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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은 Jul 08. 2020

등산 2

"가자."

'어? 그때는 이런 거 없었는데?'


별 말없이 아빠 뒤를 따라 걸었다. 아빠는 말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걸은 게 1km이고 지금 넘어온 이 산은 2.4km야."

'응? 내가 생각한 산에는 이런 거 없었는데? 분명 여기서 내려가서 예전처럼 김밥천국으로 가서 원조 김밥과 우동 국물을 마시며 라볶이를 먹은 뒤에 엄마 줄 쫄면을 포장해 가야 하는데…'


앞에서 하나 안 한 말이 있다면,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다. 3주 정도 진행하였고 5kg를 빼고는 정체기가 온 시점이었다. 산을 오른 시간 기준으로 17시간 공복 중이었고 내가 아는 정상 기준에서는 휴대폰을 안 봤으니 몇 시쯤이었을까, 아무튼 갑자기 눈이 쾡 해졌다. 더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생떼를 부려볼까 했지만 그 순간 노랗고 큰 개가 보였다. 너무 멋있고 크고 귀여워서 따라 걸었다. 앞에 채우는 무언가를 하지 않아 아빠는 불쾌해했지만 다행히 그 개와 주인은 이 산에 자주 오던 사람이고 그래도 개가 주인 말을 잘 따르고 주인은 개를 잘 안정시키기 때문에 앞에서 표를 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숨이 차올랐다. 물을 가져오지 않음에 대한 슬픔과 저지를 입고 온 나에게 분노가 생겨 얼굴까지 붉어졌다. 아빠는 벌레를 무서워하는 나 때문에 앞에서 걷고 있어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봤다면 아직까지 놀림감이었을 것이다. 성에 받쳐 얼굴이 붉어진 아기가 큰 소리를 내며 울 때 정도의 얼굴이었다. 온 기운은 빠졌고 얼굴은 점점 붉은색에서 창백해져 갔다. 뒤에서 출발한 몇몇의 사람이 걸어가고 한 무덤을 지나갈 때쯤에 또 어떤 사람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전에는 내지 않았던 숨소리도 내가며 속도가 떨어지고 있을 때, 아빠는 앞을 보며 말했다. "저 사람이 아빠가 전에 말했던 사람이야. 젊은 여성분 얘기했었지? 매일 이 시간에 하루도 안 빠지고 여기를 오르고 있더라고. 어떨 때는 이 산 너머 이어지는 산 정상까지 갔다 오더라니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저 물 한 병과 정상까지의 거리, 그리고 저지와 휴대폰을 버릴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무런 대꾸가 없자 아빠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귀신같이 내 마음을 알아낸 걸까. 저지와 휴대폰을 들어줬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 같아 기쁜 것도 잠시, 다시 숨이 턱 끝까지 올랐다. 아빠의 '아'자도 나오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나지 않고 몇 번이나 아빠와의 거리가 멀어지자 아빠는 의자가 있는 곳에서 쉬어가자고 했다. 감사했다. 평소에도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이거는 생명과 관련된 감사다. 이전과는 비교를 할 수 없는 감사였다. 조금만 더 쉬지 않고 걸었다면 네발로 걸었을 것이다. 그러다 거미를 보고 기겁을 했겠지. 하여튼 의자에 앉아 쉬니 높고 빽빽한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넓게 펼쳐진 도시가 보였다. 


"우리 딸이 체력이 많이 떨어졌네. 전에는 아빠 앞질러가고 여기도 뛰어갔는데."

"내가 여기 온 적이 있어?"

"어릴 때 왔었지. 그때는 왕복도 했었어."


그러고 보니 꽤 익숙하다. 어렵지 않고 헤매지도 않았다. 주위를 살피지도 않았다. 힘들어서 땅만 보고 걷는다고 모르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아직 걷지 않은 산길조차 머릿속에 그려진다. 땅거미와 벌크업한 산개미들이 움직인다. 더 이상 이곳에 앉아 있을 수 없다. 다시 걸었다. 오르고 올랐다.


'저곳이 정상이겠지. 이번에는 진짜 정상일 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저기만 가면 정상에 도착하는 거야' 


무수한 착각과 상상이 15번은 족히 정상에 도착하게 했다. 하지만 진짜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 아빠 공장에서 가져온 초코바 하나라도 챙길걸. 더 이상 다이어트는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마주쳐서 내려가는 사람이 있다면 미안함을 안고서라도 부탁할 것이라고 백만 번이 아니라 계속 생각만 했다. 반복되는 착각은 좌절을 일으켰고 체력적으로는 마이너스에 달할 것 같았다. 글 쓴다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니까 그래도 아빠를 따라 걸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그쯤에서 알아차렸다. 이미 나의 체력이 바닥이 난 것을. 돌아가자고 했다. 나는 거기에서 말했다.


"아빠, 우리 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가자. 그 다리로 가자."


정상이 얼마 남았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물을 마실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아빠와 나는 올라올 때보다 빠르게 내려갔다. 몇 번의 딴생각에 넘어질 뻔도 했지만 다행히 넘어지지도 않고 작품에 대한 소재도 몇 떠올랐다. 다리에 도착했고 다리를 건너지 않고 그 밑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5분쯤 걷자 산을 나왔고 사람들이 사는 주택가가 나왔다. 드라마 세트장 같이 생긴 곳이었고 그곳 중 단 두 곳에만 사람이 살고 있었다. 다른 집 앞에는 흰 종이로 무언가 적혀있었고 아빠의 말로는 부도가 난 곳이라고 했다. 더 걸었고 눈에 익은 곳이 보였다. 작은 풋살장이었는데 두 개의 장이 붙어있었다. 그 바로 옆에는 '정글인'이 있었다. 그제야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내가 다니던 태권도장에서는 숙박 훈련을 빙자한 야영겸 레크리에이션이 있었는데 그때 밤에 갔던 곳이다. 진짜 재미있었는데. 살면서 처음으로 축구를 해봤었고, 그때 나는 구기종목을 못하는 걸 알아챘지만 뛰어다니는 게 그저 신이 났었다. 그 옆에 있던 '정글인'은 실내 어린이 놀이터인데 몸으로 뛰어노는 기구와 펌프도 있고 인형 뽑기 기계, 오락까지 다양한 것이 있었다. 맞다. 이곳은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다. 내가 그곳을 지날 때 외관상은 그대로지만 목재나 내부로 보여야 할 기구들이 하나도 있지 않았다. 왠지 모를 쓸쓸함은 이미 어른이 되어 그곳에 가지 못함에도 아쉬움에 꿈속에서조차 이곳에서 뛰어다니면 놀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편의점을 찾아 돌아다녔다. 이제 내 신경은 모기도 정상도 아닌 물과 삼각김밥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그것에 온전히 집중하게 하지 않았다. 어릴 때 자주 간 곳이 왜 이렇게나 많은지, 이벤트 탕으로 인삼탕과 커피탕이 있던 목욕탕이 보였다. 아빠는 그 옆에 있던 파스꾸지에 나를 데려가려고 했단다. 하지만 닫혀있자 눈길일 쏠린 곳은 목욕탕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저곳은 정말 하와이이다. 하지만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뀐 지금도 목욕탕은 조심할 필요가 있어 아빠를 돌려세웠다. 조금 더 내려가자 cu가 보였고 발걸음을 떼려고 하자 아빠는 바로 옆 해장국 가게를 가자고 했다. 순간 망설여졌다. 


"아빠, 나 밥 먹어도 될까? 아직 공복 시간 남은 것 같은데."

"당연히 먹어야지."


아빠의 확연하지만 부드러운 어조와 표정은 더 이상의 고민도 필요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한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보였고, 아저씨는 바깥 테라스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신물을 보고 계시다 우리를 보자 담배를 끄고 신문을 접고는 주방으로 향하셨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반찬을 가져다주셨고 생명수가 왔다. 옆에 있던 작은 컵에 물을 따라 아빠를 주고는 큰 음료수 컵에 생명수를 담아 3잔을 벌컥 마셨다. 물이 달 다기보다는 이렇게 마셔도 화장실은 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창밖에는 테라스 밑으로 고양이가 걸어가고 있었고 '꺽꺽' 소리를 내니 눈을 마주쳐줬다. 주문한 뼈해장국 2개가 나오고 아빠는 수저를 세팅했다. 벌겋게 떠오르는 해장국 속 기름과 반찬으로 나온 양파절임의 시큼한 간장 냄새가 싱그럽게까지 느껴졌다. 


사실 나는 비염이 있다. 비염도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나는 알레르기성 비염이다. 이 경우의 비염이 모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김이 센 음식을 먹을 때는 코가 막혀 맛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경우는 좀 드물다. 저녁이 아니고서는 괜찮았는데 해장국을 뜨는 순간 연한 단맛이 났다, 혹시나 싶어 양파절임을 먹으니 시큼하고 당기는 간장 맛이 입맛을 돋았다. 김치도 깍두기도 다 나는데 해장국은 맛이 강하지 않았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다. 하여튼 반쯤만 밥을 말까 하다 마음에 드는 국물 농도가 안 나오길래 후딱 남은 반공기마저 말아 비볐다. 뼈를 들고 뜯으며 먹는 중에 아빠는 "뼈 먹는 사람 중에 살을 접시에 다 골라내서 다시 뚝배기에 넣어 먹는 사람도 있대."라며 웃었다. "아빠, 나도 원래 그런데?" 배가 고파 원래 지키던 먹신념까지 놓고 뼈를 물어뜯은 것이다. 살면서 한 번도 먼저 뼈를 먼저 뜯고 밥을 먹은 적은 없었는데, 역시 생존 앞에서는(?) 신념도 버릇도 사라진다.  


밥을 먹고 나오니 살아있음을 느꼈다. 아빠는 웃으면서

"아까는 얼굴이 터질 듯이 붉고 흘러내릴 것 같더니 이제야 좀 사람 얼굴 같다." 하며

역시나 놀렸고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멋쩍어 웃어 보이고는 편의점 쪽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아빠는 다시 목욕탕 쪽으로 올라갔다. 횡단보도를 건넜고 다시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아빠, 왜 거기로 가?'


하지만 예정에도 없던 밥을 먹었으니 산을 오르는 것에 크게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칼로리를 태워야 했다. 다행히 거기서부터는 내가 생각한 정상이 있는 산이라 1km만 걸으면 집에 갈 수 있었다. 산도 악산이 아니라 괜찮다. 걷고 걷다 보니 처음에 보였던 '산속 헬스장'이 보였다. 산이 오래되어 나무에 등을 치지는 못하지만(?) 30도 정도 허리를 꺾고 누워서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10개를 했고 꼬리뼈가 찔러 아팠다. 아빠는 더 해보라며 놀렸지만 본인은 3개도 못하고 나이 탓을 하며 마중 나온 배를 툭툭 쳤다. 혈압 때문에 그만하라고 아빠를 달래고 하산했다. 얼마 만에 평지인지(?) 센티멘탈한 바위보다 3배는 좋다. 올라갈 때는 쌀쌀했는데 내려오니 해는 강하게 내리쬐고 여름이라 해도 손색없었다. 아빠는 내 등을 툭툭 치며 체력이 너무 떨어진 거 같다고 다음에는 체력도 기르고 밥도 먹고 물도 하나 챙겨서 정상에 가보라고 했다.


'다시?'


산에 오르며 하는 모든 말들은 명언이나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말같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정상이다."

"산길이 험난해 보여도 곧 있으면 평지이다."

"딴생각하면 넘어지기 일수다."


그냥 별 느낌이나 색깔을 내려고 한 말이 아닌데도 그런 말들이 된 것만 같다. 등산을 언제 다시 할지 모르겠지만 곤충이 많은 지금은 아니다. 더위가 강해질수록 벌레는 사나워진다. 가을에는 동물들이 먹을 것을 찾아 내려오고, 겨울에는 추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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