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출장은 여러 번 있어도 며칠 집을 비우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올해는 2번이나 이런 출장이 있었다.
사실.. 아침엔 시어머니가 오셔서 아이들 등원을 도와주시고, 하원은 "10번 중 9번을 내가 했고", 저녁 준비와 정리도 "내가 했고", 첫째는 "요즘 혼자 씻고", 둘째는 "나와 씻겠다고 하기에" 남편이 부재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6월에 1박 2일로 수련회에 갔을 때도 그랬다... 과연 이번엔 어땠을까.
토요일에는 여의도 집회에 가야 했기에 친정 언니 집에 아이들을 잠시 맡겼다. 집회가 끝나고 언니 집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언니 가족과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 둘을 후다닥 씻기고 나도 씻었다. 남편에게 집을 떠나기 전 청소를 부탁했기에 집은 치울 것도 없이 깨끗했다. 놀다 지친 아이들을 재우고 나는 혼자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드라마를 보다 잠에 들었다. 집회 테라피였을까, 잠에 쉬이 들지 못했다.
토요일 저녁부터 둘째가 열이 나는 걸 돌보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컨디션이 바닥이었지만 열이 나 끙끙대는 아이가 안아달라는 것을 평소처럼 밀어내지 못했다. 놀아달라 하는 첫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티비를 틀어줬다. 어차피 티비는 주말에만 보니 괜찮다 하며 스스로의 행동에 정당성을 더 부여해 보았다. 그렇게 열나는 아이 돌보며 밥을 차리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 아이 둘에게 티비를 틀어주고 누워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아이 열을 재고.. 밥을 차리고.. 다행히도 둘째는 점점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다.
짱구와 짱아같은 내 아이들
첫째 아이는 일요일 저녁마다 아빠와 '복면가왕'을 시청한다. 노래를 듣고 누가 이길까 하며 아빠와 대화를 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이는 저녁을 먹고 복면가왕을 보면서 조잘조잘 말을 했다. 옆에서 늘 맞장구쳐주던 아빠가 없으니 나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집에 있으며 유일하게 멍 때릴 수 있는 시간(=설거지 타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자꾸 말을 건다. 난 노래도 못 들었는데 누가 이길 것 같냐고 묻는다. 그렇게 약 1시간 반을 기계처럼 대답만 했다. 그 와중에 설거지도 하고 아이 약도 먹이고 집도 치웠다. 내일 병가를 내기로 했으니 학교에 연락도 해야 했다. 어찌 되었든 하루가 갔다. 정신이 없던 하루. 출장이 뭔지 모르는 딸은 자꾸 아빠는 어디 갔는지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찾는다.(그래봤자 방은 두 개) 자기 전 남편과 영상통화를 했다. 남편은 어딘가 모르게 신나 보인다... 냉장고에서 맥주 하나를 꺼내 마셨다. 내일 생각에 심란해서 잠이 또 오지 않는다.
월요일엔 병가였다. 몸도 마음도 아팠다. 아이 둘을 등원시키고 병원에 갔다. 치료를 받고 집에 와서 홀로 있으니 마음이 더 우울해졌다. 간단히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첫째가 기침을 조금씩 하기 시작하여 소아과에 다녀왔다. 집에 돌아와 휘리릭 볶음밥을 만들었다. 먹을 입이 하나 없으니 밥 하기가 너무 싫었다. 먹고 치우고 내일 출근 및 등원할 준비를 하고 씻고 잠시 앉으니 아이가 놀아달란다. 말로 맞장구쳐주고 있으니 둘째가 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 한다. 아직 글자를 모르는 아이니 내 맘대로 책을 후다닥 읽고서 자러 가자고 꼬드겼다. 침대에 둘을 눕히고 불을 끈다. 왜인지 잠이 오지 않는다.
화요일, 지난주부터 새벽 기상을 하고 있어 일찍 일어났다.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일어났다. 간단히 아침을 챙겨주고 나도 먹은 후 출근 준비를 했다. 시어머니가 오셨고 후다닥 집을 뛰쳐나왔다.(어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수업과 이런저런 업무 처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이다. 아들이 며칠 전에 길을 걷다 어느 가게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고는 해물칼국수를 먹고 싶다 하여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저녁 걱정은 덜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서 잠시 놀다가 식당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셀프인 곳이기에 더 정신이 없었다. 사실 남편이 함께 가도 내가 다 가져오고 준비하는 것은 똑같았는데, 내가 자리를 비운 잠시 동안 아이를 돌보지 못하기에 마음이 더 바빴다. 먹고 싶다 하더니 막상 먹어보니 별로였는지 아이는 그만 먹겠다, 나가고 싶다 보챘다. 앉아서 기다리라 하고 남은 칼국수를 후루룩 먹고 식당을 나섰다. 놀이터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다 집에 가서 아이들을 씻겼다. 빨래를 개고 등원 준비를 했다. 지난 3일 괜찮았다 생각했는데, 오늘은 조금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다.
드디어 수요일이 왔다. 남편이 오는 날이다.
시어머니가 오시고 출근을 했다. 퇴근 전에 남편에게 연락을 해보니 집에 가고 있다 해서 하원을 부탁했다. 아이 둘은 분명 아빠를 보고 반가워했겠지. 나는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거실에 누워 멍을 때렸다. 남편에게 톡이 왔다. 놀이터에 들러서 놀다 가겠다고. 멍 때릴 시간이 더 확보되었다.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데 몸을 움직이기 싫었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도어락 소리에 일어나 저녁 준비를 했다. 5일 만에 아빠를 만난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아빠와 씻었다. 저녁 준비하고 설거지하는 나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자기 전에 하는 놀이도 아빠랑 했다.
남편이 하루만 더 늦게 왔어도 내 마음이 많이 힘들 뻔했다. 아이들에게 퍼부어댔을지도 모른다. 화요일 저녁이 되니 몸이 지쳐갔다. 15분 샤워하는 동안에도 아이 둘은 투닥투닥 싸우고 악을 쓰며 울어댔다. 난 아이들의 의식주를 위해 필요한 사람이었다면, 남편은 아이들의 놀이를 위해 필요한 사람이었다. 결국 우리집이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빠지면 안되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지난 5일동안 냉장고 속 맥주캔이 하나씩 줄어드는데 맛도 재미도 없었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 무엇보다... 남편이 없으니 새벽에 수영에 가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개운하지 않게 하루를 시작했더니 더 지쳐갔다. 그래서 결론은: 남편은 꼭 집에 있어야 한다. 아침에 수영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