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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Jun 04. 2023

버킷리스트

양동이를 차고싶진 않다.



책상 왼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캔들워머엔 호박향 양초가 따뜻하게 데워져 은은한 시나몬향과 함께 방을 가득 채웠고 정신없이 글을 쓰고 술을 마시다가 문득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곤 양동이를 차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두서없이 써내려 갔다.



한 줄기 빛조차도 양보하지 않는 짙은 녹색의 암막커튼과 향초 그리고 글 그것이 내가 한동안 보금자리로 삼았던 공간이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싶으면 술을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커피를 마실 수 있었던 무한히 자유로웠던 나의 공간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평소에도 망상이 잦은 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또 죽여갔다. 그건 지나치게 이성적인 나에게 있어서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사고방법이었고 나를 재정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촘촘한 참빗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죽음이라는 자연스러운 결과에 도달하게 된 나는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았다.


'크고 거대한 것에 대해 감동을 느끼고 심금이 울린 적이 있는가?'


지금도 유독 작고 낮은 것들을 좋아하여 잔잔하고 정적인 삶을 살아오다 눈앞에 펼쳐지는 마크로스코의 한없이 네모난 예술에 그만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큰 충격과 함께 눈물이 고였다.


항상 작았던 나에게 이 거대한 예술은 괴물과 같았고 한 순간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릴 뻔했지만 다행히 그런 행동은 나의 행동양식에 어긋나기에 실행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크고 웅장한 것을 좋아한다. 아마 죽기 전에 그랜드캐니언과 나이아가라폭포 그리고 판테온은 가보고 싶다. 그것들 앞에 놓인 한없이 작은 나를 소원하며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위의 세 가지의 장소에 여행을 가는 것 외에는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사실 죽기 전에 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죽음이라는 것은 어떠한 장소 따위와 비교될 만한 것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큰 걸로 따지자면 당연히 죽음이 더 크다.


'버킷리스트'라는 사실 말은 부정적인 유래가 있다. 버킷리스트는 ‘kick the bucket’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중세시대에 자살하는 사람이 목을 매달고 마지막으로 양동이를 걷어 차는 행위에서 지금의 ‘bucket list’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아 물론 이런 유래가 있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질책하거나 부적절한 사용이라고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나는 나대로 늘 편협한 사고 속에서 그걸 분해하고 재조립하면서 애착인형처럼 혼자 가지고 노는 것 그 이상의 무례한 행위는 하지 않는다.


쥐어 짜내듯이 생각해 낸 게 있긴 한데 난 조향사가 되고 싶다. 생각하고 영감 받은 것을 그리고 써왔지만 이제는 향기로 남기고 싶다.


향수 만드는 걸 좋아하는 나는 어떠한 곳에 방문하거나 영감을 받으면 꼭 향수공방에 들려 장면, 그림, 노래 등의 다양한 것들을 향수로 남긴다. 사실 내 역작은 ‘비 오는 날 나무꾼의 땀냄새’ 지만 최근 들어 가장 좋아하는 향수는 ‘빈센트 바이올렛’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전시회를 다녀오곤 그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을 공기 중에 흩뿌리고 싶어 만든 향수인데 이 날 심한 독감에 걸려 향을 맡을 수 없어 내가 좋아하는 향들을 무작위로 담았고 2주가 지나고 나서야 나는 겨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든 신선한 버터색과 싱그러운 포도색을 가진 향수는 자기 전 가슴팍에 살짝 덮어 포근한 솜이불이 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노란 타워크레인 위에도 올라가 보고 싶다. 집 앞 아파트 공사장에 높다랗게 올라가 있는 샛노란 타워크레인이 요새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나 또한 그곳에 담기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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