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2025년 한국 경제의 첫 단추는 ‘역성장’이었다. 마이너스 0.2%라는 1분기 성장률은 G20 국가 중 최하위였고, 기약 없는 내수 침체는 체감 경기를 더욱 싸늘하게 만들었다. 어느 골목을 가도 “손님이 없다”는 말이 일상이 되었고,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깊어졌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약 13조 2천억 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그것도 소득별 맞춤형으로 나눠주는 대규모 재정정책이다.
소비를 유도하여 경기를 살리자는 이 처방은 얼핏 보면 코로나 시절 재난지원금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번에는 명확히 '민생회복'이라는 이름을 달고, 물가와 재정이라는 고삐가 풀려 있는 상황에서 시행되었다는 점에서 그 맥락이 조금은 다르다. 이 정책은 정말로 고장난 내수 경제의 엔진을 다시 돌릴 수 있을까?
이번 소비쿠폰은 단순히 ‘1인당 얼마’식이 아니다.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되며, 1차(7월 ~ 9월)와 2차(9월 ~ 10월)로 나뉘어 단계적으로 지급된다. 예를 들어, 일반 국민은 총 25만 원(1차 15만 + 2차 10만), 기초수급자는 최대 50만 원까지 지급된다. 농어촌 인구감소지역 주민에게는 추가로 5만 원이 더 주어진다.
신용카드, 체크카드, 지역사랑상품권, 선불카드 등 다양한 형태로 선택이 가능하지만, 대형마트·백화점·온라인몰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대신 연매출 30억 원 이하 매장, 가맹점 기준 프랜차이즈 등으로 범위가 제한된다. 명확한 정책 목적은 ‘소상공인 매출 증대’다.
그런데 이 ‘사용처 제한’은 일반 국민들에게 복잡하다. 예를 들어 편의점은 가능하지만, 직영점은 불가능하다. 하나로마트는 전국 1,300여 곳 중 10%만 사용 가능하다. 소비자는 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녀야 하고, 가맹점주조차 자신이 해당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돈은 주는데 소비는 조금 어렵게 만든 구조다.
정부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마중물’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그런데 그 물줄기가 정말 시장으로 흘러갈까? 우선, 경제학자들은 이번 소비쿠폰의 소비 창출 효과를 지급액의 20~40%로 추산한다. 전체 예산 13.2조 원 중 최소 2.6조 원, 최대 5.3조 원이 실제 신규 소비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GDP로 환산하면 0.12%p ~ 0.24%p 증가에 해당한다.
여기에 승수효과(1.2~1.5배)까지 고려하면, 최대 7.9조 원의 경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승수효과는 천차만별이다. 지역 치킨집과 미용실, 세탁소에서 사용된다면 승수는 크지만, 저축으로 돌아간다면 아무 효과도 없다.
가장 직접적인 수혜는 소상공인 업종으로 전망된다. 음식점, 미용실, 동네 편의점, 세탁소 등 생활밀착형 서비스 업종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런 업종은 고정비가 높고 손익분기점도 높기 때문에 단기 매출 상승은 체감 효과가 크다. 반면, 대형 유통업체, 온라인몰, 직영 프랜차이즈는 전혀 혜택을 보지 못한다. 일종의 '역차별' 구조라고도 주장할 수 있겠다.
정책의 가장 큰 그림자는 재정 건전성이다. 이번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인해 국가부채는 GDP 대비 0.6%p 더 늘어나 49.6%가 된다고 한다. 이미 정부가 설정한 기준치인 45%는 훌쩍 넘어선 상태다.
단기 재정 확대는 분명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지 수요는 늘고, 고령화는 가속되며,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든다. 한번 시작된 복지는 없애기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소비 진작용 일회성 재정 지출이 반복된다면, 결국 국가 신용등급과 금리,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돈이 물가 상승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정부 부채가 1% 늘면 물가는 최대 0.15%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지금처럼 고물가가 잦아들지 않는 시점에서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실수 하나로 서민의 실질 소득을 다시 갉아먹을 수 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분명한 단기 효과를 가진다. 한동안 소비가 움찔하고, 자영업자 매출이 반짝 상승할 수도 있다. 정부는 ‘국민에게 현금을 쥐어주었다’는 메시지를, 소비자는 ‘잠깐의 여유’를 느낀다. 모두가 웃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뒷면을 보면, 국가는 더 많은 빚을 지고, 사용처를 찾지 못한 소비자는 혼란을 겪으며, 근본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는다. 경기 회복은 결국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한다. 인플레이션, 부채, 비효율적 행정비용 등 지금 드러난 문제들은 결국 모두 구조의 문제다.
결국 이번 정책은 해열제이자 진통제다. 하지만 병을 낫게 하려면 항생제나 수술이 필요하다. 그 ‘수술’은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