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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은 Jul 06. 2020

등산 1

두 개의 산

등산을 가면 의도치 않게 하는 모든 말들이 명언이 된다. 산속 기운과 정기가 사람을 감싸기 때문일까. 오글거리는 걸 참지 못하는 나는 평상시 입을 닫고 살지 못함에도 쉬이 입을 열지 못한다.


사건의 발단은 어제 새벽 4시 30분이었다. 분명 침대가 있는 큰 방에서 언니와 나는 잠을 자고 있었고 혈액형에 대한 연구나 심리학에 분노를 일으키면서도 꽤 오래 익숙해져 있었다. B형인 나는 오른쪽 다리를 이 무더운 더위에 견뎌내지 못하고 이불 밖에 내동댕이 친 죄로 3방이나 물렸고 왼팔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넘어가는 기점은 그때였다. 물린 곳을 주위로 모난 손톱은 네모를 그렸고 중앙에 십자가를 박았다.


'내 신경은 온통 너였어.'


드라마 응답하라에서 나왔던 대사인데, 여름만 되면 외치고는 한다. 내 잠을 깨운 모기에 대한 청각은 무의식 속 나를 의식의 세계로 신경이 끌어낸다. 누군가 그랬던가. 간지러움도 또 다른 고통이라고. 전날 밤 오랜만에 샤워를 하고 잤음에도 땀을 꽤 흘렸나 보다.


'나는 냄새 안나던데'

 

찜찜한 느낌은 기어코 귀까지 닿았고 아무리 집중해도 모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작년에는 산속에 둘러싸인 기숙사에서 있어서 그런가. 산모기라 소리도 크고 몸짓도 꽤 둔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모기도 항체가 생기고 변화했는지 소리가 나지 않는다. 결국 무거운 몸을 일으켜 노력해도 떠지지 않는 눈을 두 손가락으로 벌리며 작은방으로 향했다. 분신과도 같은 나의 소중한 휴대폰, 할 일 없던 일요일을 풍요롭게 보내려 전날 밤 꽤 많은 영상에 '좋아요'를 찍어놨는데 할 수 없이 유튜브를 켰다. 하루를 미뤄둔 카톡도, 디엠도 지금에서야 보냈다. 새벽에 답장을 남긴 나의 정성에 감동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잊지 않고.


그래도 새벽 6시 반이다. 꿈꿨던 풍요로움은 한 시간 반이 다였다. 하마터면 애매한 일요일을 보낼 뻔했다고 위로해본다. 하여튼 아직 잠을 자지 않고 있던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왜 여태 놀고 있냐는 친구의 물음에 모기가 나를 공격했다는 깊고도 웅장한 전설급 얘기를 던져주고는 친구는 공감을 하며 더한 말을 보탰다. 자기도 친구와 밖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친구는 한방도 물리지 않고 자기만 13방이 물렸다며 나의 감탄을 불러냈다. 친구는 나의 감탄과 공감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아님 잠에 들고 싶었는지 짧은 쪽지와 모기퇴치 팔찌를 보내줬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과 이제는 이런 것까지 선물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잘 쓰겠다는 고마움을 표하고는 마무리 말을 보내려는데 문밖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화장실 변기 물이 내려가고 물이 흥건한 욕실을 끄는 슬리퍼, 아빠다.

아빠는 8일 동안 엊그제 비 온 날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등산을 갔다. 시간이 없으면 한 시간이라도 올랐고, 오늘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2시간 코스에 오를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6시 50분이었다. 왠지 모르게 내일은 등산에 가고 싶어 아빠한테 함께 가자고 했다. 혹시 아빠가 깨웠는데 ㄴㅇㄱ자세로 누워있다면 아빠 혼자가라고 했는데 그런 게 어디 있냐 간다고 했으면 가야 한다고 타박을 했다. 모기 덕분인가 오늘 들을 잔소리 하나는 면했다(피를 물려주었으니 심심한 감사는 표했다고 생각한다)


아끼는 아디다스 세트를 입고 문을 열고 나왔다. 아빠는 혈압이 있어 모자를 썼고 최소한의 필요한 워치, 스마트폰, 블루투스 이어폰만을 챙겼다. 오랜만에 가는 산행에 저지를 입을까 고민하다 엄마가 입고 가라는 소리에 귀 얇은 한 아이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7시가 되기 전이다. 아파트 뒷길에는 사람이 꽤 넘친다. 코로나 19 이후로는 저녁에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기점에 국립공원이나 동네 공원에는 사람이 넘쳐난다는 얘기가 진짜였나 보다. 일요일 아침부터 나온 한국 사람들에 엄지를 올려 감탄을 보낸다. 평지가 끝났다. 돌아가려면 지금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밟은 바위(만지면 시원하고 무늬는 화려하면서도 감촉은 거친 듯 시원하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집에 하나 두고 싶다), 얇은 밑창을 뚫고 올라오는 촉감은 하나 더, 하나 더 밟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뒷산에 6년 만에 오르는 것이다. 어릴 때는 아빠, 언니와 셋이서 수수께끼나 끝말잇기를 하며 자주 올랐고 고2 때 학교 체육시간에 한 번 오른 게 마지막이었다.


내가 아는 정상은 성인 기준 40분이면 갈 수 있다. 하지만 잘 아는 사람들은 농담을 하면서 30-35분 정도면 충분히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게 추억 여행을 하며 새벽부터 잠긴 목으로 참새 마냥 조잘거리며 내가 아는 정상에 왔다. 이쯤이 1km 정도이다. 이제 돌아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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