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깊은 고민
오늘은 1년 남짓 만난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만났다.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본 것은 오늘이 두번째였다. 첫번째 만남은 가벼운 만남이었고 오늘의 만남은 결혼을 전제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자리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결혼준비는 어떻게 해왔고 어떤 미래를 그리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많은 질문들과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렇게 저녁시간이 흘러갔고 밤 12시까지 온전히 셋만의 시간이 흘러갔다.
오늘 만났던 여자친구의 어머니는 온갖 엄친아들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1년에 1억을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그 자리에서 계산기 어플을 켜놓고 1억을 12개월로 나누어 보았다. 한 달에 대략 833만원을 버는 것은 둘째치고 그 돈을 온전히 저금한다고 보았을때 12개월을 꾸준히 833만원씩 저금한다면 1억이 모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연 가능한 현실인가 의문을 품었지만 그 분의 주변사람들은 그렇게 모았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고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돈을 온전히 모은다는 것은 힘들 것이다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없다. 어찌보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비트코인이 터진다던가 주식이 떡상해서 그 돈을 마련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오늘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고 제일 혐오했던 말이기도하다. 여자친구 아버지는 현재 대학교수이다.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던 댓가인지 한 우물을 열심히 팠던 댓가인지 모르겠지만 교수라는 일을 영위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도움을 받았던 것은 대학동기 혹은 대학 인연이며, 그 대학의 인연을 통해서 많은 일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이해했다. 나는 중/고등학교 동창생들이 더 좋고 더 많은 추억이 있다고 생각한다. 뭐 이런 것들은 생각의 차이 혹은 추억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한 가지 확실한 증거는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어떤 기준인지가 중요하다고 판단되어지는 부분이다.
사람이 좋았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 둘의 격차는 심각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 둘의 격차는 가정의 격차라고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격차는 삶의 질도 아니고 급여의 차이도 아니다. 바로 살아온 삶의 격차인 것이다. 이러한 격차는 사랑으로 채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답게 채워지지 않는 것이 참으로 문제이다. 이러한 격차를 극복하고 결실을 맺는 것이 평범한 드라마의 이야기지만 현실은 상반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나는 학창시절 열심히 내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다른사람의 한마디로 이 모든 학창시절이 부정되어야 하는 현실이 싫었던 것 같다. 결국에는 그 동안의 삶이 한심한 사람이 되었고 그 모든 나의 언어는 변명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그 삶은 내 삶이었는데 말이다.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어려운 문제다. 나이가 어렸을 적 결혼을 했다면 이러한 생각들도 하지 않았을터.
삶과 결혼은 연결되어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되는 순간부터 어려운 문제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기 힘든 부분이다. 참 마음으로 안되는 부분이다.
결국에는 돈, 즉 경제력이 결혼을 지배한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들은 나의 30대 후반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겠다면 갈 수 있다. 하지만 그 힘이 도저히 생기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렇다. 어려운 하루였다.
정답은 없다. 좋으면 가고 싫으면 말아야하는 것이 상책이다.
참으로 오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밤이다.
생각이 많은 밤이고 정답이 없는 밤이다.
그러한 밤을 다 이겨내면 또 다시 좋은 날이 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