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2025년 10월 1일 자정, 25년 동안 아프리카 32개국의 대미 무관세 수출을 가능하게 했던 아프리카지원법(AGOA)이 연장 없이 막을 내렸다. 섬유·의류에서 자동차·광물까지 이어진 생산 라인은 멈칫했고, 케냐 봉제공장과 남아공 항구의 일상도 흔들렸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미국 의회가 결정을 미루는 사이 만들어진 공백은 동시에 새로운 선택지를 열었다.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중국이었다. 철도와 항만, 발전소 같은 하드 인프라를 짓고, 광물 개발과 정치·안보 협력을 한 묶음으로 제시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속도는 빨랐지만 부채 부담과 의존 심화라는 그늘도 남겼다.
반면 아프리카 내부의 흐름은 달라졌다. 대륙 단일시장을 지향하는 AfCFTA가 가동되면서, 각국은 원조가 아니라 산업기반과 기술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 문이 열리는 순간, 한국은 “원조 제공자”가 아닌, “함께 설계하고 함께 운영하는 파트너”로 들어갈 수 있다. 이 글은 그 전환의 이유와 방향을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아프리카지원법(AGOA) 이후의 아프리카는 ‘지원받는 대륙’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대륙’으로 이동 중이다. 관세 혜택이 사라졌다고 해서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AfCFTA를 통해 하나의 큰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한 나라에서 검증된 모델을 이웃 나라로 확산”시키기 쉬워졌다. 산업과 제도가 연결되면 속도는 느려도 탄력은 커진다. 아프리카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 즉 단발성 자금이 아니라 생산·운영·유통이 이어지는 구조다.
둘째, 중국의 ‘패키지 전략’은 공백을 채우되 새로운 문제도 만들었다. 인프라가 빠르게 들어오고 태양광·배터리·전기차 같은 미래산업 장비가 확산되었지만, 일부 국가는 상환 부담과 자원 편중에 직면했다. 여기서 한국의 차별화 포인트가 드러난다. 속도 경쟁이 아니라 신뢰와 지속성의 경쟁이다. 공장을 짓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운영법과 안전 규칙, 유지·점검의 습관까지 함께 남겨야 한다. 그래야 설비가 아니라 표준이 남고, 프로젝트가 아니라 생태계가 쌓인다.
셋째, 한국이 실제로 강한 영역이 아프리카의 수요와 맞닿아 있다. 전력망 안정화, 물 관리, 재생에너지, 디지털 행정, 모바일 결제, 공공보건 등은 현장의 삶을 바로 바꾸는 기술들이다. 예를 들어 탄자니아에서 분산형 태양광과 요금 정산 시스템을 잘 설계하면, 동일한 운영법이 케냐·우간다·르완다로 자연스럽게 퍼진다. 이것이 단순한 수출을 넘어 ‘한국 운영표준의 내재화’로 이어지는 경로다. 제품은 바뀌어도 운영법과 안전 규칙, 서비스 매뉴얼은 남는다. 그때부터는 가격만이 아니라 신뢰와 지속성이 경쟁력이 된다.
넷째, 공급망 관점에서도 아프리카는 한국의 미래와 맞물린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에 필수적인 코발트·망간, 철강 합금에 쓰이는 크롬 등 핵심 광물의 상당 부분이 아프리카에서 나온다. 한국이 추구해야 할 것은 원료를 단순히 들여오는 패턴이 아니라, 현지에서의 가공·조립 단계를 함께 키우며 상생형 가치사슬을 만드는 일이다. 현지에 기술을 심고, 한국에서 고도화해 되돌아오는 양방향 흐름을 만들면 가격·정치 리스크에 대한 내성이 커진다.
다섯째, 전략의 방식은 넓고 단순하고 길게 가져가야 한다. 넓다는 것은 산업(인프라·디지털·광물), 공급망, 제도를 함께 본다는 뜻이다. 단순하다는 것은 “거점에서 시작해 이웃으로 확산”이라는 한 문장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다. 길다는 것은 10년을 내다보며 표준과 운영을 축적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하면 질문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왜 아프리카인가?”에는 자원·인구·시장 잠재력과 AfCFTA라는 제도적 기반을 답으로 내놓으면 된다. “왜 한국인가?”에는 현장을 바꾸는 기술, 운영을 중시하는 문화, 신뢰에 기반한 협력 모델을 제시하면 된다. “무엇부터 할 것인가?”에는 전력·물·디지털 같은 기초 운영영역에서 작게 시작하여 빨리 검증하고 확산하자는 원칙으로 충분하다.
여섯째, 숫자보다 신호를 관리하자. 대륙의 인증·규격과의 정렬 여부, 현지 기관이 한국식 운영법을 채택한 수, 거점 프로젝트의 생존과 재투자 비율, 현지 인력의 성장 정도 같은 것들이다. 이 신호들이 쌓일수록 한국 모델은 “일시적 공급자”가 아닌 “공동 설계자”의 지위를 얻게 된다. 결국 경쟁은 물량이 아니라 내재화의 속도로 결정되는 것이다.
아프리카지원법(AGOA)의 종료는 끝이 아니라 재설계의 출발선이다. 중국은 속도로 선점하였고, 미국은 공백을 남겼다. 아프리카는 원조가 아닌 자립을 돕는 동반자를 찾고 있다. 한국이 할 일은 복잡한 장치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규칙, 운영과 신뢰를 중심에 둔 단순한 전략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다.
전력과 물, 디지털 행정 같은 기초 영역에서 작게 시작해 성공 사례를 만들고, 그것을 AfCFTA의 궤도에 올려 대륙적 확산 경로를 열어야 한다. 동시에 핵심 광물과 소재의 현지 가공을 도우며 양방향 공급망을 짜고, 현지 인력과 제도를 함께 키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남는 것은 설비가 아니라 표준, 단발성 수주가 아니라 관계, 일회성 성과가 아니라 10년 성장 스토리다. 남아프리카 속담이 말하듯, 지혜는 한 집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금 지혜가 향하는 곳은 아프리카이고, 그 문을 두드릴 첫 번째 파트너가 한국이 되도록 아프리카 전략 1.0을 시작할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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