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정은 Jul 24. 2020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따스함이 남아있는

장류진,「연수」 서평


"왜 또 거룩한 척 하면서 나만 나쁜 사람 만드는 거야? 내가 결혼 생각 없다고, 결혼 안 할 거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괜찮아. 걱정하지 마. 이건 엄마가 해줄게."


 세상이 변해도 끊이지 않는 목소리들이 이곳에는 남아있다.

입시, 대학, 장학금, 시험, 공부, 취업, 회사, 초봉, 노력, 운전, 연애, 결혼, 출산, 자녀계획, 노후.

보태준 것 하나 없음에도 너무나 많은 사생활들이 공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까지 퍼져가고,

누군가의 걱정을 사며 입방아에 오르기를 반복하다 도착한 편지는 고작 수백만 원짜리 결혼정보회사 서류.

초라하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줄 알았던 이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내게 가장 가까웠던 당신의 삶을 깎아내리면서까지 열연을 펼치는 그녀가 나를 또 나쁜 사람을 만든다.



"되고 싶은 모습이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 모습에 가닿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잘 몰랐다. 그러니까 운전대를 잡기 전까지는."


 장류진의 <연수>, 말 그대로 '연수'다. 장류진을 잘 아는 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짧은 지식을 드러내지 않고 이 작품을 읽고 느낀 대로만 말하자면, 그대로, 그대로라고. 비유, 그런 수고스러운 일 없이, 작가가 되기 위해 글 쓰는 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비유, 그런 잡다한 것 없이 들려준 그대로.

운전 연수를 위해 주연은 포털사이트를 검색하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광고성 문구에 맘 카페에 가입하고 낯선 이로부터 운전을 배우게 된다. 25의 그의 기간 동안 노력 없이 이룰 수 없는 건 없었다. 탄탄한 줄 알았던 삶에 실패 한 줌이라는 건, 사소하지 않은 낯선 것이었다. 익숙한 노력을 두렵게 만들고 자꾸만 회피하게 만드는 걱정으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그저 "주연아, 운전 같은 거 정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라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은 건, "됐다, 됐어. 그렇게 하기 싫으면 그냥 하지를 마."와 같은 비난이라도 듣고 싶은 건, 결코 그 누구도 가늠해서는 안 될 그녀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 주연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무례함'으로 다가온 '강사님'으로부터 운전을 배우고 위로를 받으며 대화를 나눈 이틀, 단 그 다섯 시간이 지난 악몽 같았던 나날들을 입 밖으로 낼 수 있게 된,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례함에서 화가 났지만 그런 그에게 배려를, 따듯함을 받으며, 주연은 내일 그토록 갈구하던 클라이언트의 오피스로 액셀을 밟는다.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계속 직진. 그렇지."


 내 노력의 결과가 엄마의 삶에 가장 큰 기쁨이 되는 순간까지 그녀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한없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그녀의 '요지경 화법'은 누가 만들어 놓은 레퍼토리인지 가슴을 치며 소리쳐 봐도 세상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이 갑갑함 속에 만난 어려운 도로, 그 누구 나에게 위로와 응원을 하지 않는 세상에서, A4용지에 궁서체로 쓰인  '초'와 '보' 하나로 얻는 관용적 배려란, 비상등을 켜고 감사를 보낸다거나 창문을 열고 양해를 구하는 그 손길들, 어쩌면 그 낯설고 무서운 줄 알았던 그곳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공간이 된 걸지도 모른다.



"흘러들어온, 그리고 이어가는."


 장류진 작가의 말처럼 소설은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 망했는지 아닌지 아주 판단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도착만이라도 해보자고 그는 그렇게 자신을 어스르고 달래서 이곳에 46페이지를 따냈다. 가장 솔직한 마음과 생각을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자신과 소설을 바라보며 써냈다. 그런 그의 마음 졸임에 공감하기에 이번 작품은 더없이 따듯하고 웃음이 난다.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작가의 성격과 필자의 성격이 비슷하다고 느낀 건 나만이 느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라며 소리치고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변하지 않는 세상에, 아직도 바뀌지 않은 마음도 남아있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이 이렇게 다르면서도 공존한다는 건, 이치와 말도 안 되는 고정관념과 논리들이 판을 치는 와중에도 인간애라는 따스한 마음이 살아있기에 이 아이러니한 세상에서 '달성'이 아닌 '도착'을 하는 것이라고, 우리의 연수는 이렇게 행해질 것이라고.

작가의 이전글 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