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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은 Jul 31. 2020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당장이  더 와닿는다

타밈 안사리, <다시 보는 5만년의 역사>  서평


서평을 읽기 전 하나 염지해 둘 점은 이 책은 '역사'라는 장르를 벗어나더라도 그리 친절한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책 전체에 대한 서평이 아니라 일부 문장에서 의견을 보태는 서평을 택하려고 한다.

씽큐온 6기 첫번째 책-다행히도 두 번째 책은 좋다


(프롤로그)


내가 가끔 문학이 아닌 이런 장르를 읽는 이유는 상식이나 바깥에서 떠벌릴만한 이야깃거리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이미 그런 얘기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 않나. 다만, 이런 개인의 시각에서 쓴 책은 옳다 아니다 이전, 새로운 시각을 드러낸다.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사실에 이토록 새로운 시각이란,





인간, 언어. 스토리텔링(신화)


"과학자들은 그들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지혜롭고 지혜로운 사람들'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부른다. (···) 아마 그것은 진정한 언어의 탄생인 듯싶다."
p.58-59(1장/리디북스 모바일 버전)


이전 이류와 사피엔스 사피엔스를 구분하는, 지혜로운 인류에서 지혜롭고 지혜로운 인류의 차이점은 '언어'와 그림, 춤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말하는 부분이다. 이 셋의 공통점은 일상이며 예술의 부류이고 표현하고자 하는 자유이며 투지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본능이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개화기가 언어를 사용한 덕분에 찾아왔다고 본다면 아마 이 시기는 이야기하기가 시작된 때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는 인간이 최초로 모종의 역사의식을 지닌 때, 인간이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를 발명한 때일 것이다."
p.75(1장)


인간이 언어를 얻었기 때문에 발견한 춤과 예술, 요리와 소통은 곧이어 역사를 만들었고 이는 곧이어 '개인'을 만들며 그것은 기록과 채집으로 가 아닌 나의 '과거'를 인식하게 된 계기라는 것을 일깨워줬다. 이때야 비로소 시각을 의식하며 조금 더 인위적인 개인주의적 성향을 찾기 시작한 때라 추측한다. 자연에 묻혀 사는 모든 생물과 같이 살아가던 인간이 인위적이고 공상이라는 것을 가지게 된 계기, 인간은 언어를 가짐으로써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유목민들은 결코 생각나는 대로 떠돌아다니지 않았다. 사냥꾼들은 사냥감이 있을 법한 곳으로 갔다. 목동들은 익히 잘 아는 목초지로 향했다. 상인들은 돈벌이 기회가 많은 장소로 옮겨 다녔다. 행상꾼들은 가장 수지맞는 경로를 알아냈고, 그것을 즐겨 이용했다. 대개는 지리적 조건이 그런 경로의 위치를 좌우했다.  (···) 여러 교역로가 교차하는 곳 근처의 마을은 자연히 도회지로 발전했고, 몇몇 도회지는 결국 도시로 성장했다. 도시의 주된 이무는 상인들에게 편의--를 판매하는 것이었다."
p.118(4장)


인간의 이기주의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으로, 자신이 즐기는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하는 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단체로 묶일 수 없는, 쌍둥이라도, 생긴 게 동일한 지구 반대쪽 인물이라도 개인이기 때문이고, 개인은 이 지구에 아무런 의무 없이 자유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에 살며 의무를 지키고 약속을 다짐해야 하지만, 개인으로서 자유는 법보다 위이며 생명보다 아래인 것에 동의하는 바이다. 왜냐면 자유란 존엄한 것이고 그 어떤 생명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면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인 것에 타인의 이해와 인정이 필요하지 않듯, 개인은 자유를 일깨우며 이기주의라는 말을 일깨울 것이다. 필자가 개인주의라는 말보다 이기주의라는 말을 좋아하는 건 어쩌면 아직 타인을 많이 의식해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유를 원할수록 책임감은 커져가고 또 다른 개인의 자유를 수호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은 낯선 개인주의보다 이기주의가 나를 경계하며 자유를 만끽하게 하는 건 필자의 생각이다.



"이후 등장한 문화들을 근거로 추측해보면 아마 노크인들은 정령을 통해 빛의 신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상상한 것 같다."
p.138(4장)


신화와 정령이 생겨나는 과정이 좋은 점은 종교가 탄생할 때처럼 스토리텔링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띄엄띄엄하고 부족한 이야기는 맹신하지 않을 힘을 주며 의존하지 않고 단순히 가벼운 얘기를 퉁칠 수 있다. 더불어 전문적일 수 없기 때문에 "아~ 그랬구나" 혹은 "음~ 그렇구나."이다.




다만, 어떤 신이 다른 신보다 더 대단하고 강하다는 점, 또는 괜히 어떤 일을 저질러서, 아니면 어떤 일을 하지 않아서 평소 자신들이 섬기던 신에게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점만 드러날 뿐이다."  
p.177(5장)


그렇다면 신은 악덕 고용주네. 열정 페이만을 강요하고 인간을 두렵게 하고 그들 말 한마디에 동요하게 하는?





"송나라 시절, 중국의 최상류 층 남자들은 그 부러진 발을 아름답다고 여겼다. 그것은 문화적 힘과 풍요로움의 어두운 면이었다."
p.405(13장)


중국, 아니 송나라의 어리석고 안타까운 폭력에 이 또한 여성이 피해를 받을 때,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 노예를 부리고 사들이는, 그렇게 잘못 돌아가는 세상 속에 멍청한 남성들은 의원을 부르지는 못할망정 부러지고 화상 당해 부르트고 멍든 발을 보고 아름답다, 예쁘다는 말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망행을 저지른 것이다.




좋았던 문장


"하지만 '개방적'은 '외향적'의 동의어가 아니었다." p.407( 10장/리디북스 모바일 기준)


"중국의 경우처럼, 인도에서도 일부 사상가들은 동일한 거대 서사를 바탕으로 약간 다른 사상 체계를 정립했다.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는 성행위와 폭력을 삼가고 소유물을 포기하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또 다른 사상의 시조인 싯다르타 가우타마, 즉 부처(깨달은 자)는 철학보다는 이승에서의 끝없는 순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천 수단을 제시했다. 부처는 신봉자들에게 세상을 등지고 고난의 길을 걸으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세상을 신중하게 살아가고, 중도를 실천하고, 명상 기법을 이행하라고, 또 그렇게 하면 모든 고통의 원인인 욕망의 굴레가 느슨해지고 깨달음과 해탈의 경지인 열반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공자처럼 부처도 신을 거론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초자연적 사안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부처는 그런 문제는 깨달음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부처는 자신을 의사에 비유했다. 세상은 병들어 있었고, 그의 의술을 베풀고 있었다." p.164(5장)


"지구상의 인간 존재의 불길한 징조는 19세기에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언급한 영국의 "캄캄하고 악마 같은 방앗간"은 공장과 기관차가 토해내는 연기를 가리켰다." p.1024(30장)


"오늘날 인류는 지구를 파괴할 만한 힘이 있고, 우리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해하기 어렵다. (···) 우리에게는 화석 연료를 더는 사용하지 않고, 오염을 멈추고,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리고, 인구 팽창을 억제할 만한 기술적 역량이 있다." p.1038(31장)


"소설가 얀 마텔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쓰는 언어들의 시민들이고, 세계는 언어가 아니다." p.1040(31장)


"점은 세계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모든 것이다. 연결은 우리가 덧붙이는 것이다. 큰 그림은 우리 마음속에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면 그 그림은 진짜처럼 느껴진다. 사실상 그것은 진짜다. p.1043(31장)


"그리고 세계관은 끊임없이 바뀌는 실세계와 보조를 맞추려는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어떤 사실도 지금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 p.1049-1050(31장)


"내가 속한 세대의 사람들에게 1960년대는 갑작스럽고 광범위한 문화적 전환기였다. 세계 전쟁은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식민지는 제국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번영의 물결이 점점 일렁이고 있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특정한 가치 체계가 나타났다. 크고 강한 것은 입지가 좁아지고, 작고 단호한 것은 이 인기를 얻었다. 혁명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었다. 정체성에 근거한 공동체가 형성되어 해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동시에 급진적 개인주의가 찬미의 대상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p.1058(31장)


"지금 이 세상은 결코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공유하는 세상이 아니겠지만, 우리가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그런 세상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모든 이가 '똑같아지는 것'도, '저들'을 교화해 우리와 공존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우리가 저들과 똑같아져 저들의 세계에 합류하는 것도 아니다." p.1065(31장)




새로웠던 문장


"아득한 옛날에는 암기가 중요했지만, 암기는 대부분 거룩한 내용의 글을 기억해야 할 때 쓰이는 방법이었다. 암기의 대상은 복잡한 사회에서의 일상적 상호작용이 아니었다. 그 결과 문자가 언어의 연장선으로서 등장했다." p.210(6장)


엔히크 항해 왕자는 성전 기사단의 후 신인 그리스도 기사단(Military Order Or Christ)의 단장이었다. 그는 수도사처럼 살았고, 말 털로 짠 옷을 입었고, 금욕 생활을 자랑스러워했으며, (전해 내려오는 바에 따르면) 평생 육체적 순결을 지키다가 세상을 떠났다. p.685(17장)


콜럼버스가 발견하기 전의 아메리카 대륙에는 전염병이 드물었다. p.699(17장)


"힌두교 신자들은 무슬림들을 하나의 카스트로 인정함으로써 이슬람을 더 큰 체계 속으로 흡수하려고 노력했지만, 무슬림들은 거부했다." p.796(21장)


"그 같은 사교적 기반을 마련한 뒤에야 비로소 거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후원 관계망의 세계에서는 그런 식의 사교적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일을 그르쳤을 것이다. 누구나 각자의 서사가 펼쳐지는 세계에 사는 법이다." p.793(21장)





<에필로그>


개인이 생각하는 좋은 '역사' 책이란,

정보의 양이 고르고 읽는 대상을 정확하게 지정해 그에 맞는 설명과 설득을 하며

처음의 방향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면, 그 확신을 글로 보여줄 것.

(인문학 강의 같은 이야기 → 책 분량을 채우려 역사 사실만 열거)

문체가 통일성 있고, 문맥이 정확해야 하며 불필요한 비유('별자리', '서사'), 특정 단어의 반복(주입식은 폭력이다/'섞믈리기', '-')은 최소화하는 것이다.

또한 정확한 근거와 사실을 채집하고 번역본이라면 더욱 번역과 단어에 대한 신중을 가하는 것,

더불어 그 번역은 작가의 표현을 따라 하지 못할 것 같다면 차라리 원초적인 투박한 문체를 택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서평을 쓰는 이유는 책을 읽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며

책에 앞에서는 늘 겸손하고 글을 쓰는 작가를 존중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가 몸소 겪은 점은,

역사책은 배려가 있어야 하며, 친밀하지 않은 역사일수록 비유는 자제하고 문맥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량이 많고 앞 문장과 뒤 문장이 연결되지 않은 책을 읽고 서평이 써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기를. 어떤 책을 읽어도 자신의 눈에 들어오지 않은 문장이 있는 것처럼 지금 필자에게는 이 책이 그리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책의 주요 대상이 책정되지 않았을뿐더러 설령 전체를 대상으로 정했다고 하더라도 완연히 이 책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기 때문에. 책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책은 책일 뿐이다. 한 인간이 모든 걸 다 잘하는 완벽한 사람일 수 없다는 문장에 동의한다면, 이 책을 쓴 사람도, 번역을 하는 사람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에 수긍하자. 그렇게 된다면 다음에는 이 책을 바탕으로 더 좋은 역사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고, 타 장르의 책을 보는 눈도 기르게 될 것이다. 문해럭은 그렇게 쌓는 것이다. 문학을 좋아하던 필자가 역사책을 완독 하게 된 것처럼. 다음 만날 역사책은 이보다 더 멋지기를.



한줄 솔직평:

작가:"얘 꼬맹아. 역사 공부 좀 더 하고 오지 그러니?"

독자:아,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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