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de: 무역왕 김스타 17화

현지로 가보자! 프랑스 파리 전시회 참가(4)

by 이설아빠

전시회 둘째 날 아침, 효진은 한 손에 회사 태블릿을 들고 조용히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어제보다 더 단정한 복장, 그리고 더 또렷한 눈빛. 전날 밤 사건이 없었다면, 그녀의 표정은 달랐을 것이다. 도현은 그녀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효진은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이젠, 괜찮습니다.”

도현은 효진이 걱정되었지만, 타지에서 도현이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파리의 하늘이 유독 흐려 보였다. 도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Cosmetic Europa’ 전시장 주변은 전날보다 훨씬 더 분주해 보였다. 전시회 개막 이틀째, 본격적인 B2B 미팅이 몰리는 날이다. 각국에서 몰려온 바이어들로 전시장은 활기를 띠었지만, 도현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전날 밤, 마티유 드랑이 떠나며 보였던 따봉 제스처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좋았어’라고 말해주는 듯한 그 손짓 하나에 힘이 났지만, 여전히 뷰티스타 코스메틱 부스 앞은 조용했다. 그의 눈길이 스치는 곳마다, 더 정교하고 세련된 부스를 갖춘 경쟁 브랜드들이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그때, 효진이 들고 온 태블릿에서 영상 하나가 반복 재생되기 시작했다. 검은 배경 위로 도시의 네온 불빛이 흘렀고, 수트 차림의 남성들이 거리를 걷는다. 클로즈업된 손에 스며드는 제품, 짧고 강렬한 전환, 그리고 마지막에 떠오른 문구, 'FOR URBAN MEN'

“대표님, 이거 한 번 보시겠어요?”

효진이 태블릿을 도현에게 내밀며 말했다.

“한국에서 만든 거를 바탕으로 보완한 건데, 한번 테스트해 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도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지금 이 분위기엔 이를 반전시킬 수 있는 뭔가 묵직한 훅이 필요했어요.”

효진은 곧바로 태블릿을 부스 앞에 있는 대형 TV에 연결했다. 잠시 뒤, 뷰티스타 코스메틱 부스를 지나가던 시선이 부스 앞에서 조금씩 멈추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추는 사람들, 그리고 영상에 눈을 떼지 못하는 관람객들.

“어? 이거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은데요?”

효진의 말에 기석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도시 남성, 유럽 시장, 비주얼 아이덴티티... 일단 훅인건 확실합니다.”

효진은 땀을 닦으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남성 라인을 강조해 보자고 하셨을 때 떠올랐던 이미지예요. 파리니까, 조금은 세련되게 가보고 싶었어요.”

도현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여기서 우리가 완전히 새로울 수는 없겠지만, 단 하나라도 기억에 남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잠시, 도현은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 깃든 건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뷰티스타팀의 의지였다.


잠시 후,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여기가 뷰티스타 코스메틱 부스 맞을까요?”

도현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지우가 서 있었다. 디자이너로서 단정하지만 센스 있는 복장, 그리고 익숙한 그 눈빛, 도현은 순간 말을 잃었다. 지우의 모습을 보는 순간, 반사적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메시지 속에서만 오가던 이름이었는데, 파리 한복판에서 실제로 마주하니 현실감이 다르게 느껴졌다.

‘이 넓은 파리에서, 정말로 이렇게 마주치다니...’

그의 마음속엔 낯선 땅에서 만난 누군가로 인하여 이상하리만치 진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도현은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그때 지우는 가볍게 웃으며 도현에게 인사를 대신했다.

“늦었죠? 어젯밤에 이것저것 마무리하느라 이제야 들렀어요.”

그리고 지우는 도착 하자마자, 부스를 여기저기 훑어보기 시작했다.

"근데... 혹시 이쪽 조명, 살짝만 낮추는 게 어떨까요? 여기가 너무 밝아서 영상이 죽어요. 그리고 제품 진열 방향을 조금만 조정해 보죠. 지금처럼 하면 동선이 꼬이거든요."

그녀는 몸을 숙여 테이블 위치를 약간 틀었고, 스탠드 조명 각도를 바꾸었다. 그리고 진열된 박스 하나를 치우고,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FOR URBAN MEN'이 적힌 박스를 세웠다.

잠시 뒤, 한 프랑스 바이어가 멈춰 섰다.

"What does this mean? Urban men?"

(이게 무슨 뜻이죠? 도시 남성이라는 게?)

도현이 재빨리 다가갔다.

"It refers to skincare optimized for active, urban lifestyles. Designed for men dealing with city stress, air pollution, and long office hours."

(도시에서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남성들을 위한 스킨케어를 의미합니다. 도시의 스트레스, 대기 오염, 긴 사무실 근무 시간 등에 노출된 남성들을 위해 설계된 제품입니다.)

바이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샘플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도현은 실감했다. 브랜드 연출, 부스 디자인, 문구와 조명 하나가 이토록 관람객의 시선을 바꿔놓을 수 있다니... 그는 지우를 바라봤다.

바로 그때, 기석이 도현을 조용히 불렀다.

"대표님, 제 생각에 오늘 저녁 마티유 드랑과의 저녁 약속에는 저보다 지우 씨가 더 적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히 뷰티스타 브랜드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볼 겁니다."

"그래도, 한 선생님께서 같이 가 주시는 게 더 괜찮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분명히, 지우 씨가 더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넵, 알겠습니다."

도현은 기석과의 대화를 마치고, 효진과 이야기하고 있는 지우에게로 다가갔다.

"지우 씨, 정말 고마워요.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마티유 드랑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는데,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요."

지우는 놀란 듯 미소 지었다.

"네, 제가요? 음... 물론이죠. 도움이 된다면."

그리고 기석이 도현에게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대표님, 잘 아시겠지만 오늘 저녁 자리는 단순한 친목이 아닙니다. 장 베르나르는 '브랜드 이야기’가 진솔하게 들리지 않으면 절대 반응하지 않을 겁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어요. 오늘은 진짜 우리가 왜 이걸 하는지 말해야죠.”

기석은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

“기술, 가격, 유통은 둘째 문제입니다. 오늘 밤에 그들이 듣고 싶은 건, 우리가 왜 이 브랜드를 만들었는가 일 겁니다. 뷰티스타 코스메틱이 존재하는 이유, 꼭 잘 전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신뢰를 주셔야 합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비즈니스는 사람이 하는 겁니다. 지우 씨가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효진도 작게 끼어들었다.

“대표님, 저희도 준비하고 있을게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만 해주시면 됩니다.”

도현은 두 사람의 눈을 마주 보며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오늘, 꼭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올게요.”


오후 3시. 익숙한 실루엣이 부스 앞에 멈춰 섰다. 단정한 정장, 단호한 걸음걸이. 일본계 바이어, 미나 하라다가 다시 나타났다.

“You again. That’s good. It shows consistency.”

(또 뵙네요. 좋습니다. 일관성이 느껴져요.)

짧은 인사와 함께 그녀는 부스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이번엔 어제와는 또 다른 눈빛이었다.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본격적인 검증을 하러 온 듯한 분위기였다.

“This toner,”

(이 토너는,)

그녀는 제품 하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What's the exact alcohol content? And which ferment strains are used in this essence?”

(정확한 알코올 함량은 얼마인가요? 그리고 이 에센스에는 어떤 발효 균주가 사용되었나요?)

순간, 공기가 약간 팽팽해졌다. 도현은 긴장을 느꼈지만,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제품 설명서를 수십 번 넘기며 외웠던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0.3%. It’s low enough for sensitive skin. As for the ferment complex, it includes lactobacillus derived from Korean ginseng root, green tea, and Artemisia.”

(0.3%입니다. 민감성 피부에도 무리가 없는 낮은 수치입니다. 발효 복합 성분은 한국 인삼 뿌리, 녹차, 그리고 쑥에서 유래한 락토바실러스 균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나 하라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라벨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가방에서 어제와는 다른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넸다.

“I have to take this to Germany. We’ll run a blind test with a focus group. If the feedback is solid, we’ll talk numbers.”

(이 제품은 독일로 가져가야겠습니다. 포커스 그룹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피드백이 좋으면, 그다음엔 구체적인 조건을 논의하죠.)

그 말에는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았지만, 그만큼 진심이었다. 기석이 조용히 다가와 도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대표님, 저분... 이번엔 진짜입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명함을 바라봤다. 그 위엔 미나 하라다의 이름과, 일본 최대 유통사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그런가요? 전 사실... 그냥 까다로운 바이어라고만 생각했는데요.”

기석이 웃으며 답했다.

“진짜 바이어는 까다로운 법입니다.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도현은 천천히 명함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건 좋은 신호네요. 진짜 협상의 시작을 의미하는.”


저녁 7시, 파리 시내의 조용한 레스토랑에서 마티유 드랑과 장 베르나르, 도현과 지우가 마주 앉았다. 와인잔이 기울고, 대화는 점점 깊어졌다.

"Your brand… it has clarity. But in Europe, especially France, we don’t just sell products. We sell stories."

(당신의 브랜드는... 특징이 분명해요. 하지만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단순히 제품만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토리’를 팝니다.)

장 베르나르의 말에 도현은 물었다.

"Do you mean marketing narratives?"

(마케팅 서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Not only that. Origin and Meaning. What’s the soul of your brand? Why does it exist?"

(그것만은 아닙니다. 브랜드의 기원, 의미… 당신 브랜드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왜 존재하죠?)

잠시의 침묵. 그리고 도현이 입을 열었다.

"We’re not just trying to revive the skin, we want to help revive life itself. Our formulas are inspired by Korean traditions and nature. At the heart of it is the idea of healing."

(저희는 단순히 피부를 되살리는 것을 넘어, 삶 자체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저희의 포뮬러는 한국의 전통과 자연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 중심에는 ‘치유’라는 철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우가 말을 보탰다.

"And more than just functionality, we wanted to create a sensorial experience, something that resonates emotionally with people living in urban environments."

(그리고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 도시 환경에 사는 사람들과 감성적으로 공명할 수 있는 감각적인 경험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장 베르나르가 미소 지었다.

"Then keep saying that. Whether it’s in your videos or your copy, say it over and over. That’s what the market remembers."

(그렇다면 계속 그렇게 말하세요. 영상이든, 카피라이팅이든, 반복해서 꾸준히 전달해야 합니다. 시장은 결국 그 메시지를 기억하게 됩니다.)


프랑스 바이어와의 중요한 식사가 끝나고, 도현과 지우는 파리의 밤거리를 함께 걷기 시작했다.

"오늘 덕분에 많은 걸 배웠어요."

도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지우 씨 아니었으면, 그 흔한 문구 하나도 못 떠올렸을 거예요."

지우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 제가 뭘 해드렸다기보다는, 그냥 잘하고 계신 걸 조금 다듬어드린 거예요."

한참을 걷다가, 센 강 다리 위에 멈춰 선 두 사람. 야경이 강물에 비치고, 와인빛 조명이 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도현은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과 그 위에 떠 있는 불빛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파리, 멋있네요.”

지우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땐 너무 막막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네요. 누군가랑 같이 걷고 있다는 게... 그리고 지우 씨가 디자인한 부스, 너무 멋있더라구요. 해외 바이어들 모두 한국관 부스를 쳐다보면서 감탄하더라구요.”

지우는 잠시 말이 없다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사실, 제 디자인이 이렇게 좋은 반응을 얻을지 전혀 몰랐어요. 이러한 느낌, 좀 낯설지만, 머 나쁘진 않네요.”

"그리고... 지우 씨."

도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같이 있어줘서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이 전시회, 이번 저녁 미팅, 저한텐 정말 중요했거든요."

지우는 도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엔 조심스러운 공감이 담겨 있었다.

"저도요. 이런 순간, 함께하게 되어 정말 기뻐요."

바람이 조용히 불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약간의 거리감이, 이제는 어느새 익숙함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말없이 나란히 센강 위를 바라보는 그 순간, 도현은 알 수 없는 평온함을 느꼈다. 낯선 도시의 밤인데도, 지금 이 자리가 어쩐지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 함께하는 곳인 것처럼 편안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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