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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Jun 01. 2023

플레이리스트

음악이 있어야 하는 삶



모두의 의견을 포용하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나는 대체적으로 편협하여 자존감이라는 화려하고 반질거리는 날개에 비루하고 얄팍한 품을 가진 나비 같은 존재다.


나의 날개는 펄럭이며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지만 결코 날개를 꺾어 나의 품을 따뜻하게 감싸 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멋지고 아름다운 날갯짓을 상상하며 여러 곳과 여러 날을 버텨갔지만 결국 나는 한계에 도달했고 등 뒤에서 쉭쉭 거리는 날개의 바람 소리보다 그저 내가 날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노랫소리가 절실해졌다.


그렇게 특정한 날은 그날의 노래로 다시 버티는 중이다.





아마 평생 몇 가지의 노래만 들어야 한다면 나는 제일 먼저 가장 애정하거나 싫어하는 날이나 공간을 떠올린다.


애증 하는 비 오는 날, 매일 밤 걷고 싶은 5차선 옆 산책로, 다른 세계에 온 듯 한 고요한 고궁, 메마른 나에게 축축한 생각과 영감을 주는 전시회장, 무기력하게도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이 정도의 상황에서의 음악만 있다면 아마 살아가는 데에 큰 지장은 없지 않을까 싶다. 이별할 때에는 상처가 아물 때까지 그리고 다시는 어떠한 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때까지 아무 음악도 듣지 않는다.


혹여나 그 음악이 들리면 이별의 음계와 비슷할까 자제하는 편이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정말이지 싫어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비가 내리는 것을 보는 것 또는 빗소리를 듣는 건 너무 행복하지만 그 외의 바짓단이 젖는 다던가 혹은 애써 만진 머리가 배배 꼬이고 흩날리는 건 최악이다. 그래도 그중 다행인 건 빗소리와 함께 ‘Ella Fitzgerald - Misty’를 듣는 것 아마 이 노래를 알기 전엔 어떤 노래와 함께 바짓단이 젖어들어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노래는 비가 와서 잔뜩 쳐져 있는 나의 어깨를 부추겨 추켜올리지 않고 그대로 지긋이 뉘어 편안하게 눕혀주어 어느새 빗속에 나도 녹아들어 가끔은 조금 더 걷고 싶은 마음도 들곤 했다. 그렇게 비 오는 날을 점점 즐겨가게 되었고 빗속에서만 즐길 수 있는 어떠한 것들을 지금도 찾아가고 있다 우산 아래에서 들어야 하는 그 노래와 함께.


거리엔 가로등이 오렌지빛으로 빛나고 내 주위엔 회색의 콘크리트 벽 또는 무성한 나무들일 때 아무 말도 없이 ‘Chet Baker - Born to be blue’를 틀고는 아무도 없는 길가의 주인공이 되어 지나치게 일렁이던 하루는 잠시 치워두고 온통 오렌지빛의 무대 위에서 내일의 잔잔함을 위해 눈에 힘을 풀곤 앞니 빠진 트럼펫 가수를 연기하며 처참한 우울함으로 가득한 그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받는 일상이 없었다면 아마 이때 즈음 항상 술에 절여져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마법과 성이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가? 해리포터, 나니아연대기, 트와일라잇 등등 물론 해리포터 밖에 보지 않았지만 커다랗고 고요한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몽환적인 음악소리를 좋아하는 듯하다.


항상 궁에 들어갈 때면 'Sicilienne, Op. 78 for Cello and Piano'를 듣는다 그중 Anastasia kobekina 가 연주하는 Sicilienne는 호그와트로 출발하는 마법의 선율이다. 그래서 항상 입장과 동시에 음악을 틀고선 잠시나마 다른 세계로 마법과 콧물 맛 초콜릿이 있는 어떠한 곳으로 잠시 다녀온다.


예술을 보고 그것에 대해 몰두하며 나머지 모든 잡생각을 지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커다랗고 급진적인 음악이 나를 덮어도 그걸 이기고 내가 그 대상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게 나의 예술에 대한 주관이다 나는 거장들이 만들어 놓은 엄청난 그림과 사진 혹은 조각 등의 예술작품에 담긴 의미나 설명도 무시한 채 오롯이 나의 시선과 나의 견해로 재창조한다 그들에겐 정말 무례하고 건방진 일이지만 나의 영감은 이 행위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Passacaglia'를 귓가가 아릴 정도로 크게 틀어놓고 느릿하게 작품들을 내 입맛대로 자르고 갈라 음미한다.


손에 쥐여진 것은 단호한 나의 잣대였으며 내 품에서 꺼낸 나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매우 편협한 시선의 가위와 주관의 포크를 양손에 쥐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실 작가라는 명칭을 사용하기가 매우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긍정적인 의미로는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무려 500페이지가 넘는 단어들과 문장에 담긴 것들은 온통 거짓말이지 않은가?


물론 나도 그렇게 길고 완벽한 거짓말을 하는 중이지만 매번 새로운 거짓말을 그렇게 길게 한다는 건 나에게 큰 부담인듯하다. 어느 날은 깜빡이는 글자입력칸 만 멍하니 몇 시간이고 바라보며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 첫 문장에 절망에 빠져 그대로 옆에 있는 술잔을 가득 채워 털어마시고는 침대로 직행한 일도 다분하다.


그렇게 침대에서 겨우 핸드폰을 들어 Daft punk의 Something about us를 틀고는 뜯어버릴 뻔한 머리를 간신히 지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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