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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은 Jun 15. 2020

닭갈비 예찬가 1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다면 두 눈을 깜빡여 주세요

이미 눈치를 챈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닭갈비가 먹고 싶다. 이 말이 전해질 때면 보는 사람마다 너 닭갈비 좋아해? 라며 닭갈비를 먹이러 데리고 다니겠지.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인싸는 아니다. 아싸지만 귀하디 귀한 약속 날이 올 때면 닭갈비를 종류별로 먹게 될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적어도 내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그런 성격이다.


사건의 발단은 5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진부하게 짝이 없는 멘트지만 그렇다)

간헐적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에게 한 끼가 얼마나 소중한지

해본 사람은 분명 안다. 모든 것에 쉽게 단정 짓지 않는 편이지만 이것에 관한 만큼은 확신한다. 사람이라면 영양분을 충족해야 하고, 더 나아가 음식을 즐기는 자라면 덧없이 공감할 것이라 추측한다. 


싸인을 보내 시그널 보내 1>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3주가 지났을 쯤이었는데,

아빠는 나처럼 비염을 심하게 앓아 동네 병원에 갔다가 의사소견서를 받고 오랜 기간이 걸려 경북대 병원에 예약을 해둔 상태였다. 혹시나 있을 수술 여부에 대해 보호자가 필요할 수 있으니 그나마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고 한 시간을 넘게 차를 타도 3시간은 족히 떠들 수 있는 AI(인공지능)인 나를 운전석 동행으로 데려가기는 딱이었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성격이 더 더러워지기는 했지만

일과 일이 아닌 것에 대한 기준은 나름 명확하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역할이나 내가 주인공이어야 할 때와 아닐 때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으므로 오늘은 아빠가 주인공이다. 처음 와보는 곳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젊은 내가 아빠보다는 처음 온 곳을 파악하기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3분이면 도착할 것이라고 알리던 내비게이션은 제기능을 못하게 된 것이다. 병원을 100M 앞둔 횡단보도로부터 병원에 들어가기 위한 차들의 행렬로 줄이 이어졌다. 건물 안 주차타워로 들어가기까지 15분은 넘게 걸렸고 1층에서 2층으로 가는 데까지 5분이 걸렸다. 아빠는 효율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눈치를 빠르게 캐치하는 나와의 콜라보로 텔레파시는 성공했다. 환자 역할인 아빠는 주차를 위해 차에 남아있었고, 나는 재빨리 의사소견서와 그 외 필요한 서류를 몇 챙겨 차에서 내렸다.


곧장 외래동으로 향했고 코로나 19가 잠잠해진 시점이라 병원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전날 받아둔 사전 출입증을 기계에 인식하는 사이 자원봉사자 및 병원 관계자 분들은 순식간에 내 몸에 체온을 측정했다. 처음 온 내가 버벅거리지 않게 자원봉사자 분은 나를 한 기기 앞으로 불렀다.


"처음 오셨으면 접수증을 뽑고 번호가 뜨면 창구에 가서 소견서를 제출해주세요."

머릿속 꼬인 밧줄이 다시 평행을 찾은 느낌이었다. 번호표를 받고는 대기번호가 뜰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래도 혹시나 본인이 필요한 순간이 오지 않을까 휴대폰 속 시각을 확인하며 수시로 출입구 쪽으로 쳐다봤다. 이제 내 앞에는 단 두 명만이 남아있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덩달아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것에 설렘(혹은 떨림)을 극히 느낀다. 그것이 좋은 쪽으로 향한 경우가 더 많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은 건 흑역사뿐이다. 곧이어 번호가 불리고 앞으로 나가 의사소견서와 서류를 차례로 내밀었다. 그 순간 내 옆으로 누군가 옆 직원에게 가더니 자기의 번호를 놓쳤다고 화난 투로 말했다. 정신이 조금 없으려는 찰나 예약을 확인하고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나는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익숙한 모습이 출입구를 통과해 내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주 나이스 하게 아빠는 신분증을 내밀었다. 접수가 끝나고 직원이 알려준 대로 이비인후과 층으로 올라갔다. 아빠는 한층 시끄러워진 접수처를 나서면서 "옥상까지 갔다 왔어."라고 말했다. 이든 저든 아빠는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크게 만들지 않는다. 아침부터 텔레파시가 잘 맞는 것 같아 왠지 모를 기쁨을 끌어안고 3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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