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집
동생 방에서 누워서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보다가 문득 옛날 집에서 찍은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빠와 아들 그리고 내가 만든 케이크를 앞에 두고 누구의 생일인지 밝게 웃고 있는 모습..
뒤로 찢어진 벽지가 보인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다시 그 사진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사했던 그날과 그 집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옛집, 그 좁은 집에서 살 때 참으로 많은 것이 불만이었다. 아파트이긴 하나 동네의 거의 처음 지어진 아파트로써 현관의 문턱도 없어 문을 닫아 놓아도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던 집이었다. 그뿐인가 그 틈 사이로 들려오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발자국 소리는 덤이었다. 거실보다 큰 안방, 그래서 TV를 놓으니 거실은 꽉 차 버렸고, 작은 방 만한 화장실은 혼자 문 닫고 볼일 보기 너무 무서운 공간이었다. 우리는 식탁에 앉는 것 변기에 앉는 것 빼고는 좌식생활의 고수가 되어야만 했다. 당연히 침대는 없었다.
집의 가구들은 각기 개성을 드러내며 오로지 기능성을 자랑하며 오합지졸로 모여 있었고 내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사만 가면, 내 방에 침대가 있고, 침대에 걸맞은(?) 책상에 앉아 보는 게 소원이었다.
물론 우리 집 보다 못한 집에 사는 친구들도 있었을 테고 각자 집안 사정이 있는 것이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런 어려운 사실들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나이였다.
그렇게 부모님은 힘겹게 힘겹게 거의 20 년 만에 네 식구를 데리고 새 집을 장만하셨다. 그리고 가구를 뺀 마지막 날 나는 우연히 집에 다시 가보게 되었다. 안방 문을 열었는데 화려한 햇살이 비추는 초라한 안방의 모습에 순간 울컥하더라.
마치 틀니 빠진 할머니의 볼품없인 꺼진 입처럼 몇십 년 가구를 바치던 장판은 여기저기 뜯겨 더 볼품이 없어져있었다.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 순간 난 바닥에 누워 보았다.
‘미안해... 우리만 가서... 힘든 세월 같이 견뎌 주었는데 우리만 좋은 곳으로 가서 미안해’...
데리고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이제 다시 들어와 볼 수도 없고 내 기억 속에만 남겨 둬야 하는 곳이 되어버린 305호 그 집..
그런 애틋한 마음으로 이사와 산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문득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모습의 아빠와 동생의 젊은 모습을 보니 또 한 번 그곳에 대한 그리움이 올라온다.
그리고 부모님께 미안함... 부모님의 젊은 시절의 추억이 담긴 집이었을 텐데 나는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순간들이 미안하다.
그 집에 담겨있는 부모님의 청춘을 꺼내어 올 수만 있다면 꺼내어 지금 멋진 청춘의 겉옷을 입혀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