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과 패권경쟁, 투키디데스 함정
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전쟁의 원인을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긴장으로 설명하였다. 아테네가 부상하면서 스파르타가 느낀 두려움, 그리고 그 두려움이 전쟁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2,50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고대의 통찰은 다시금 국제 정치의 중심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 특히 2018년 이후 본격화된 미중 무역전쟁은 단순한 경제 분쟁을 넘어,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둘러싼 근본적 경쟁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은 오늘날 미중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투키디데스 함정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진정한 원인을 힘의 균형 변화에서 찾았다.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통하여 해상 무역과 식민지를 확장하며 급속히 성장하였고, 이를 위협으로 느낀 스파르타는 결국 무력 충돌을 선택하였다. 현대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이 교훈을 바탕으로 '예정된 전쟁'에서 16건의 역사적 패권 경쟁 사례를 분석하였으며, 이 중 12건이 전쟁으로 귀결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앨리슨은 현재 미중 관계를 17번째 투키디데스 함정 사례로 분류하며 경고음을 울렸다.
미중 무역전쟁과 기술 패권 다툼
2018년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단순한 무역적자 해소를 넘어, 첨단기술 주도권을 둘러싼 패권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제조 2025' 전략을 통하여 중국은 기술 자립과 글로벌 시장 장악을 노렸고, 이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화웨이 제재, 반도체 수출 규제 등으로 이어졌다. 세계 반도체 공급망은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기술-지정학'이라는 새로운 질서의 예고였다.
군사적 긴장과 안보 역학 변화
경제와 기술 경쟁은 군사적 긴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인공섬을 건설하고 항공모함 전력을 강화하며 해양 패권 확대를 노리고 있다. 대만 해협에서는 중국 전투기의 방공식별구역 침범이 급증하였고, 미국은 항행의 자유 작전을 통하여 이를 견제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DF-41) 배치와 미국의 신형 스텔스 폭격기 개발은 핵 억지 체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우주에서도 위성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우위 확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안보 환경은 다층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있다.
투키디데스 함정 극복을 위한 시도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제도·경제적 장치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세계은행은 중국이 외국 기업들에 대한 시장 접근을 확대하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할 경우, 추가적인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분석하였다. RCEP과 IPEF 같은 다자경제체제는 양자 경쟁을 완화할 새로운 틀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유럽연합(EU)과 아세안(ASEAN) 등 제3의 세력이 미중 간 완충지대로서 역할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과 인도의 적극적 참여는 지역 안보 구조를 다변화시키는 중이다.
선택이 운명을 결정한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전쟁이 필연적이라는 결론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특정 조건 하에서는 충돌이 쉽게 일어난다는 경고에 가깝다. 21세기 미중 관계는 핵 억지력, 글로벌 경제 연결성, 다자 협력체계라는 새로운 변수들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과거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가질 수 없었던 선택지를 오늘날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130개국과 교역관계를 맺고 있으며, 미국은 여전히 달러 기축통화 체제라는 강력한 국제 금융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호의존적 현실 속에서, 군사적 충돌은 상상을 초월하는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기도 하지만, 인간은 때때로 반복을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미중 양국이 창의적이고 책임 있는 경쟁의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면, 투키디데스 함정은 비극이 아닌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또 한 번 번영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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