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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Jun 09. 2023

제페토

피노키오 제작 비하인드



마당 켠에 있는 에어건으로 몸에 엉긴 나뭇조각들을 털어낸 후 창고에 쌓아 둔 가장 아름답고 단단한 나뭇덩이 하나를 들어 울타리 밖에 작게 지어둔 나만의 작업실로 향했다.


그곳엔 커다란 도끼도 질기고 두꺼운 안전복도 없었으며, 부드럽게 무두질된 가죽 위에 가지런히 놓인 조각칼과 데님재질의 가벼운 앞치마 그리고 먼지한올 없이 번쩍이게 닦아둔 안경정도가 있었다. 베고 자르고 부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이름을 지어주며 날카로운 것을 대는 행위에 사랑이 담겨있는 행위.


난 나무꾼이 아닌 조각가가 되고 싶었다.




갖은 고성과 함께 결국 승리의 도끼 한 자루를 얻어낸 나는 철물점에서 나와 도끼 한 자루치의 소시지를 사들곤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도 열심히 나무를 찍어내리고 있던 중 도끼머리가 또 빠져 그만 할당량의 반의 반정도를 자그마한 손도끼로 해치워야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이걸 들고 철물점에 갔다가 돌아오면 해가 져서 나머지 작업을 할 수 없기도 하고 아마 화가 난 상태로 도끼를 들고 어딘가에 가는 행위는 좋지 않다고 생각해 그다음 날 가기로 했다.


철물점의 젊은 사장은 늘 통짜 철로 만들어진 도끼를 사라고 권하지만 사실 알다시피 손잡이가 나무로 된 도끼를 쓰는 것이 나무꾼의 낭만이라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나무손잡이를 선호한다.


하지만 이번에 산 도끼는 3일도 안 돼서 완전히 머리 쪽 나무가 부서져버린 경우라 나도 합당하게 따져 들어 새 도끼를 얻어냈다. 그리곤 어느 때와 같이 똑같이 나무를 찍고 베고 죽이는 행위를 이어갔다. 그것 외엔 일이 힘이 들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고 생각이 났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무시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생각해 낸 뒤 침대 위에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수많은 날들이 지나 내가 나무덩이를 만드는 기계인지 사람인지 모를 정도의 상황이 되었을 때 모든 걸 멈추곤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무 연락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탓에 매일 오던 나무가 없어 난감한 목수중 한 명이자 나의 오랜 친구는 집으로 찾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물론 해결된 건 없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다고 판단한 나는 나무를 베어 넘기는 일 외에 다른 일을 찾으려고 했지만 일단의 당장의 돈벌이가 급급해 또다시 나무를 찍어 넘기고 또다시 일이 힘들다는 핑계로 침대에 누웠다.


해야 할 핑계보다 하지 말아야 할 핑곗거리를 먼저 생각하는 그저 머물러있는 삶을 살아온 나는 그 다시 불행하진 않다. 많진 않지만 고정적인 수입과 편안한 집, 가끔 마을로 내려가 저녁을 먹고 오는 정도의 일탈을 즐기면서 뭔가 잘못된 부분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조각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돈이 되지 않았고 현실에 부딪힌 나는 그럼에도 나무를 손에서 놓치지 못해 나무꾼이 되었다.


그 결과가 이러하다. 이상보다는 현실을 택했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물질적인 것에 만족했으며 정신적인 어떠한 성취감과 만족감은 저 멀리 치워두었다. 그렇게 나는 정신적으로 죽어갔고 인정하지 않고 공부가 하기 싫어 핑계만대는 어린아이에 지나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많은 나무를 베어 아름답고 정갈한 나무들만 모아 자그마한 나만의 작업실을 만들었고, 육체적으로는 힘들고 지쳤으나 내 눈은 더욱이 반짝이고 빛나고 있었다. 그 후론 현실보다는 이상이 공존하는 균형 잡힌 삶을 살게 되었고 점차 내 현실은 이상이 되어갔다.


점점 나의 작업실은 내 체온이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져 따뜻하게 덥혀져 갔고 밝은 톤의 나무손잡이의 조각칼들은 어느새 거뭇거뭇하게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졌다.


무겁고 폭력적이며 두터운 날붙이만이 가득한 그날들은 이제 없다. 철물점에 갈 일도 서서히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코가 길어지는 나무인형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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