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벽에 걸려 있던 시계가 어느 날부터 느려졌다. 정신없이 사느라 시계가 안 맞는지도 몰랐는데 어느 날 보니 15분 정도 느린 것 같다. 건전지를 교체할까 하다가 바늘이 여전히 움직이기에 그냥 시간만 다시 맞춰두었다. 똑딱똑딱. 그렇게 시계는 다시 제시간에 맞춰 흘러갔다.
다음 날 다시 시계를 보니 다시 15분 느려져있다. 그제야 건전지를 꺼내 새 건전지로 갈아끼운다. 똑딱똑딱. 시계는 다시 힘차게 흘러간다.
건전지를 갈아 끼우며 생각한다. 좀 쉬고 싶으니 꺼내달라고 천천히 가던 건전지의 마음도 몰라주고 하루 더 일을 시켰구나 (이런 걸 보면 난 F 맞는 듯) 싶어 괜히 머쓱해졌다.
어쩌면 나도 잠시 쉬어야 할 타이밍에 쉬지 못하고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잠깐 앞서다가도 다시 15분 뒤로 밀려나는 힘밖에 없으면서 미련하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때가 언제였을지, 지나가버렸을지 아니면 지금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내 안의 건전지가 힘을 못 쓸 때가 온다면 오늘의 시계 건전지를 떠올리며 꺼내어 새것으로 바꾸기 전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다. 지쳐 보이는 이를 살피고, 내 마음이 바쁘다고 몰아세우는 것도 잠시 멈춰야겠다.
언젠가부터 휴대폰에 배터리를 갈아 끼울 수 없게 되었다. 가방에 꼭 여분의 배터리를 가지고 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배터리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아도 우리는 충전기를 연결하고 그대로 사용한다. 걸어 다니며 충전하려고 보조배터리를 가지기도 한다. 기계도 사람도 잠시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언가 지친 것 같다면 잠시 멈추고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힘들고 아픈 몸과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끙끙대며 이끌다 세상을 등져버린 여러 동료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 주변엔 그런 사람이 없을까 둘러보게 된다. 내가 누군가를 그리 힘들게 만든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내 마음과 몸은 어떠한가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