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0년차 체육교사의 고민: 운동선수의 학교는 어디인가

학교 운동부,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by 뚱딴지

한번도 수업에 나타나지 않는 학생

고사가 시작된 지 10분도 안 되어 한 여학생이 답안지에 일렬로 선을 그은 채 엎드려 잔다. 골프 특기자인 이 학생은 개학 후 단 한 시간도 내 수업에 참여한 적이 없다. 등교하면 수업 대신 곧바로 조퇴하고 골프장으로 향한다. 이 아이에게 골프장이 진짜 학교인 셈이다.

골프 특기자는 다른 종목 선수들보다 학교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특히 길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의미일까?


흔들리는 교사의 신념

처음엔 나도 이런 학생선수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부 안 하는 특기자는 문제"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30년 교직 생활을 거치며 이 시스템에 대한 확신이 흔들린다.

'한 우물만 파는 놈이 잘 산다'는 말처럼, 운동에 재능이 있다면 교실 공부가 성공하는 운동 인생에 실질적 도움이 될까? 언론은 운동으로 성공한 사례들을 자주 소개한다. 하지만 운동으로 성공하지 못한 학생선수들의 삶을 추적하는 방송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나같이 확신이 서지 않는 수많은 체육교사들이 여전히 걱정하는 것들이 있다.

"부상 등으로 중도 포기하면 나머지 삶은 어떻게 될까?" "친구들과의 경험 없이 사회적 공동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물론 그들 스스로 "이건 불행한 삶"이라고 말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지방으로 와서 만난 현실

올해 운동부 담당 교사가 되었다. 서울에서 30년 근무하며 운동부 담당은 딱 한 번뿐이었는데, 지방 도시로 발령받고 보니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이곳 중학교들은 두세 곳을 빼고 거의 모든 학교에 운동부가 있었고, 보통 두 개 부 이상이었다. 체육교사들은 대부분 운동부 관리교사로 지정되어 수업과 더불어 방대한 행정업무를 떠안고 있었다.


이상한 업무 구조의 모순

과학교사가 과학 영재들을 모아 경시대회에 내보낼 때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고 행정업무도 처리한다. 이때 과학교사는 수업과 업무에서 흥미와 보람을 느낀다.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체육과 운동부는 왜 다를까?

보통 코치가 따로 있어서 훈련을 담당하고, 체육교사는 오직 행정업무만 처리한다. 당연히 체육교사는 운동부 업무에서 흥미와 보람을 느끼기 어렵다.

운동부 행정업무의 실상을 살펴보면 대회 참가 신청부터 훈련 계획 수립, 각종 기안 작업과 결과 보고서 작성, 예산 관리와 집행 업무, 학생 출결 확인과 학부모 알림, 각종 동의서 관리, e스쿨 확인 및 독촉, 수업 결손 관리, 코치 수당 처리까지 정말 방대하다.

과연 이 업무들이 체육교사만이 할 수 있는 전문 업무일까?


근본적인 질문들

왜 운동만 특기자 제도가 있을까?

과학 특기자, 사회 특기자, 국어 특기자는 왜 없을까? 영어나 수학을 더 배우고 싶은 학생들은 방과 후 학원을 다닌다. 비용은 본인과 부모가 부담한다.

그런데 왜 체육 특기자만 학교가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할까?

학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내가 담당하는 어느 반의 골프 선수는 한 달째 수업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아이 얼굴조차 본 적 없다. 그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줄넘기를 해본 적도, 배구를 하며 파이팅을 외쳐본 적도 없다.

성공한 선수가 멋지게 영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학교 필요 없어, 영어만 잘하면 돼!"

정말 그럴까?


균형점을 찾아야 할 때

엘리트 선수들의 활약이 국민에게 주는 긍정적 효과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재능 있는 학생들의 꿈을 키우는 일도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에는 명백한 문제들이 있다. 일반 체육수업과 엘리트 스포츠 간의 극심한 예산 배분 불균형이 있고, 학생선수들의 비정상적인 학교생활 문제가 있으며, 체육교사에게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업무 희생 문제도 심각하다.


30년 차 교사의 고백

이것이 30년 차 체육교사의 솔직한 고민이다.

현재의 학교 특기자 운동부 제도가 정말 학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인지 근본적으로 되물어야 할 때가 아닐까?

시험지 위에 엎드린 그 아이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과연 우리는 그 아이에게 진정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눈 가리기 석 달, 입 닫기 석 달, 귀 막기 석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