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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ul 08. 2023

결혼 8년 차 부부의 하루


올해로 결혼 8년 차를 맞은, 영유아 아이 둘을 키우는 맞벌이 부부의 요즘 하루(평일)는 이렇다.


오전 5시 30분, 아내는 일어나 집 앞 수영장으로 새벽 수영을 하러 간다. 아내가 집을 나서는 소리에 남편도 일어나 고요한 아침 시간을 즐기다 출근 준비를 한다. 가끔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을 챙기기도 한다. 7시가 되면 수영 갔던 아내가 집으로 돌아와 출근준비를 하고 남편은 출근을 한다. 남편의 어머니가 오시는 7시 30분까지 아내는 주방 정리를 하고 아이들 가방을 챙기고 틈틈이 출근준비를 한다. 부부를 도와주기 위해 남편의 어머니가 아침마다 부부의 집을 방문하고 있다. 남편의 어머니는 7시 30분쯤 와서 아이들 아침 먹이기, 씻기고 옷 입히기 그리고 등원을 돕는다. 그녀는 아이들의 등원이 끝나면 간단히 집을 치우고  집으로 돌아간다. 남편의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아내도 집을 나선다. 아내와 남편은 출근을 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눈다. 종종 서로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기긴 하는데 서로의 일정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남이 해 준 점심을 먹는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오후 4시 30분, 퇴근을 한다. 직장과의 거리가 가까운 아내가 집에 먼저 도착한다. 요즘같이 날이 많이 더울 때는 집으로 가서 에어컨을 켜 둔다. 밥솥에 쌀을 씻어 넣고 취사버튼을 누른 후에 집을 나선다. 첫째 아이 유치원 먼저 다음은 둘째 아이 어린이집. 기관 선생님들께 오늘 아이들의 하루를 간단히 듣고 준비물을 전해 듣는다. 잊지 않기 위해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방에 급히 써두고 저 멀리 먼저 뛰어가는 아이들을 쫓아간다. 집에 먹을 과일이 있나 생각해 보고 아이 둘을 데리고 과일가게로 향한다. 남편이 부탁한 택배대행심부름도 한다(흥!). 그 사이 남편은 열심히 집으로 오고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시원한 집으로 돌아온다. 가방 정리를 하게 하고 과일을 냉장고에 넣는다. 저녁 준비를 하려고 냉장고 속 음식들을 째려보는 사이 남편이 집에 도착한다. 아이들은 아빠를 큰 소리로 반겨준다. 아들은 아빠와 함께 샤워를 하고 딸은 씻지 않겠다며 씨름을 하다 손만 겨우 씻는다. 다리에 매달리는 딸을 밀어내며 아내는 저녁 준비를 하며 내일은 뭐 먹나 생각한다. 오후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 네 가족이 함께 앉아 저녁 식사를 한다. 아내와 남편은 그제야 서로를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할 수 없는데 여섯 살 아들이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때도 있고, 주로 직장에서 일어난 머리 아픈 이야기이기에 아이들이 듣기에 좋은 이야기가 없기 때문. 아이의 기관 생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식사를 마친다. 아내가 설거지를 하고 주방 정리를 하는 동안 남편은 아이들과 놀아주다 건조기에서 빨래를 가져와 빨래를 갠다. 남편이 열심히 개어 둔 빨래를 아이들이 장난을 친다고 다시 흩트릴 때도 있고 아빠 대신 제자리에 갖다둘 때도 있다. 설거지를 마친 아내는 과일 가게에서 산 과일을 내어 준다. 특별한 일 없이 하루를 보내면 아내가 설거지를 마칠 때쯤 시간은 오후 7시 30분 전후이다. 누군가는 아직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몰아치듯 집안일을 하다 보면 정신이 없다. 아내는 주방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휴대폰을 만진다. 그러다 아까 카카오톡 채팅방에 적어둔 둘째 아이의 내일 준비물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콜록대는 아이에게 약을 먹인다. 아이들은 여전히 남편과 놀이를 하고 있다. 아직 씻지 않은 둘째 아이와 함께 아내는 샤워를 한다. 아내가 씻고 나오면 남편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집을 나선다. 그 사이 아내는 아이 둘의 양치질을 마친다. 남편이 씻는 동안 아내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장난감 정리를 한다. 남편이 씻고 나올 때쯤이면 시계는 오후 9시 30분을 향해있다. 온 집안 전등을 다 끄고 네 가족 모두 누워 잠에 든다.


육퇴 후 남편과 아내는 맥주라도 한 잔 하고 싶지만 아이들과 함께 잠들어 둘 다 제대로 일어난 적이 없기에 평일은 포기하고 잠이라도 제대로 자는 걸로 한다. 우리에겐 주말이 있으니!!!!! 주말이 되면 평일의 일상을 조금은 느슨하게 이어간다. 물론 주말에도 육아가 계속되지만 적어도 다음 날의 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빡빡했던 저녁육아는 잠시 내려둘 수 있다. 맥주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을 재우고 정신력으로 일어나 요즘 유행한다는 드라마를 함께 챙겨보기도 한다.


둘째가 태어나고 어느 시점부터 서로에게 으르렁대는 일이 조금씩 생겨났다. 그렇게 서로에게 조금씩 지쳐갔다. 사실 집에 오면 말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돌봄이 많이 필요한 영유아에게 그것은 힘들 터. 남편이라도 알아서 했으면 하지만 그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앞 안 보이는 내 남편은 정말 말하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힘듦이 극에 달하는 날엔 쥐어짜듯 말을 하다 보면 분명 그 표현이 상대에게도 좋게 다가가는 날이 없기에 이러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도 하다. 나의 표현이 그 시작일 때도 있고 상대의 행동이 불을 붙일 때도 있다.

사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슬펐다. 그의 사랑이 의심스럽기도 했다. 분명 눈을 떠서부터 잠에 들 때까지 사랑만을 말할 때도 있었거늘. 일과 집안일, 육아를 하는 나는 점점 지쳐가는데 남편은 도대체 무얼 하나 싶어 억울하고 힘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글을 쓰며 깨달았다. 내가 이런 하루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도 결국엔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하며 아이들 돌보는 일상에서 나는 어디 있나 하고 답답했었는데 그 안에서 내가 살 수 있는 것 또한 그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었구나. 그 또한 이런 하루에서, 억울하고 힘든 게 왜 없었을까.  당장 내가 힘든 것 때문에 그런 그의 모습은 보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이런 하루에, 그리고 나에게 최선을 다한 것이었겠지. 이젠 그 사랑을 의심하지 않게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다독여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맥주 짠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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