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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은 Jul 12. 2020

2020 당신의 두려움에게 투표하세요

아무도 요청하지 않은 인터뷰: 내 꿈 vs 사랑하는 이를 미워하는 마음

"한국 예술가들의 자살률은 아마 그보다 더 높을 겁니다. 언니들, 친구들, 동생들…… 거의 격년으로 한 사람씩을 잃었습니다. 예민해서 이름다운 사람들이었다는 건 압니다."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中



두렵죠. 왜 안 두렵겠어요. 아직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은 건 아니지만 스스로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몇 안 지나 읽은 문구였어요.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저 문구가 잊혀지지 않아서 몇 날 며칠 잠을 설쳤거든요. 왜 이렇게 이 불구덩이 속에서 떠나지 못하고 머릿속을 맴도는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까 제 상태가 딱 저 문장과 같은 상태인 거예요. 아, 물론 극한 상황이라거나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다 이런 건 아니고요. 다만, 제가 예민해지는 과정을 겪고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음, 여기서 두려움은 두 가지예요. 작가가 된다는 것과 예민해진다는 것. 같은 부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걸 엮으면 안 좋은 결과가 초래될 거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 예민함은 사랑하는 이를 미워하는 글을 쓰게 할지도 모르거든요.     


저는 이타주의와 이기주의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요. 언젠가는 글을 쓰기 위해 프리미엄 독서실을 작업실로 삼은 적이 있어요. 그때는 휴대폰도 꺼두고 새벽 1시 넘어서까지 작업하다 들어가고 그랬거든요.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죠. 집에 청소는 했는지, 밥은 남아있는지는 관심사 밖이었어요. 온몸으로 글을 쓰는 두려움에 맞서기로 했던 거죠. 그런데 갑자기 언니가 제가 다니는 독서실에 오게 된 거예요. 저는 제 공간에 누군가 들어오면 신경 쓰여서 작업을 못해요. 또 그는 저에게 보살핌의 대상이었거든요. 짧은 집중력을 위해 긴 시간을 들여 자리에 앉았는데, 이건 어렵게 모신 ‘영감’님과 이기심을 집에 도로 택시 태워 보내드린 격이 된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집으로 들어왔어요. 물론 다른 독서실로 옮길 수 있었지만 그냥 집으로 왔어요. 생각을 바꿔봤죠. ‘지금은 글을 꾸준히 쓰는 연습이 필요하니 마음을 건강하게 할 수 있게 집에서 작업하자. 집에 있다가 도저히 안 되면 매일 카페를 가자.’ 하는 마음이었죠. 그만큼 간절했어요.      


자기 꿈에 확신이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물론 그건 가족이더라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최근에 집에서 작업을 시작하면서 저의 위치가 브런치의 작가나 예비 연재 노동자가 아니라 ‘딸’이고 ‘막내’이며 ‘집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느낀 계기가 있었어요. 부모님은 각자의 사업을 하고 있고 형제는 취업의 전선에서 험난한 기간을 보내고 있었죠. 집에 있다 보니까 그런 게 다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일이 고된 당신들이 와서 애교도 부려야 했고. 밥도 지어야 했고 설거지도 해야 했고, 틈날 때 빨래도 돌리고, 널고, 접고, 서랍에 넣고, 청소기도 걸레질도 해야 했죠. 

저는 지금 저에 대한 두려움만으로도 복잡한데 ‘집에서의 나’가 역할이 되고 이게 굉장히 업무처럼 부담이 되는 거예요. 저는 사실 아직 졸업도 안 했고 이제 막 학기를 마친 대학생이란 말이죠? 저한테 어떠한 보상도 없는데 이 모든 걸 하루에 다 해야 할 의무가 있을까요? 이렇게 말하면 엄마는 이런 말을 해요. “너 내가 밖에서 일 안 하고 집에 있으면 매일매일 다른 반찬에, 국에, 청소에, 바닥 닦고 이불 빨래에 새집처럼 만들 수 있어.” 저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나 언니나 아빠한테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너무 불편했어요. 엄마의 말 뒤에 생각을 해보니 제가 하지 않으면 엄마가 다 하게 될 것 같더라고요. 이해가 안 됐죠. 


그래서 참고 해보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틈이 나면 집안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아실 거예요. 특히 재택근무하시는 분들, 연재 노동하시는 분들. 집에 있어도 일을 하는 건 똑같잖아요. 틈이라는 게 잘 나지 않아요. 오히려 화장실도 참아가면서 일해서 방광염 걸리기 쉬운 직업 중 하나가 작가라는 말을 tv에서 들은 적 있거든요. 그런 사람이 틈을 내서 한다는 건, 하루 일을 반으로 줄이라는 거죠. 이전부터 정해놓은 글쓰기 스케줄이 있고 정해진 시각에 시작해야 밤 12시가 돼서 딱 잠에 들 수 있어요. 그래야 다음 날 좋은 컨디션으로 좋은 글을 써낼 수가 있거든요. 정말 핑계가 아니라 짬이 없어요. 질 좋은 글을 써내기란 그만큼 까다롭고 외로운 환경이 필요한데 집에 온 이상 그게 쉽지 않고 자꾸 제 꿈이 아닌, 사랑하는 이를 미워함에 대한 자책이, 커져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 두려움과 신경질 중 두려움을 택하기로 했어요. 저는 한 달 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이곳을 잠시 떠나려고 합니다. 앞에서 실컷 욕해놓고 ‘사랑하는’은 왜 붙이냐고요? 저는 앞에서 말한 업무와 역할이 저에게 편중되는 것이 싫을 뿐이지 가족 구성원 각각은 모두 사랑합니다. 다만, 저는 곧 학교를 졸업하고 곧 독립을 하겠죠. 물론 같이 사는 방법을 택할 수 있어요,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그리고 제 꿈에 가장 열정적인 순간에 오로지 이 꿈을 위해 불태워보고 싶단 말이죠.     


근데 이게 쉽지 않더라고요. 물론 이번에도 한 번 더 가림막이 나타났죠. 작가니까 이 정도쯤은 시련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 그렇다고 작가라는 직업이  모두 시련을 겪는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번에는 언니인데요. 제가 가는 곳에 2-3주간 같이 살자고 제안하듯 말하는 거예요. 사실 아예 자취하는 기간 동안 같이 살자고 말하는 걸 절대 안 된다고 하니 기죽어 있다가 하루 뒤에 또 천진난만한 얼굴로 오는 거예요. 심지어 저의 약점을 가지고. 근데 저는 언니의 그런 점이 가장 미워요. 자기 좋을 대로만 생각하고 “어쩌라고~ 이게 다 널 위한 나의 마음이다. 너는 처음 일하면 한 달 엄청 힘들어하지 않냐. 너 절대 못 버티고 울 거다.”라는 팩폭을 하면서 말이죠. 맞아요. 네. 저는 분명 울 거예요. 저는 잘하고 싶은 일을 못하면 스스로에게 화나고 잘하려고 하다 보면 실수해서 상사에게 혼이 나기 일 수거든요. 그리고 이제 성인인데 힘들어서 울어도 다 제가 선택한 일인데 제가 감수해야죠. 우는 거? 힘든 거? 그게 어때서요? 다들 처음은 힘들지 않나요? 그리고 예외일 수도 있죠. 작년에 학교 프로그램으로 했던 출판사 인턴 한 달 동안은 한 번도 안 울었어요. 오히려 기뻤거든요.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구나’ 하고요.      


저는 분명 이 전쟁에서 이겨 혼자만의 멋진 독립을 이뤄낼 것입니다. 사실 글에 대한 두려움은 온전히 혼자 작업을 할 때만 느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 우울과 혐오의 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자는 쪽이 더 큰 것 같아요. 제가 앞으로 느낄 두려움은 무궁무진할 거예요.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글을 쓰는 것과, 건강과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과 업무에 대한 등등 많단 말이죠. 차라리 그 두려움만큼 통장에 돈이라도 꽂히면 좋을 텐데. 아무튼 저는 오늘의 글을 끝으로 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두려움보다 피부로 와 닿길 바라요. 그만큼 초심을 가지고 계속 성장해나갔으면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사랑하는 이로부터 우울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전 그 일이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드린다면, 최근에 아버지가 축농증 수술을 하셨거든요? 제가 두 달간 아버지 따라다니면서 병원 진료받고 수술 때도 앞에서 기다리고 며칠을 꼴딱 새워가며 간병하고 하니까 “아, 정말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랑에는 많은 유형이 있지만 저는 이 순간만큼 와 닿은 적이 없었어요. 만약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해볼 수 있는 최대한으로 드러낸다면 어떤 것일까요?”라는 질문이 들어온다면 저는 “제가 대신 아플 거예요.”라고 대답할 정도로 가족을 사랑해요. 가족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그럼 오늘 아무도 요청하지 않은 인터뷰, 아요인! 1회 끝입니다. 솔직 발랄, 다음 인터뷰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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