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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Jun 06. 2023

갈색양의 인간관계

암벽등반가와 울타리



뒷 목이 뻐근해질 정도로 솟아있는 갈색 성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단순한 치기로 문을 두드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의 앞에 숨죽인 설렘과 함께.




문을 세 번 아니 두 번 아니면 한 번과 함께 인사를 해야 하나?


당장 어제라도 매끈하게 왁스를 바른 듯한 고동색의 높은 성문 앞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결국 앞에선 나는 무서운 고민에 빠져버렸다.


2시간 전 어느 때와 같이 주말에 차를 끌고 이름 모를 산의 외벽을 타는 것이 좋아 영문도 모를 암벽을 올라갔다. 매번 같은 생각이지만 이 산은 어떤 풍경과 감정을 나에게 전달해 줄까 혹은 이렇게 힘들게 올라와보니 행복하다는 두 가지의 고정적인 생각은 변치 않고 늘 나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 의미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프랑스 식당의 불어 메뉴판 정도로 바꿔주는 나만의 무기다.


물론 프랑스 식당의 불어 메뉴판에는 크게 한번 데인 적이 있어 도전이라는 명목하에 손가락으로 주문했다가 달팽이 요리만 3개를 시킨 후로는 번역기를 손에 꼭 쥐고 들어간다.


오늘도 이름 모를 암벽을 정처 없이 올라와 여느 때와 같이 반쯤 아래로 꺾인 목에 바들대며 생명수를 집어넣는 와중에 처음 나는 정상의 냄새 아니 정확히는 양파를 맛있게 구운 냄새가 코끝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아마 미친 게 분명하겠지만 혹시나 산불이 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배낭에 항상 구비해 놓은 휴대용 소화기를 손에 들고 옆쪽 능선으로 비장하게 이동하였고 산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외딴 성 하나가 우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안식을 위한 오아시스를 찾으려는 것이 아닌 그저 구운 양파를 찾으려다가 발견한 그곳은 높은 성벽 위로 얕고 가늘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누군가 몰래 낙엽을 켜켜이 모아 고구마를 구워 먹는 듯한 정도의 의도 있는 연기였기에 그나마 안심하고는 손에 쥔 소화기를 배낭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려보니 노크의 횟수로 실랑이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쿵쿵쿵’ 


결국 세 번의 노크를 한 뒤 한참이 지나도 아무 소리도 없자 두 번 혹은 한 번에 인사 심지어는 네 번의 노크를 두 번에 나눠서도 두드렸다. 네 번의 노크가 지나고 나서는 적게는 소리를 지르거나 많게는 모스부호까지도 망상해 보았지만 망상이 깊어지기 전에 문이 작게 열렸다.


큰 성문은 오른쪽의 문고리만 미세하게 신음하며 열렸으며 안에는 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기다렸다는 듯 얕은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고 찰나의 시선에 담긴 성안의 풍경은 매혹에 걸린 듯 부드럽게 발걸음을 잇게 하였다.


베이지색의 튜닉과 파란 베스트, 뚱뚱한 호박같이 우스꽝스러운 바지를 입은 남자는 마치 주위 풍경과 겹쳐 르네상스를 생각나게 했지만 아쉽게도 지퍼가 달린 갈색 나일론 가방을 메고 있어 시대고증이 아쉬워졌다.


아마 그들은 동물들을 키우는 듯했는데 특히나 무릎 언저리에 기다란 털들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걸 보면 꽤나 큰 동물이지 않을까 싶다.


동물에 대한 생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같으며 앞으로의 생각 또한 그럴 것이다. 귀엽고 작고 소중한 것과 함께 인생을 보내는 건 누구라도 싫어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동물을 키우고 싶을 때는 항상 하는 생각이 있는데 손에 가득 어떠한 것들을 쥔 상태로 동물을 만지거나 가슴 깊이 끌어안을 수 없으니 손에 쥔걸 어느 정도 포기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크게는 간신히 바들거리며 붙들어 놓은 실낱같은 여가생활이라던가 작게는 내 소파의 청소주기정도가 있겠지만 아직 나는 여유가 부족해 동물을 보고 눈만 반짝이고 있다.


저 멀리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낮은 언덕 위 2층짜리 목조 건물은 어우르듯 자리 잡아 있었고 발아래 살랑이는 회갈색 갈대 그리고 두 갈래의 길옆에는 짙은 파란색 델피늄이 길을 안내해 주었다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짓하며 나를 오른쪽 길을 향해 이끌었다.


사실 조심성이 많은 편이라 낯선 이들이 무작정 우악스럽게 이끌어 가는 강제적인 상황이 맘에 들지 않기도 하고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함부로 성벽을 넘어온 주제에 불편함을 가지기에는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라 금세 침묵으로 수긍하고 뒤를 잇따랐지만 그래도 장장 15분을 걷는 거라면 한마디는 던져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입술을 달싹였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친근하게 대답해 주었다.


‘당연히 당신이 머물 자리로’


이곳에 들어오고 머무는 것이 여러 번 있었다는 듯 거리낌 없이 응답했고 말문이 막힌 나는 어느샌가 한 오두막에 도착했다.


내부는 크게 낡거나 해진 곳이 없이 관리가 잘 된 여관 정도의 시설이 있었고 나는 물음을 참지 못해 의자에 앉아 대화를 시도했다. ‘여긴 어떤 곳이고 이곳은 또 어떠한 곳이길래 제가 머물 수 있는 건가요?’ 부부는 서로를 잠시 쳐다보고는 작게 끄덕이고 나를 보며 말했다.


‘여긴 울타리 안이에요 왼쪽 길 끝 낮은 언덕에 울타리에서 가장 오래된 파수꾼과 저희 부부 두 명 이렇게 3명이 울타리 안을 지키죠 당신은 머무를 수도 혹은 나갈 수도 있어요 그건 그 누구도 막지 않아요 다만 지금부터 이 오두막은 당신이 가꿔가야 해요’


당최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아마 내가 이해하기로는 ‘울타리 즉 성벽의 안은 3명의 파수꾼들이 살고 있고 각자의 오두막에서 지낸다 나 또한 파수꾼이 되어 오두막을 지킬 수도 나갈 수도 있다는 것’ 이 정도로 정리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듯하기도 하고 오두막의 소유권을 넘겨준 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연 듯 나가버린 부부는 온데간데없이 갈대 속을 지나쳐 그들의 오두막으로 갔겠거니 했다.


왜 멀쩡한 길을 두고 갈대 속으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옷에 묻은 기다란 털들은 갈대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충분한 대화를 하지 않았기도 하고 대화를 했음에도 QnA 느낌의 딱딱한 응답에 물음이 가시지 않은 나는 이제는 나의 오두막이 되어버린 곳에 기시감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거실에서 스툴 하나를 바깥으로 꺼내와 돌아온 길 앞에 놓고 앉아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생각은 대체로 긍정적이었고 이곳에 대해 가시지 않은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또다시 파란 꽃들을 따라 성문 앞에 도달했고 왼쪽 언덕길로 들어섰다.


가까이서 보니 건물의 외벽은 성문의 그 근엄한 고동색과 같았고 신기하게도 문은 달리지 않았으며 창문이 하나도 없는 그저 나무 덩어리 정도의 건물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거리낌 없이 내부에 들어서자 나무장판아래 정사각형으로 파인 흙바닥에 반듯하게 돌을 쌓아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고 완만해 보이는 흔들의자에는 가장 오래된 파수꾼이 둥그렇게 반원을 그리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정사각형으로 깎인 흙바닥 위에 털썩 앉아 파수꾼을 바라보았다. 그는 부부들과 같이 간단한 목례로 나를 맞아 주었고 이 안의 파수꾼이라는 사람들은 개의치 않음을 기본으로 사는 것인지 아니면 편협하지 않은 사고를 가진 것인지 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입을 떼려던 찰나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안은 온통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있어 아마 지금은 보지 못했겠지만 치즈색 고양이 두 마리와 까만 푸들도 한 마리 있지 그리고 어딘가에는 이곳의 주인인 갈색 양 한 마리가 뛰놀고 있다네, 모든 파수꾼들 아니 이제는 나와 두 명의 파수꾼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떠나갔어 어떤 파수꾼은 갈색 양을 죽이려다가 쫓겨났고 어떤 파수꾼은 갈색 양의 연인을 빼앗아 달아나버렸지 또 어떤 파수꾼은 양의 털을 모조리 빼앗아 바깥으로 도망쳐버리기도 했다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입을 다물고 다시 흔들의자에 몸을 뉘었다.


‘당신은 왜 떠나지 않은 거죠?’


오래된 파수꾼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되물었다.


‘나는 이미 양이 나에게 할애해 준 이 오두막을 가꾸는 것 그 외에 어떤 것도 더 바라는 것이 없네.. 욕심내거나 의심하지 마시게나 그대도 이미 많은 걸 얻었네’


그 말이 끝나고 더 이상 물을 수 없던 나는 한참을 모닥불만을 바라보다 밖으로 나섰다.


커다란 성벽을 호기심이라는 무례함으로 건너도 양은 이해해 주었고 오히려 편안하게 지낼 정갈한 오두막과 찬란하고 무한한 풍경마저 선사해 주었다. 오래된 파수꾼은 나의 감사함을 모르는 무례함을 꾸짖었고 나는 그제야 예쁘게 꾸민 길이 아닌 갈대 속을 행여나 다칠까 조심스레 해쳐 나의 오두막으로 갈 수 있었다.


높디높은 울타리 안은 회갈색의 갈대가 빛에 비춰 황금빛으로 산란했으며 그 넓은 들판 위에 나뒹굴던 빛 중에는 나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할애해 준 오두막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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