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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은 Jul 22. 2020

포기

시선이 단어를 만드는 것에 반대합니다

    포기라는 말을 들을 때면, '포기'라는 단어에 심중이 기운다. 살갗에 와 닿는 정의를 눈에 들이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고 플랫폼을 휘둘러봐도 경험담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휩싸이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나는 '포기'라는 단어가 가진 우울과 슬픔의 아우라가 분명 목성처럼 다른 띠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포기'가 절대, -(마이너스) 요소로서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포기'는 배추를 세릴 때의 수 단위와 동음이의어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포기'에 대해 심오하게 빠져들 때면 무언가 겹겹이 쌓여있는 느낌이 든다. 결코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은 경험, 그 안에 쌓여있는 노력과 땀방울, 눈물, 마음과 이성과 사고가 맞닿아 싸우고 있는, 그런 속에서 결론을 도출한 하나의 책처럼. 모든 포기는 존경받을 만하다.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으며 지금까지도 자신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것은 아닌지 자기 폄하적 메시지가 수시로 자신의 몸을 수직으로 내리꽂기 때문이다.


    포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며 그래서 더 존귀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 미련 없이 놓는 것이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을 놓아줌'으로서 원하는 무언가에 닿았고 달렸으며 도달했음을 꽤 멋있게 말하는 날도 분명 온다. 포기는 포기를 낳는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 한 번 포기했다고 그다음 것을 포기한다는, 그래서 너는 안 된다는 시선은 상당히 폭력적이다. 포기는 그 사람의 선택이다. 포기는 용기 있는 선택이며 절대 그 누군가로부터 질타받을 행위가 아니다. 왜냐하면 포기의 순간, 나는 내 인생을 다른 걸로 책임지겠다는 대담한, 세상에 대한 포부일지도 모른다고 거창하게 말할 것이다. 누가 어떤 선택을 하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이어야 한다.


    그것이 옳은 지 아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과론적 사회에서는, 부와 명예 지위로 판단하지만, 이제는 시선을 옮겨 과정 중심 사회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물론 결과가 좋아야 과정이 더 빛이 나지만, 과정이 좋아 미래가 기대된다는 경제구조인 '크라우드 펀딩'이 떠오르는 것도 그런 사회구조의 움직임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포기는 절대 좌절의 순간이 아닌 해방의 순간이며 용기 있는 선택이었고 결단력 있는 행위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포기'의 의미는 결코 사람의 감정을 부정적인 것으로 동요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 정의가 사람을 움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축척된 말벌집 구조가 수많은 독을 낳은 것이지만. 시선이 여전히 누군가를 수평으로 보지 못하고 안타까움, 무시, 동요, 계급적 구조의 사상과 동시에 혀를 차고 있다면 그 시선은 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할 것임을 인지해야 한다. '포기'라는 단어가 사전에서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를 잃지 않게 하려면 결코 그 경솔한 시선은 놓아주어야 한다. '포기'는 결코 약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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