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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은 Jul 10. 2020

세계가 예술가를 선택하는 방법

『폭식광대』-「광인을 위한 해학곡」 서평

싫어하는 예술가가 있으신가요? 그 예술가를 싫어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지요. 오늘은 예술의 시작점에서 수천 번은 행해졌을 질문으로 서평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상과 허황, 당신은 무엇으로 예술을 정의하고 있습니까?     


intro)

‘스케르초’, 바로크 시대의 가볍고 오락적인 성악곡으로 유머 있고 변덕스러운 성격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광인', 빛나는 가, 미쳤는가, 아님 미쳐서 아름답거나, 미치도록 아름답고 싶다거나, 광인을 위한 해학곡이라는 말 자체가 작품 속 ‘장곡도’를 바라보는 듯하다.     



줄거리 


“나의 임무는 영웅이 없는 시대에 영웅이 된 한 인물의 베일을 한 꺼풀 벗김으로써 우리 시대가 원하는 인물상을 탐구해 보는 데 있다.”     

권리, 『폭식광대』-「광인을 위한 해학곡」 p. 24  中


    이 이야기는 ‘고발’이다. 대구의 한 대학생으로부터 시작한 고발이자 그의 짧은 생을 함께 산 그로부터의 말이다. 그는 ‘예술’로 평정된 사회에서 세계적인 연출가에게 옐로 카드를 내민다. 모두가 그에게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때, 자신이 하는 행동을 ‘임무’라는 사명감을 불어넣어 움직인다. 그 누구도 그에게 시키지 않았지만, 대학생도, 인턴 기자도, 그를 사랑한 세계적인 평론가도 그를 꾸짖는다. ‘끔찍하게 추상적인 개념의 장난이 예술이란 이름으로 둔갑하여 구경꾼의 눈을 흐리고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던 ‘장곡도’, 그는 어디서부터 발을 헛디딘 것인가.     


    한 그림자가 낯선 소리로 세계적인 갤러리에 발자국을 남긴다. 터덜, 터덜. 그를 움직이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어색한 그의 손놀림이 허공을 휘두르며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함에도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계의 경고를 날린다. 순식간에 갤러리 안은 초토화되고 넋 놓은 큐레이터에 눈물로 부르짖으며 통곡하는 사람들까지, 작품은 철저히 무너지고 깎여 내려가고 마는데,



영감님이 오셨다. 

『폭식광대』-「광인을 위한 해학곡」 p. 9  中   


 세계적인 예술가, ‘장곡도’, 미술계의 큰 획을 그은 자이자 스스로를 ‘세계적 연출가’, 자신의 행위를 ‘퍼포먼스’로 칭하는 그로부터 이 괴기한 관계는 사슬처럼 짝을 이루고 엮인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하나의 의미 없는 행위가 말 한마디로 ‘이상’과 ‘허황’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구조를 선보인다는 것. 대략 17개의 이해 불가한 관계가 이뤄지면서 풀어질 듯 풀어지지 않는 사슬에서 '아이러니'라는 공통된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밤마다 공포를 느꼈다. 살점을 떨리게 하는 공포, 겨울밤 흰 눈이 쌓인 조용한 길로 걸어가는 공포, 좋은 일에도 무서워할 줄 아는 공포, 공포가 광인을 낳았다.

 『폭식광대』-「광인을 위한 해학곡」 p. 26  中


    그가 만약 중학교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대학시험 날 장염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병원에 누워 해학곡을 듣지 않게 되었다면 광인이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시대가 바라지 않은 예술가에게 시대가 원했던 예술가는 임종의 순간까지 진실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노력하는 자, 우연이 아니라 기회가 분명 자신에게 올 것이라는 말을 믿어왔다. 하지만 이 말이 장곡도에게 들어맞는 말인지에 대한 토론은 그리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 끝을 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토론 논제와 대상이 맞아떨어지지 않을뿐더러, 그는 ‘예술가’라는 지위로 허황되고 엽기적인 행위를 일삼은 인기에 목말라 있던 벌거숭이 파괴자였으니까.      



세계는 의심과 회의에서 불안과 경악의 시대로 넘어왔다. 불안은 공포로 변형되었고 공허와 권태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폭식광대』-「광인을 위한 해학곡」 p. 28  中


    요즘에도 그런 말이 가끔 들려오긴 하는데, 잘 된 사람은 화장실에 똥을 바르며 작품이라고 칭해도 박수를 받는다고. 예술계의 허황되고 영합적인 모습을 꼬집으며 ‘예술 정치’를 펼치시는 나부랭이들에게 날리는 죠크. 앞뒤가 안 맞는 말은 ‘우언법’이 되고 감옥에 들락날락하면서도 명성 하나에 들어온 수많은 평론은 세계 최악의 아터리스트(art-terrorist)를 낳았다. 이 엽기적인 예술가의 탄생이 이뤄지기까지 이 세상은 얼마나 엉켜있고 짓밟히고 꼬여서 ‘예술’이라는 단어를 정의했는가.      



미적인 착각을 주는 일이 예술가의 임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폭식광대』-「광인을 위한 해학곡」 p. 49  中


    결국 작품의 시작과 끝에서 개인은 임무를 가진다. 장곡도는 예술가로부터 임무를 가졌고, 대학생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누구도 요청하지 않은 임무를 내리고 행했다. 어쩌면 장곡도가 말한 예술이라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예술가’라고 호명된 순간, 그들에게 ‘미적인 착각’을 줘야 한다는 착각의 늪에 빠진 걸지도 모른다. 자신의 세계에서 더 이상 ‘나’는 존재하지 않고 ‘예술가로서’라는 의무와 책임을 부담감으로 이끌고 간 예술계의 파국이 아닐는지 감히 의심해본다.      


    이 세계에는 ‘예술’ 외에도 수많은 착각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는데, 이 착각을 일깨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 인간의 존재를 무너뜨려 폭삭 갈아 앉게 할 무기니까. 그러나 그 무기는 예술과 아이러니하게 공존하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언제나 감탄하고 경계하며 웃고 성찰한다.     

      




에필로그)

건방진 소녀소년이 될 준비를 하라. 불편한 장난을 감수하라. 충격에 민감하라. 성스러운 기침을 하라. 당신은 행복하다. 코미디가 분노를 만나 냉소가 된 사회를 살고 있으니. 현대에는 광인의 눈이 더 정확하다. 비광인은 2개의 눈을 갖고 있으나, 광인은 7개의 눈을 갖고 있다. (…) 인간이여, 텅 빈 눈을 가져라!  

 『폭식광대』-「광인을 위한 해학곡」 p. 52-53  中


     이 책이 단지, 예술에 편향되는 부류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하는 문장이다. 누군가는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는 길을 택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누군가로부터 휘둘리지 않고 듣고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길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이 경계에 서있는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어서 서로의 존재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며 그 대상의 위치 또한 바뀔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술은, 정치는, 사회는, 일상과 말은 이제 착각이라는 다수가 아닌 팩폭(개인의 의견)이라는 긴장 속에 살아가고 있으니, 그럼 텅 빈 눈을 가진 개인이 말해보자. 당신은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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