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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Jul 05. 2023

인기예보

전국에 국지성 무례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 누군가에게 정말 충격적인 발언을 들었다.


'나는 낳음 당했어 그래서 아이를 가지기 싫어 미움받을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는 말인데  문장을 실제로 듣고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한참을 사선 위로 눈을 치켜뜨고는 시선을 피해버리다가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던지기는 했다.


그저 상대방을 맞춰주기 위해 눈치 보며 적당히 둘러댄 거라 굳이 글로서 남기지는 않겠지만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정말이지 최악이었고 그러한 말을 하면서 다시 답변을 바라는 상대방의 눈빛도 적잖게 부담스러웠다.


불편했던 자리는 나의 묘기에 가까운 맞춤 서비스를 통해 성공리에 마무리 지어졌고 엔딩 크레딧이 떨어지자마자 다음 프론트는 없는 걸로 하기로 반드시 다짐하면서 나는 헤어짐과 동시에 한숨만 내쉬었다.






무례함이라는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선행조건이 필요한데 대부분은 무지함을 뿌리에 두는 조건들이 다반사다.


무례한 상대방에게 그런 의견은 조심스럽게 접근해 달라고 한다느니 혹은 어떠한 계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묻는 것조차 싫었다. 상대방은 무례하기도 하면서 무지하기에 우문에 현답을 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나를 향한 무례함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향한 무례함을 내비칠 때 정이 떨어지다 못해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대인관계의 깔끔함을 위해서는 서서히 조금씩 멀어지는 것이 감정소모가 덜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실망을 하거나 무례함을 보고 그만 인연을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예전 같지 않게 천천히 멀어져 최대한 감정낭비를 줄이는 편이다. 갑자기 끊는다면 구구절절 이야기해야 할 수도 있을뿐더러 그 과정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의 소통이 불가한 걸 알기 때문에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못 배워서 그래'가 무례한 사람들의 인디언식 이름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사실은 못 배운 것이 아닌 안 배운 것이다.


지식을 가지고자 노력을 하지 않았고 그마저 배웠다고 하더라도 책 한 권도 아닌 한 문장정도로만 배웠기 때문에 어쭙잖은 고집을 가지고 자라나 단단한 아집이 되어 결국엔 그런 사람으로 남아버리는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주위에는 무례한 사람들이 많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욱더 자기를 잘 표현하고 의견을 잘 피력해 가끔은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이때의 멋의 근거는 무례를 정말 본인 그 자체로 승화하여 마치 무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무레를 너무나도 잘하기에 멋있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객관화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람 보는 눈을 잘 길러야 한다는 말을 수차례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걸쳐 들어왔지만 한 때론 '좋은 사람들만 있으면 안 될까'라는 에덴동산 연간이용권 같은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곤 현실로 돌아와 열심히 경험하고 관찰하며 데이터를 쌓고 있는 중이긴 하다.


주위에 무례한 사람들을 보고는 직접적으로 무례하다고 지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기도 하고 상대에 대한 사회적인 관계를 생각하다가 이제는 지친 상태라, 길에 고인 흙탕물을 치우기 위해 깨끗한 물을 하염없이 부어대는 꼴이라 방치해 두었다가 비가 내려 흙탕물이 불어나기 전에 삽으로 퍼서 없애버리는 편이다.


일종의 자연현상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편하긴 한데 비는 우산을 쓰면 되고 눈은 히터를 틀면 된다. 무례는 눈 내린 도로의 검은 눈이 아침이 되어 넓고 기분 나쁘게 질척거리며 풀어진 물웅덩이라 피하거나 넉가래로 밀어 없애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피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인데 일상다반사적이고 불규칙적으로 돌발적이게 일어나는 일들이라 힘들지만 예측이 가능한 수준이라면 치우는 수고를 더는 것이라 마음적으로도 편하긴 하다.


다행히도 나의 경우에는 항상 미연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갖가지 준비물들을 들고 다니기도 하고 어느 정도 예측하는 삶이 기본이라 그런 사람들에게 감정낭비가 덜하긴 하지만 흔들리지는 않기에 누적되는 면이 있다.


사실 나는 관계에서의 에덴동산을 꿈꾸는 이상론자들을 싫어하면서 부러워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어느 정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많은 위험에 처해있는 사막의 오아시스이며 누구나 침범하고 약탈해 가기 쉬운 무인편의점 같은 존재라 그 먼 곳을 꿈꾸기에는 사용자들의 에티튜드가 그렇게 좋지 못하다.


누구나 사용방법은 알고 있으며 그들의 방식은 개개인의 정답이다. 다만 아름답거나 무례하거나 둘 중 하나일 뿐 막연히 바라건대 내 정답지에 가까운 풀이를 가진 사람들이 방문해 이용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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