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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Jun 02. 2023

불안 정한 삶

불안하기로 정한 삶



친한 친구나 가족들보다 그저 낯선 곳에서 만난 익명의 누군가가 위로와 안정감을 줄 때가 종종 있다.


나 또한 익명이라는 베일이 눈앞에 가려질 때 오히려 진정으로 고민을 얘기하거나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꽁꽁 싸매둔 비밀들을 서슴없이 꺼내놓곤 한다.





아마 공적이나 사적이지 않은 그 외의 은밀한 삶에서의 나는 누구보다도 솔직한 사람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는 삶을 3가지로 분류했다. ‘공적인 삶’, ‘사적인 삶’, ‘비밀의 삶’ 이 중 나는 비밀의 삶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영화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지막 이 문구는 나에게 있어 중요해졌다.


공적이지도 사적이지도 않은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누구에게 고민을 말하거나 그걸 해결하는 방안을 누군가와 같이 머리를 맞대며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고민을 듣는 걸 싫어하진 않는데 오히려 좋아한다 고민을 털어놓는다 라는 행위 자체가 너무나도 감사한 감정표현이기에 나는 최선을 다해서 공감해주려고 한다.


고민이라는 건 참 어려운 듯하다 학창 시절에는 정말이지 매우 외향적인 사람이라 인간관계의 범위가 넓었던 나는 여러 사람의 고민상담을 도맡아 지금 조금 더 성숙해진 듯하다 예전에는 멋모르고 ‘이건 이랬으면 좋았을 것 같아 저건 저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 혹은 ‘너의 상황을 함부로 말하기는 싫지만 나였다면 이렇게 했을 것 같아’ 등의 위로의 말들을 건넸지만 지금은 그저 입을 꾹 닫고 끄덕이며 토닥이고 공감하는 것 그 이외의 어떠한 건방진 말들은 하지 않는다. 물론 예외로 정말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던가 요청이 있을 시에는 내 일이라 생각하고 달려드는 편이다.


나에겐 정말 친한 동생이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동생은 중학교 2학년에 무리 짓던 친구들 사이에서 만나 나를 곧 잘 따랐고 나도 그 동생을 너무나도 소중히 했었다. 하지만 나의 불안전한 연애에 그 동생이 여러 번 피해를 보게 되었고 나는 그걸 모르고 말았다. 무능하게도


그렇게 동생은 곪디 곪은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티도 내지 않았고 나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즐거웠다 관계의 마지막으로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몇 년이 지나 동생과 나는 자연스럽게 사이가 소원해졌고 성인이 되어 차차 멀어졌지만 항상 생각하고 서로 아끼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동생에게는 멀어지고 싶은 사람이라 멀어졌고 드디어 ‘나’라는 쥐덫에 발목이 빠져 곪은 상처를 치유할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하게는 몇 년이 흘러 연락이 닿았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갈 때 즈음이었을 것이다. 친구와 어느 때와 다르지 않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 동생의 이야기가 나왔고 최근에 친구는 동생과 연락을 했다 라며 나에게 왜 연락을 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듣고는 바로 연락을 했고 조만간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까지 했다.


동생은 몰라보게 바뀐 모습으로 나타났고 물론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어렸기도 했으며 주로 교복이거나 자신의 스타일을 보여주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 후론 여느 오랜만에 재회하는 친구사이와 다를 것 없이 카페에 가서 근황얘기를 턱이 저릴 정도로 하고 적당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처음으로 동생과 술을 마시러 어떤 와인바에 갔다.


동생은 나에게 한없이 책망하고 원망했다. 두 가지 사실에 나는 정말 마음이 시큰거렸다. 나는 정말로 마음이 아플 때 심장 언저리가 꽉 조여오듯이 아픈데 그날은 심장을 잠시 빼두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팠다.


첫 번째로 나를 원망하는 말과 눈초리를 이제야 듣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랬다. 그토록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고 조언을 해주고 고민을 들어준 내가 미워서 그저 고개를 떨궈 미안하다는 말만 할 줄 아는 멍청한 앵무새가 되었다.


두 번째로 나의 전 연인들이 나와 헤어지고 동생을 불러 괴롭히고 동생의 인간관계마저 부숴버렸다는 사실에 나는 처음으로 전 연인들이 원망스러웠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와 바람을 피우고 내가 가장 믿고 있는 사람과 잠자리를 가지고 내 주위의 친구들을 이간질하고 나를 모두의 인간관계에서 고립시켜도 나는 괜찮았다 전 연인들에게 그건 나의 이별선물이자 그렇게나마 행복하다면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로 인해 내가 소중히 하는 사람이 나도 모르게 괴롭힘 당하고 있었다는 걸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된 나는 6살 아이의 손에 들린 립스틱처럼 성한 곳 하나 없이 무참히 난도질당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나는 고민거리를 애초에 만들지 않는다. 모든 건 예상범주 내의 일로 만들어버리면 오히려 윤택하고 기름기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만약 고민이라는 게 생겨도 무한한 자신감과 번지르르한 자존감으로 나를 치장해 이내 낙천적인 생각으로 바뀌어 ‘어차피 나는 뭘 해도 잘하는 사람이니까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나도 알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이 불안하고 두려우며 나를 먼저 돌보기보다는 눈치보기에 급급한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비어버린 크루아상’ 같은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고민을 인정해 보는 건 어떨까?


그걸 누군가와 나누는 게 너무나도 힘들겠지만 좀 더 노력해 보는 게 어떨까?


은밀하고 위태로운 비밀스러운 삶에 빠지는 것보단 목소리와 발소리가 많은 사적인 삶에 비중을 두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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