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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무역정책, 한미 FTA를 무력화하다!

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by 이설아빠

2025년 7월 3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 69개국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상호관세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8월 7일 0시 1분 발효를 앞둔 이번 조치는 단순한 수치 조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세계 무역질서에 대한 정면 개입이며, 정치·외교·경제 전 영역을 관통하는 일종의 선언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 조치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단순히 '15% 관세'라는 수치 때문만이 아니다. 이번 협상을 통해 드러난 가장 깊은 문제는 바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실질적인 무력화다. 무관세라는 FTA의 효력이 사라졌고, 대신 미국의 국내법과 정치적 판단에 따른 새로운 질서가 강제된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2025년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가 한국과 미국의 FTA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협상+흑자’가 기준이 된 트럼프식 관세


이번 관세 조정에서 백악관이 제시한 기준은 두 가지였다. 바로 대미 무역수지(흑자 여부)와 개별 국가와의 무역 협상 타결 여부다. 이 기준에 따라 69개국은 아래와 같이 분류되었다.


대미 무역흑자국 + 협상 성공국: 15% (예: 한국, 일본, EU 등)

대미 무역적자국 또는 우호국: 10% (예: 영국, 브라질 등)

협상 미진 또는 외교 갈등국: 15% 초과 고율 관세 (예: 시리아 41%, 스위스 39%, 대만 20%)


흥미로운 점은 이 관세율의 기준이 일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협상의 결과뿐만 아니라, 각국의 정치적 노선, 미국과의 외교 관계, 글로벌 전략적 입장 등을 모두 고려해 ‘정무적 판단’을 내렸다.


특히, 브라질은 무역협상이 성공됨에 따라 10%로 확정되었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40% 관세가 추가로 부과되었다. 그리고 미국과 외교관계가 단절된 시리아는 무려 41%의 최고 상호관세율을 받았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 무역 조건보다 정치적 메시지 전달이 우선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은 ‘무역협상 성공국’인데 왜 손해인가?


한국은 협상을 통하여 25%에서 15%로 관세율을 낮추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 ‘15%’는 기존 무관세 체제를 무력화시키는 상징적 수치다. 한국은 2012년 발효된 한미 FTA를 통하여 자동차, 철강, 가전제품 등 대미 주력 수출 품목에 대해 무관세 혜택을 받아왔다. 이는 수출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번 조치로 미국은 FTA 체결국인 한국에 대해 15% 상호관세를 부과하게 되었고, 이는 사실상 기존 협정의 가장 핵심적인 효과가 삭제되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일본이나 EU는 원래 미국과 FTA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15% 관세는 기존보다 소폭 인상된 수준에 그친다. 그러나 한국은 무관세에서 15%로 역진, 즉 ‘퇴보’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구매 약속까지 하였다.


즉, 어려운 상황 속에서 협상은 성공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일방적인 양보에 가까운 구조적 불이익을 떠안게 된 셈이다.(물론, 한국만 일방적인 양보를 한건 아니긴 할 것이다.)


FTA는 살아 있다. 그러나 죽었다.


법적으로 한미 FTA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형해화(形骸化)’, 즉 껍데기만 남은 협정이 되어버렸다. 미국은 자국법(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을 근거로 안보와 산업 보호를 이유 삼아 관세를 부과하였고, FTA의 규정보다 자국법을 우선시하였다.


이는 향후 다른 FTA 체결국에게도 하나의 선례가 될 수 있다. 만약 미국이 언제든 자국 법률을 근거로 일방적으로 협정을 무력화할 수 있다면, 전 세계의 규범 기반 무역 질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WTO 제소나 ISDS(투자자-국가소송제도) 등 국제법 절차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기서 비롯된다.


기업과 산업계, 본격적인 충격 시작


이제 한국 기업들은 미국에 제품을 수출할 때 15%의 관세를 감내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이익 감소를 넘어, 시장 자체에서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자동차, 전자, 철강 등 경쟁이 치열하고 마진이 상대적으로 낮은 산업군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의 대미 투자 약속으로 인해 국내 투자 여력도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중장기적으로 한국 산업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며,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한 준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과제는?


2025년 7월 말 발표된 미국의 상호관세 정책은 단순한 무역조정이 아니다. 이는 글로벌 질서의 변화, 특히 ‘정치가 무역을 지배하는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 있다. FTA는 과거처럼 신뢰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아니게 되었다. 더 이상 법과 조약이 거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국가의 전략, 정무적 태도, 외교적 스탠스에 따라 관세율이 달라지고, 협상의 유불리가 결정된다는 의미다.


한국은 이번 협상을 통하여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무역은 이제 상품의 문제를 넘어 정치의 문제가 되었다. 기업은 무역수지뿐만 아니라 외교지형과 통상리더십의 성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앞으로 한국이 이 새로운 무역질서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경쟁’할 것인가는 단지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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