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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Oct 07. 2023

꼬깃꼬깃 구겨진 마음

물 뿌려 펴보자

쌀쌀해진 날씨에 서랍에서 있던 니트조끼가 생각나 출근 전에 꺼냈다. 지난봄에 입고 넣어뒀으니 접혀있던 자국이 잔뜩 나 있다. 분무기로 물을 잔뜩 뿌리고 탈탈 털어 널어놓고서는 출근 직전에 입고 나왔다.


남편은 옷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옷도 참 많은데, 2개뿐인 우리 집 방 중에 하나에 자신의 옷과 신발을 보관하고 있다. 행거에 옷들이 빽빽하게 걸려있다 보니 입으려고 꺼냈을 때도 옷에 주름이 쭈글쭈글 나 있을 때가 많았다. 남편이 그러한 옷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보니 아침마다 출근 전 복장검사(?)를 한다. 옷에 꾸깃꾸깃한 부분이 있으면 "전날 옷 좀 미리 꺼내두라고 몇 번을 말해~~ 다 구겨져있잖아!!"하고 잔소리를 퍼붓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말은 결혼 8년 내내 한 말인데.. 남편은 8년 동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다. 옷이 구겨진 상태를 자신이 확인하지 못하니 내가 괜한 잔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어찌 됐든 구겨진 멋쟁이는 오늘도 출근을 했다.


구겨진 멋쟁이의 아내도 출근을 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시간을 보내고 화장실에 갔는데 거울을 보니 입고 있던 니트조끼가 꼬깃꼬깃 구겨져있었다. 엇 분명 물 뿌렸는데..?.. 반년을 서랍에 있었으니 구김이 펴지기 어렵긴 했겠구나. 화장실에 갈 때마다 연구실의 거울을 마주할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벗을 수도 없었다. 학생들 앞에 서서 수업을 하는 내내 내 구겨진 옷이 창피했다. 그렇게 구겨진 옷을 벗기도 입기도 어려운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퇴근을 위해 차에 올라탔는데 갑자기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날라리신자인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구절이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마태오복음 7장)



구겨진 멋쟁이의 방에 들어갔다. 셔츠 하나가 행거에서 꺼내져 따로 걸려 있었다. 분무기로 물을 뿌렸는지 살짝 축축했고 구김 없이 펴져 있었다. 구겨진 멋쟁이가 아니라 그냥 멋쟁이를 위하 준비.


오늘도 꼬깃꼬깃 구겨진 니트조끼만큼이나 내 마음도 얼마나 구겨져 있었던가 생각해 본다. 내 눈의 들보를 빼내야겠다. 오늘을 잊지 말고 마음에 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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