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de: 무역왕 김스타 16화

현지로 가보자! 프랑스 파리 전시회 참가(3)

by 이설아빠

파리의 밤거리는 낯설면서도 아름다웠다. 가로등 불빛이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 외벽을 어루만지고, 차분한 재즈 음악이 골목마다 흐르듯 퍼지고 있었다. 낯선 도시의 공기 속에는 이국적인 긴장감과 묘한 설렘이 뒤섞여 있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전시회 첫날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도현, 기석, 효진은 호텔 근처 작은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다. 흰 접시에 담긴 따뜻한 치킨 크림 리조또와 향긋한 레드 와인이 주는 온기가 생각보다 피로했던 하루의 끝자락에 작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도현은 포크를 내려놓으며 잔을 들었다. 이 와인이 긴장을 풀어주는 건지, 아니면 그저 몸이 환경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이완되고 있는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곳에 도착한 게 불과 하루 전인데, 벌써 며칠을 지낸 기분이야.’

도현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던 그때 식사를 먼저 마친 효진이 말을 꺼냈다.

“그래도 첫날 치곤 어찌어찌 잘 해낸 건가요?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엄청 긴장하기도 했고...”

효진은 와인잔을 기울이며 웃었다.

“처음치고 시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좋은 기회가 몇번은 더 올거라 확신합니다."

기석은 와인잔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정중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기회는 그냥 오는 게 아니라, 잡으러 가야 됩니다.”

기석의 말끝에 묘한 무게가 실렸다. 도현은 잠시 기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기석은 평정심 뒤에 철저한 계산과 준비를 숨기고 있는 듯 보였다. 잠시동안 아무말이 없었고, 모두가 레스토랑 창밖으로 보이는 파리의 화려한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파리의 야경은 화려하면서도 몽환적이었다.

“저 먼저 일어나서 숙소로 들어가 있을게요."

정적을 깨듯 효진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근처 편의점 들러서 물이랑 간식을 미리 좀 사놓을까 해서요. 내일 또 정신 없을 테니까...”

효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작은 크로스백을 어깨에 메고 익숙한 손짓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긴장이 풀린듯한 효진이 지나치게 평온해 보여서, 도현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였다.

“괜찮겠어요? 이 시간에 혼자?"

도현은 컵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조금 있다가 같이 나가요.”

도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효진을 바라보았다. 파리의 밤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소매치기의 천국’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효진은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요 대표님. 편의점이 호텔 바로 근처고, 구글 지도에서도 확인했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그리고 조심할께요.”

호진은 식당 문을 나섰고, 도현은 한동안 말없이 문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기석과 눈이 마주쳤다. 기석은 아무일 없을 거라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였고, 남은 두 사람은 천천히 식사를 마무리했다.


편의점은 호텔에서 도보로 5분 남짓 거리에 있었다. 가까운 거리이기도 했고, 번화가였기 때문에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리고 습한 파리의 공기를 가르며 걷던 효진은 주변 풍경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골목마다 은은한 조명이 비추었고, 거리 공연자의 첼로 선율이 스며드는 밤이었다.

'파리는... 너무 아름다운 도시야.'

효진은 문득 자신이 이런 곳에 출장을 와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편의점에 들러 작은 생수와 견과류, 약간의 캔 음료를 담고 결제를 마친 뒤, 곧바로 되돌아 나왔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효진의 어깨에 걸쳐 있던 가방을 잡아끄는 느낌이 들었고, 이내 끈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가방은 효진의 어깨를 떠났다.

“어...?”

효진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검은 후드티 차림의 청년 두명이 골목 저편으로 뛰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그녀의 작은 크로스백이 들려 있었다.

“잠깐만요! 도둑, 도둑이야! 내 가방!”

파리의 밤이 찢어지는 소리였다. 효진은 본능적으로 몇 발짝을 내디뎠지만, 낯선 도시, 낯선 거리, 발도 손도 묶인 듯한 공포가 그녀의 움직임을 붙잡았다. 섣불리 따라갔다가 휴대폰도 없는 상황에서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호텔 로비로 황급히 돌아온 효진은 거의 울상이 되어 있었다. 효진의 크로스백은 사라졌고 그 안에는 카드와 약간의 현금, 휴대폰, 신분증, 전시회 출입증이 들어 있었다. 타지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연락’ 수단과 '돈'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도현과 기석은 눈물 범벅이 된 효진의 얼굴을 보고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어떻게요, 대표님. 저 지금 막 소매치기를 당한것 같아요.”

효진은 겨우 말을 잇는 듯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도현이 재빨리 물었다.

“어디에서요?”

“편의점에서 나오자마자… 불과 몇 분 전이에요. 누군가가 어깨에 있는 가방을 잡아끄는 느낌이 들어 봤더니, 이미 제 가방을 가지고 골목 어귀로 뛰어가더라구요. 그런데... 골목길이 너무 어두워서, 그리고 무서워서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기석은 망설임 없이 핸드폰을 꺼내 경찰 신고를 준비했다.

“가장 가까운 경찰서가 여긴데, 지금 가야 됩니다. 대표님은 카드사에 먼저 연락해서 사용 중단 요청 넣으시기 바랍니다. 다행히 여권은 호텔 안에 놓아두고 나왔다고 하니, 천만다행입니다.”

“효진 씨, 혹시 휴대폰은 위치 추적 설정되어 있어요?”

“아뇨... 유심은 프랑스 현지용이고, 아직 설정 안 했어요. 어떻게 해요, 대표님...”

도현은 심호흡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우리 모두 처음이잖아요. 하나씩 해결하면 되요.”

그 말에 효진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눈시울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리 경찰서의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 경찰들이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화요일 밤, 이미 세 건의 분실 신고와 교통사고 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효진의 사건은 단순한 도난을 넘어, 외국인 출장자의 전시 참여와 직결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기석은 접수 담당 경찰에게 천천히, 그러나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프랑스어 특유의 유려한 억양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말 속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Je comprends bien que vous êtes occupés ce soir. Mais c’est une participante étrangère à une exposition internationale. Ce n’est pas simplement un vol, c’est une question de sécurité et de confiance envers votre pays.”

(오늘 밤 많이 바쁘신 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절도가 아닙니다. 국제 전시회에 참가 중인 외국인의 사건이며, 귀국의 신뢰 문제와도 연결된 사안입니다.)

경찰관은 처음엔 습관처럼 고개를 저었지만, 기석의 정중하면서도 날카로운 논리 앞에 잠시 멈칫했다. 그 옆에서 도현도 간절한 눈빛으로 경찰을 바라보았다.

“Nous ne vous demandons pas de tout résoudre maintenant. Juste vérifier les caméras de surveillance de la rue ou alerter les patrouilles proches.”

(당장 범인을 잡아달라는 게 아닙니다. 범인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골목 CCTV라도 확인해주시거나, 인근 순찰대에 상황을 공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기석의 말에 경찰관은 그제서야 무전기를 들고 누군가와 프랑스어로 짧게 교신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Nous allons vérifier les images de vidéosurveillance dans cette zone. Mais cela peut prendre un jour ou deux.”

(해당 구역의 CCTV 영상은 요청해보겠습니다. 다만, 영상 확보까지는 하루 이틀 정도 걸릴 수 있습니다.)

기석과 도현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철저히 외국인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대응을 해냈다. 기석의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에 도현과 효진은 내심 깜짝 놀라 있었다. 그리고 도현은 그 옆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한 선생님… 감사합니다.”

기석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해외 전시회 출장에서 도둑맞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으로 외국인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그냥 잊어버리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효진은 그 말을 듣고 다시 고개를 숙였고, 도현은 담담히 말했다.

“그래도 출장 준비할 때 보험도 가입했으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 한국 돌아가면 주민등록증이랑 신용카드 모두 다시 발급 받아야 되겠네요. 현금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죠."

호텔로 돌아온 시간은 새벽 2시, 효진은 호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샤워기를 틀었다. 따뜻한 물줄기가 어깨를 타고 흐르는데도, 몸은 점점 더 차가워지는 듯했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아... 왜 그랬을까, 그냥 대표님, 한 선생님과 같이 움직일걸...”

그리고 끝내, 얼굴을 감싸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단순한 도난 때문만이 아니었다. '책임감'이라는 단어와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생각에 대한 자책이었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때 도현의 말이 떠올랐다.

“괜찮아요. 우리 모두 처음이잖아요. 하나씩 해결하면 됩니다.”


다음날 아침, 효진은 평소보다 더 단정한 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메이크업도 하지 않았고, 눈가에는 여전히 붓기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어제보다 더 단단해 보였다. 그리고 도현은 효진의 전시회 출입증을 별도로 발급받기 위해 주최 측과 협의했고, 임시 출입증을 대신 지급받을 수 있었다. 효진이 가지고 있던 업무용 카드도 정지 처리하고, 현금 일부를 효진에게 건넸다.

“저... 대표님.”

효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 죄송해요. 제 부주의 때문에 이런 일이...”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누구의 탓도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가 더 잘 대비했어야 했던 부분이죠. 이게 출장의 현실이라면, 다음부턴 매뉴얼에 꼭 추가합시다.”

효진은 눈물이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도현이 단순히 '대표님'이 아니라, ‘함께 일할 수 있는 리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 부스로 향하던 도현은 조용히 팀 노트를 열었다. 그 안에는 새로 작성된 한 줄의 항목이 있었다.


[출장 체크리스트 추가]

현지 유심 설정 시 휴대폰 추적 기능 활성화

여권 분실 대비 여권 사본/비상 연락처 구비

팀원별 긴급 연락 체계 및 분실 상황 대응 매뉴얼


그는 펜을 내려놓으며, 오늘의 사건을 곱씹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 불운한 사고. 하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보호하고 함께 움직이는 팀의 모습은 분명히 발전해 있었다.

“하루가 고달팠지만, 어제 덕분에 우리가 더 단단해졌어.”

그는 ‘Cosmetic Europa’ 전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파리는 눈부시게 빛나고 아름다운 도시지만, 그 화려함 아래엔 여전히 무수한 가능성이 숨 쉬고 있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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