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바꾸는 팀장을 만나다
글로벌 명품 주얼리 브랜드 T사에서 3개월간의 인턴십을 마친 11월, 나는 다시 백수 휴학생이 되었다. 한 학기만 더 다니면 졸업이기 때문에 여전히 배수의 진이다. 뭘 해야 할지 여전히 감은 잡히지 않으나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는 것은 알겠다. 일단은 다음 해 2월까지 새로운 인턴 자리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자리를 구하면 세 번째 인턴십을 하는 거고, 못 구하면 복학이지 뭐. 여전히 목표는 홍보, 홍보, 홍보.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홍보 직무에 썩 잘 맞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알기엔 너무 어려서, '나와 안 맞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복학이 코앞까지 다가온 2월, 대기업 계열사인 중고차 거래 플랫폼 E사의 홍보팀 인턴 면접을 봤다. 갑자기 분위기 자동차? T사에서 일한 3개월 동안 청담과 압구정 바닥을 지겹도록 돌아다니며 수입차를 실컷 구경한 덕분에 '예쁜 차'에 눈을 떴다. 특히 장난감처럼 각진 SUV는 얼마나 예쁘던지! 게다가 자동차 회사라니 멋있잖아? 물론 완성차 브랜드의 문턱은 국내든 해외든 너무 높았고, 독일 브랜드 홍보팀 인턴 면접에서 떨어진 후 중고차 거래 플랫폼 홍보팀 인턴에 지원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면접에서 차를 좋아한다고 (뻔뻔하게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면접관의 반응은 "그런데 면허가 (왜 없니)...?"였고. 뻔뻔해서 뽑힌 건지 아무튼 합격 소식을 받고 3월부터 출근하게 됐다.
계약 기간은 6개월, 근무 시간은 9시 30분부터 18시 30분. 점심시간에 결제한 카페 음료(인당 한 잔)는 회사에 청구할 수 있고, 야근 시 저녁 배달비도 지원됐다. 홍보팀이 있긴 하지만 구성원은 30대 초반의 팀장 달랑 한 명. 여기에 나를 포함한 인턴 두 명이 동시에 입사하게 됐다. 함께 일하게 된 인턴은 두 살 많은 언니로, 대행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인생 선배였다. 온화하고 마음씨가 따뜻해 여러 가지로 의지가 됐다. 그래봤자 둘 다 꼬꼬마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전에 일한 T사는 패션 쪽인 만큼 여성 직원들도 많고 전체적으로 섬세한 분위기였으나, 이곳은 완전히 달랐다. 더 딱딱하면서도 '파이팅'이 넘쳤다. 보도자료 사진 촬영 등의 업무를 위해 각 지점의 센터장이나 세일즈 담당자들을 만날 때는 그런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사무직 중심의 본사+현장직 중심의 지점'으로 구성된 회사라면 아마 비슷할 거다.
여러 브랜드의 다양한 차를 실컷 구경할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롤스로이스 팬텀이다. 굴지의 대기업에서 임원용 차량으로 리스했다가 반납하며 롤스로이스 팬텀이 중고 매물로 나온 것이다. '꿈의 차'를 코앞에서 구경하고 앞좌석에 (매우 조심스럽게) 앉아도 봤다. 이상하게도 팬텀보다는 팬텀에 딸린 몇백만 원짜리 우산이 더 기억에 남지만, 여하튼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만큼은 틀림없다.
홍보팀 인턴의 주 업무는 보도자료 사진 촬영, SNS 개설과 운영, 언론에 제공할 중고차 시황 자료 조사 및 작성 등이었다. 대기업이 아니고서야 다 비슷하겠지만, 특별한 교육이나 인수인계 없이 바로 실무에 투입되니 그야말로 병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보도자료나 기획기사를 작성하기도 했지만 실무에 반영되는 일은 드물었다. SNS 쪽은 예산이랄 것도 없었지만 마른걸레를 쥐어짜며 여러 가지 이벤트들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재미가 있었다. 나름대로 소소한 재미를 찾아가며 일했지만 팀장과 야근은 나를 점점 지치게 했다.
팀장은 똑 부러지는 스타일이고 자기 PR에도 능했다. 업무가 엄청나게 과중한 건 아니었지만, 주로 퇴근 무렵에 주어지는 팀장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야근이 필연적이었다. 그보다 괴로운 건 팀장이 기분파에다가 말을 자주 바꿔가며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함께 일하던 인턴 언니와 합심해 귀여운 계획을 세웠다. 각자 메모해놓은 팀장의 지시를 회의 도중 보여주는 것이다. 당신이 한 말을 이렇게 적어놨으니 거짓말 좀 그만하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지극히 소극적인 시위와 어색한 침묵 끝에 팀장은 갑자기 회의를 중단하더니 일대일 면담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뭔 소리니 진짜. 그 옹졸함을 보며 결심했다. 아니, 내가 결심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결심이 섰다. 참을 만큼 참았다. 여긴 아니다. 탈출하자. 면담을 먼저 하겠다고 자처했고, 단둘이 남았을 때 팀장님을 따라가기엔 내 역량이 너무 부족하여 그만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팀장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둘 중 너를 정규직으로 채용할 생각이었다고 설득했다. 아니 정규직이고 나발이고 나는 더 이상 당신과 일하기 싫어요.
말을 자주 바꾸는 팀장. 슬프게도 굉장히 흔한 인간 군상이다. 10년 후의 나 역시도 말을 자주 바꾸는 팀장과 일하게 됐으니 말이다. 또르르... 어쨌든 어린 나는 그런 사람을 처음 접했기에 발을 빼기로 결정했고, 강경한 퇴사 의사를 밝힌 끝에 계약기간보다 두 달 모자란 4개월을 채운 후 그만뒀다. 학교로 돌아가 마지막 학기를 다녔고, 취업에 실패하며 선택의 여지 없이 졸업을 연기했다. 함께 인턴으로 일했던 언니는 정규직으로 채용되었고, 팀장은 여전하다는 소식을 가끔 들려줬다.
T사의 인턴으로 일할 때는 나를 돌봐줄 사수와 대리가 있었고, 나의 주 업무는 외근이라서 부서장과 직접적으로 일할 일이 드물었다. (대신 부서장의 끈질긴 갈굼 끝에 사수가 실신해 119에 실려 가는 걸 봤다. 정말 최악이다.) 사람 스트레스는 없었다는 소리다. 어떤 의미로는 E사에서의 경험이 진정한 사회생활의 맛보기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맛보기'였을 뿐이다. 인생사란 새옹지마가 아니라 첩첩산중인 것인지, 졸업 연기 후 드디어 잡은 첫 직장에서는 마라보다 맵고 담배 연기보다 불쾌한 사회생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