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정은 Aug 07. 2020

"THE"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

언니와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어른스러운 척 도전하지만 뒷일 생각 않고 저지르기 일 수였던 날들을 언니는 잊지 못하나 보다. 언니 눈에는 여전히 '막내'인 내가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에, 아르바이트를 할 때처럼 막무가내로 정한 건 아닌지, 높은 점수는 생각도 안 하고, 사는데 지장 없을 정도로만 공부를 하자고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나 역시 영어는 공부해서 나쁠 게 없으니까(글로벌 마케팅을 할 날이 올 테니) 그러기로 했다. 언니 딴에는 대책 없이 글만 쓰겠다는 것처럼 보여 시작한 수업이었지만, 나는 여간 까다로운 학생이 아닐 수 없었다. 문법을 공부하고 며칠이 지난 뒤, 'THE'에 대해 배우는 날이었다. 'THE'에는 7가지 특징이 있는데, 가장 솔깃했던 기능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 앞에 붙는다는 것이었다. 언니는 학원에서 배운 대로 질의응답식 수업을 추구했고 나 역시 그런 방식이 언니의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군말 없이 수업에 임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 뭐가 있어!"

"음, "

"어려우면 영어로 말고 우리말로 생각해 봐."

"음, 나?"

"아니, 그런 로맨틱한 거 말고!"      


세상에 '내'가 하나뿐이라는 게 로맨틱? 문과? 감성적인 건가?

과학적으로도 하나뿐인데? 문과랑 감성은 또 무슨 상관?     


"멍충아! 그런 거 말고! 지구, 태양, 목성! 이런 거!"    




수업 이후, 'THE'라는 단어가 잊히지 않았다. 문법에 맞지 않아도, 'THE Song Jeungeun'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 유일한, 그렇게 자긍심을 빚는다. 자긍심은 나를 나답게 하는 것에 꽤 많은 영향력을 준다. 우선 내가 나인 것과 아닌 것에 흥미를 갖게 해 주고 나에 대한 호기심을 즐기게 해 주며, 내 안에 자아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걸 알게 해 준다. 그러니까 내 성격은 좀처럼 일차원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것이라는 것. 나는 착하기만 하지 않고 싸가지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자아의 존재와 외관적 모습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이 모여 '나'를 이룬다. 그러니 'The Song Jeungeun'을 쓸 수밖에.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두 부류와 관계를 맺는다. 하나는 '나'로부터 오는 나다움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으로부터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보다 전자의 경우를 요즘은 더 선호하는데, 이는 다름과 자아 관찰의 차이이다. 내가 아닌 존재로부터의 나는, 내가 나를 알 때부터 이뤄질 수 있는 구조이다. 그러니 결국은 자아 관찰이 중요한데, 이를 통해서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즉 나를 이루는 요소를 만날 수 있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접근도 있지만 그보다는 조금 낭만적으로 내가 동경하고 사랑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못하고 잘하고 엉뚱한 성격이나 습관, 행동 범위 등등이 평상시 '나'를 더 많이 찾는 부류일 것이다


                                                                                  

                                                                                     ㆍ

                                                                                     ㆍ

                                                                                     ㆍ



그런데 여기서 자긍심만으로는 절대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싶다. 나를 이해한다는 건, 나의 모든 면을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나다움을 인지하는 것인데, 꽤 극적인 방법으로 부정적인 생각은 나의 좋지 않은 면도 보게 해 준다. 빌리 아일리시는 한 인터뷰에서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내가 나를 혐오하는 걸 안 순간부터라고 했다. 일부를 발췌하면,


"빌리, 무슨 문제라도 있니?"라고 묻는다면, "나도 몰라. 나야, 내가 바로 그 문제야."라고 답하겠죠. "널 상처 입힌 게 누구야?" 저는 그냥 "그게 나야" 다른 사람은 내가 되고 싶어 하지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해요. "난 네가 되고 싶지 않아." 이런 기분을 항상 느껴야 한다는 게 정말 짜증 나요. 항상이요. 그리고 누군가가 "넌 너무 자주 무너져 내려." "넌 너무 짜증 나" "넌 항상 너무 우울해해."하고 하면 저는 "나도 알아! 난 항상 이 짜증 나는 애일 수밖에 없어. 그리고 저도 그게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인지 알아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고 대화를 하려고 시도해 볼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가 바뀌지는 않아요. 제가 느끼는 기분을 바꿀 수 있는 단 한 사람은 저인데,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거든요.



빌리 아일리시와의 인터뷰를 들은 이후로, 나의 이런 미운 자아에서도 내가 나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마련했다. 성격은 고칠 수 없다는 말을 학습해 와서가 아니라, 내가 나의 삐뚠 성격마저도 알고 인정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에 뼈저리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건 가릴수록 더 많은 화를 돋우는데 당신들이 타인을 바라보고 하는 "제 성격 진짜 이상해!"도 그 사람이 자신을 이루고 있는 요소이다. 당신은 언젠가 길가에서 그 사람을 또 마주치면, 그 사람의 성격을 떠올릴 것이고 그로부터 그 사람에게서 그 성격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비켜 지나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차피 나의 성격이 이런 거, 친하지는 못할망정 알고 같이 살자고, 미리 간략한 자기소개서를 내 101개의 자아들 앞에 발표한다.



우울도 짜증도, 뒤치다꺼리를 싫어하는 것도, 나 혼자 일하는 걸 싫어하고 누군가를 무시하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며 수직적인 구조를 벗어나고 싶어 하고, 너는 하는데 나는 안 되는 게 있으면 언제나 반박하는, 그리하여 수에 신경 쓰지 않고 개인을 존중하는 그런 사람. 이게 바로 나다운 것이다. 옷을 좋아하고 먹는 걸 좋아하며, 사람들의 시선 받는 걸 좋아하고 글 쓰는 걸 밥벌이로 하려고 하는 그 모든 것도 나지만, 이 성격들도 나를 나답게 해주는 거라고. 물론 불같이 화를 내고 똥고집을 부리는 건 아빠의 유전자를 받은 게 100% 확실하지만, 청소나 요리를 하는 등의 다른 나다운 게 있으니까.



이렇게 기나긴 '나다움'을 찾기 위한 성격에 대한 고찰을 어느 정도 하고 나면 ,  내가 해보고 싶은, 그래서 그게 나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모든 것에 가능성을 두고 경험할 기회를 어떻게든 마련한다. 그러다 맞지 않으면 미련 없이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놓는다. 그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것 때문에 나를 옭아맬 필요는 없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기 때문에.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나는 이런 걸 싫어하며, 나는 이런 걸 잘한다. 그리하여 나의 경우에는 돌고 돌아 결국 글이다. 그렇게 수많은 걸 해봤지만 눈물 쏙 빠지게 힘들었고 하기 싫었다. 덕분에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았고 덕분에 그때의 경험들과 감정과 생각과 부조리를 떠올리며 글을 쓰고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나'라는데, 아마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AI처럼 일률적이고 측정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숱하게 많은 것들로 나를 알고 나답게 해 줌에 한숨도 쉬고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쉽게 정의 내리지 않고 나를 나답게 해주는 모든 걸 알아간다는 게. 나는 내가 싫지만 나를 좋아한다는 말에 공감을 표한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그래서 쉽지 않은 자아들로 오늘은 밤새 파티를 열어야지 하는,





작가의 이전글 구질구질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