집의 침실은 은빛으로 찬란할 수도 회색빛으로 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가 그 집은 누군가에게 갈색지붕집으로 불리게 될 것이고 회색 침실의 집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