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루캐리 Aug 29. 2022

보석 배달부

마케팅 인턴이라 쓰고 보석 배달부라 읽는다

대학교 1학년, 캠퍼스 커플이 되어 낭만을 실현했다. 2학년, 음주가무에 미쳐 살았다. 3학년, 정신을 차리니 동기들은 어학연수니 교환학생이니 하며 하나둘씩 떠나고 내 손에 남은 건 3.5점을 간신히 넘는 성적과 불투명한 앞날뿐. 특별한 재주도 없고 하고 싶은 것은 더더욱 없지만 본능이 위험 경보를 울린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해야 하는 타이밍이다. 각종 기업의 대학생 홍보대사 모집에 마구잡이로 응모했다. 은행, 가전 렌털 기업, 출판사 등 세 곳에 선발되어 1년 내내 삼중(三重)으로 활동한 끝에 이력서에 간신히 활동내역을 추가했다. 4학년 1학기, 비교적 허들이 낮은 산학 인턴에 지원해 한 학기 동안 서울 시내 5성 호텔의 백오피스에서 근무했다. 등록금은 피할 길 없이 고스란히 냈지만, 최저 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월급을 받았지만, 대신 전공 다섯 과목에 해당하는 학점을 이수한 것으로 처리됐다. 마지막 학기는 교양으로 대충 때우면 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4학년 2학기를 앞두고 휴학한 후 본격적인 인턴 지원에 돌입했다. 크게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는 스펙이라 생각했는데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 인턴까지 몇십 곳 모두 탈락이다. 눈을 낮춰 외국계 기업의 계약직까지 함께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기서 털리고 저기서 털린 끝에 간신히 한 곳에 합격했다. 글로벌 명품 주얼리 브랜드 T사의 6개월짜리 마케팅 부서 인턴 자리였다. 채용 공고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나와 있었지만 막상 일해보니 핵심은 '잡지 촬영용 제품 배달'이었다. 이 단순노동을 위해 오직 C사만 전문 업체를 고용했고, 나머지는 모두 인건비가 저렴한 인턴을 굴렸다.


각 잡지사에서 매월 화보 컨셉을 전달하며 제품 협찬을 요청한다. 회사 선배는 해당 컨셉에 맞는 주얼리 제품을 고르고 상사에게 컨펌받은 후 해당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 매장에 대여 신청을 넣는다. 나는 대여 신청서를 가지고 촬영 당일 해당 매장에 들러 제품을 픽업한 후 시간에 맞게 스튜디오에 배달한다. 운이 좋으면 한 매장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때로는 세 개 매장에 들러 열 개가 넘는 제품을 대여해야 했다. 배달을 마친 후에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촬영 종료 전화'를 기다리며 여러 가지 업무를 한다. 운이 좋으면 2~3시간 만에, 운이 나쁘면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잡지사 어시스턴트에게 전화가 온다. 이제 다시 스튜디오에서 가서 제품을 챙긴 후 매장으로 반납할 시간이다.


몇 번 배달하다 보니 깨닫게 됐다. 이 업무의 최대 난관은 바로 제품 반납이었다. 명품 주얼리이다 보니 몇백짜리는 '저렴이' 라인이다. 항상 고가의 제품들을 가지고 이동해야 하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 아무리 차가 밀리는 시간이라도 택시를 타야 한다. (택시비를 선 지불 후 청구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은 넘어가자.) 문제는 대부분의 스튜디오가 강남구에 있고, 대부분의 촬영이 저녁에 끝나기 때문에 퇴근길 러시아워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요란을 떨어도 도저히 시간 내에 제품을 반납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백화점 폐점 시간이 가까워지면 아직 마감을 하지 못한 매장에서도 발을 동동 구르며 내게 전화를 건다. 그럴 때면 스트레스가 차올라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로 신사, 청담, 압구정, 학동 등지의 스튜디오를 들락날락했으나 때로는 용산구에 가기도 했고 가끔은 (슬프게도) 합정이나 신촌에 가야 했다. 어느 날은 주얼리뿐만 아니라 접시에 딸랑이까지 1억 원 상당의 제품을 들고 신촌으로 이동한 적도 있다. 그날은 잡지가 아닌 백화점 카탈로그 촬영이었다. 제품 수만 해도 30개에 달했다. 이런 날은 선배가 촬영지와 비교적 가까운 명동 L 백화점과 S 백화점 매장에 대여 신청을 해준다. 과연 저 애가 제시간에 돌아올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듯한 매장 직원분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스튜디오로 배달을 떠났다. 보통 때는 배달을 마친 후 사무실로 돌아가지만, 그날만큼은 [압구정-명동-신촌-압구정-신촌-명동]이라는 동선이 사실상 불가능해 스튜디오 근처에서 대충 식사를 때우고 촬영이 끝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함흥차사다. 8시까지 L 백화점과 S 백화점 두 곳에 제품을 반납해야 하는데! 오늘도 망했다. 울고 싶다. 하지만 울기엔 아직 이르다.


촬영이 끝났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스튜디오로 달려가, 30개가 넘는 제품을 후다닥 챙겨 택시를 탔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하나 빠트렸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교통 정체가 최고조에 달한 시간, 신촌에서 명동으로 향하는 택시는 거북이보다 느렸다. 당연히 재촉하는 전화가 온다. 네, 저 지금 가고 있는데 늦을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갈게요. 사실 최대한 빨리 갈 방법은 없다. 그저 끝없이 죄송할 뿐이다. 8시가 넘어서야 L 백화점 앞에 도착했다. 일반 출입문은 당연히 닫혀있으니 직원용 출입구로 들어가야 한다. 연어가 강물을 거스르듯, 퇴근하는 백화점 직원분들을 역행하며 매장으로 전력 질주해 제품을 꺼내놓는다. 감사하게도 S 백화점의 제품들까지 함께 보관했다가 다음 날 이동 처리를 해주신다고 했다. 이렇게 유독 잘해주셨던 몇몇 분들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L 백화점에서 나와 지하도를 건너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자꾸만 찔끔찔끔 눈물이 난다. 애써 참고 있는데 친언니에게서 전화가 온다. 이상하게도 언니는 내가 약해지는 순간이면 귀신같이 전화를 건다. 결국 그날은 펑펑 울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찌나 서러웠던지.


얼굴이 두꺼워진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까지 서러울 것도 없다. 먼저 전화해서 아이고 죄송합니다, 지금 가고 있는데 00분 걸립니다, 하겠지. 하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서러웠다. 뭐가 그리 서러웠냐 하면, '내가 아무리 노력하거나 개선해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늦게 끝나는 촬영도, 서울의 교통 체증도, 이건 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제품 반납이 늦어질 때마다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인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점점 무력감과 스트레스(그리고 성인 여드름)에 괴로웠다. 2개월이 조금 지나 퇴사 의사를 밝혔다.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알고 보니 6개월을 버틴 인턴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3개월을 채우고 퇴사한 후 새로운 인턴 자리를 찾아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특별한 경험이다. 패션계는 (다시는 발 들이고 싶지 않으나) 한 번쯤 스쳐볼 만한, 흥미로운 곳이었다. 햇살 아래서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얼마나 영롱한지 알게 됐고, 최고급 호텔의 엄청나게 비싼 비공개 스위트룸이나 부촌의 멋진 빌라에 가보기도 했다. 개당 수천만 원에 달하는 주얼리를 실컷 구경했으며, 택시를 타고 이곳저곳을 하도 돌아다닌 덕분에 길치의 한계를 깨고 강남구의 지리를 완벽하게 파악했다.


돈을 많-이 벌면 꼭 사려고 찜해뒀던, 내가 정말 좋아했던 화이트 골드 반지는 이제 단종되어 중고로밖에 구할 수 없게 됐지만, 괴로우면서도 반짝반짝했던 그 기억들은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할 거다. 한참 전에 은퇴한 보석 배달부가 외쳐본다. Diamonds are foreve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