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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Jun 07. 2023

참새 방앗간

애정하는 공간들



지나치지 못하는 정확히는 지나치기 싫은 곳들이 몇 군데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서점의 F12와 F13사이, 꽃이 가득 핀 밤의 어딘가, 쉬는 날 매번 들리는 칵테일바, 테이블도 커피도 없지만 카다멈이 들어있는 시나몬롤이 있는 베이글집, 치즈색 길고양이가 집고양이처럼 반겨주는 짜이가게 등 머물고 싶어 하고 근처에 방문하게 된다면 무조건 들려야 하는 곳들이 있다.





입구에 들어가 가장 안쪽 푸른 꽃 한 다발, 작은 안개꽃 한 송이, 비어있는 베르가못 리큐르병, 조명 위에는 에펠탑처럼 솟아 올린 거미줄 한 줄기 그리고 그들이 선뜻 내어주는 다른 나라들의 시간은 회색의 공간에 입혀져 이 공간의 시간으로 다시금 여러 가지 색이 되어 찬란하게 빛나고 내가 다시 누군가에게 전해주길 오렌지빛의 공간에서 글을 쓴다고 하고 싶다.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 언덕을 가파르게 올라 평범한 빌라들 사이에 위치한 공간에서 어김없이 키보드 자판과 눈싸움을 하는 게 일상의 행복 중에 하나가 되어버린 건 얼마 안돼서였다.


우연히도 늦게까지 하는 바를 찾아 우연히 그리고 아무 기대도 없이 들어간 공간은 각 나라의 시간을 반짝이고 차가운 유리잔 안에 담아주는 곳이었다.


그날 7가지가 넘는 일본 어딘가의 시간을 느끼며 그들이 선사해 주는 시간과 내가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어우러져 새로운 시간의 기억을 만든다는 게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2~3번을 더 방문을 하곤 양해를 구하고 사람이 없는 한가한 시간대에 구석자리에서 노트북밝기를 최하로 낮추고 조용히 글을 써내려 갔다.


그렇게 나는 이 공간에 머문 시간들을 느끼며 때로는 취하고 때로는 키보드자판과 눈싸움만 했다.


처음으로 내 앞에 놓인 일본의 시간은 녹차맛 리큐르에 잔 바닥에는 꽃을 끼워놓은 ‘춘교’라는 시간이었다.


매혹적인 색이 있다면 아마 이 시간의 색이 아닐까 싶다. 꽃봉오리가 열리기 전 탐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초록색아래 입가에 가져갈 때마다 잔바닥의 꽃이 흔들리지 않고 얼굴을 보여줄 때까지 그 시간은 아직도 나에게 최고의 시간이다.


앞으로의 시간도 구석에 박혀 글을 쓰는 반복이 되겠지만 잠시나마 하던 글은 치워두고 그들과 그곳에 찬사를 남겨둔다.


봄의 초록색 물결이 잔아래 꽃자락에 찰랑일 때쯤 이였을 것이다.


회색의 공간에서 많은 곳의 시간은 그들에게 비쳐 바닷빛처럼 산란하였고 반짝이며 내 앞에 놓였다.


어떠한 시간은 막 갈라진 찐득한 호박처럼 달콤하였고 또 다른 시간은 나에게 침묵만을 주어 아릿하게 소스라치곤 했다.


이 공간에 녹아져 그들이 선사하는 무한한 시간 안에 당신이 만들어가는 이 공간의 색깔마저 찬란하게 빛나길, 떠나지 못한 이들의 덜그럭 거리는 모난 얼음마저 그들과 이 공간이 갈무리하여 둥글고 잔잔히 잔에 미끄러지기를 바라며 회색 건물에 오렌지빛 가로등이 스며들 때 걷는 거리마저 이곳의 시간이기를 소원한다.


누군가도 이곳의 시간을 담아 그리길 회색바탕에 짙은 오렌지색이었음 하는 이가 모든 시간이 담겨있는 회색의 공간에게.





자동문이 열리고 앞으로 한 블록 베스트셀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왼쪽으로 네 블록 그리고 벽면 오른쪽 첫 번째 책장과 그다음책장 정확하게 F12, F13 사이의 공간을 좋아한다.


 친애하며 나에게 정서적인 사고의 절반 이상을 가르쳐 준 요시모토 바나나와 이해하는 순간 믿기 힘든 경외심에 감히 존경이라는 단어조차 어렵게 내뱉게 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제나 벽면에서 반겨주는 곳이다.


늘 서점을 밥먹듯이 가던 나는 어느덧 이곳저곳 섹션을 다 점령해 버리고는 이곳에 정착했다. 사실 옆옆칸에 제임스 조이스가 두고 간 난제를 푸는 것도 재밌지만 마음의 평화를 찾기에는 이곳 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서점의 책냄새 종이냄새는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아마 서점에는 너무나 향이 진득하게 나서 질려버린 결과인 듯 하지만 그렇게 서점에 오래 살게 된 계기는 철학에 흥미를 갖게 된 시점부터였다. 디자인을 전공할 때에도 모든 걸 해체해 버리는 게 취미였던 나는 아마 어렸을 때에도 레고를 쥐여주면 완성하지 못하고 해체하는데 급급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리하자면 '그들의 생각을 너무 많이 읽었고, 진이 빠지게 설득당하여 무기력하게 인정했으며, 지금도 종이에 담긴 것이 머리에 맴돌아 종이냄새를 좋아하지 않게 된 계기였다' 본질자체가 해체할 것이 없는데 그걸 어떻게든 잘라서 바닥에 던져 놓았으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긴 했다.


그럼에도 서점을 좋아하게 되는 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나와 맞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 가고 싶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반듯이 서서 언제나 친절하게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가서 꺼내볼 수 있음에 그 책장사이에 공간에 종종 자리 잡고 그들과 함께 도란도란 수다를 떨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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