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샌호세 공항의 늦은 밤, 자동 출입국 심사 게이트의 푸른 불빛이 번쩍였다. 긴 줄 끝에 서 있던 라만은 손에 쥔 폴더를 다시 한번 움켜쥐었다. 인도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의 한 반도체 설계 회사로 향하는 길. “내일 오전 9시 팀 미팅, 오후엔 IP 검증 착수”라 적힌 일정표는 아직 그의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입국 심사대 앞에서 모든 것이 멈췄다.
담당관은 규정이 바뀌었다며 추가 서류와 납부 확인을 요구했다.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다른 줄에서 대기하던 중국계 머신러닝 엔지니어, 한국에서 온 공정 전문가, 동유럽의 펌웨어 개발자 모두 같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본사도 처음 겪는 일이라…”
그 순간 라만은 깨달았다. ‘미국은 여전히 자유와 기회의 땅인가?’ 실리콘밸리를 꿈꾸며 밤을 새워 쓰던 코드, 연구실의 소음, 팀원들과의 화상회의가 한꺼번에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공항의 냉랭한 공기가 던진 질문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유와 다양성 위에 세워진 미국의 혁신 생태계가 구조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실리콘밸리의 회의실을 떠올려보자. 영어로 논쟁이 벌어지지만, 그 속엔 다국적의 사고 체계가 섞여 있다. 한국식 “빠른 실행”, 인도식 “논리적 분해”, 유럽식 “디자인 감수성”, 중국식 “스케일 감각”이 충돌하고, 그 충돌이야말로 새로운 제품을 낳는 화약고가 된다. 이 ‘혼종의 창의성(hybrid creativity)’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대학 연구실과 스타트업, 대기업 R&D 센터는 늘 국적과 전공이 뒤섞인 팀으로 움직였고, 그 속에서 문제 정의, 가설 수립, 실험, 피벗, 출시라는 혁신의 리듬이 세계 어디보다 빠르게 반복됐다.
그러나 문턱이 높아지면, 그 테이블은 더 이상 꽉 차지 못한다. 출입국 심사대에서 멈춰 선 단 한 명이 빠지면, 소스 코드의 한 줄, 설계의 한 픽셀, 실험의 한 매개변수가 비어버린다. 이 작은 구멍이 반복되면 팀은 동질화되고, 동질화된 팀은 낯선 아이디어에 대한 면역을 잃는다. 다양성이 창의성으로 변환되는 미국식 기제가 어디선가부터 끊어지는 것이다.
정책은 종종 숫자와 표로 설명된다. 수수료 인상, 심사 강화, 입국 제한 등 겉으로 보면 행정적 조치의 나열이다. 하지만 혁신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접근(Access)의 문제다.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가, 팀의 킥오프 미팅에 맞춰 합류할 수 있는가, 실패했을 때 옆자리 동료와 다시 설계를 뒤집을 수 있는가. 접근이 막히면, 혁신이라는 산소 공급이 줄어든다.
그리고 그 산소는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하필 그 주에 합류했어야 할 알고리즘 엔지니어가 한 달 늦어지면, 데이터 수집 창은 닫히고, 모델은 계절성 변화를 놓친다. 파운드리 라인의 장비 셋업 스케줄이 미끄러지면, 그다음 단계의 공정 최적화는 전체 분기 손익에 영향을 미친다. 혁신의 타이밍은 자본보다 값비싸다. 문턱을 올리는 정책은 ‘돈이 있으면 통과하는 장벽’이 아니라, 시간과 리듬을 깨뜨리는 파장을 만든다.
자유와 다양성은 추상적 가치처럼 보이지만, 시장에선 벡터(방향)를 가진다. 세계의 우수한 학생과 연구자, 엔지니어, 기업가가 어디로 향하는가? 이 흐름이 기업가치, 투자, 특허, 고용, 심지어 도시의 부동산까지 움직인다.
만약 문턱이 더 높아진다면, 인재의 벡터는 캐나다·영국·호주·싱가포르 같은 대안 허브로 일부 돌아설 것이다. 이미 몇몇 글로벌 기업은 R&D 자원의 분산 배치를 고민하고 있다. ‘미국 본사 + (토론토/밴쿠버) 모델 연구 + (베를린/텔아비브) 보안·임베디드’와 같은 분권형 R&D 아키텍처가 늘어나면, 미국은 혁신의 총연결망에서 허브의 지위를 조금씩 잃는다. 이는 단번에 드러나지 않지만, 3년, 5년, 10년 후 특허의 질과 창업 생태계의 생식력에서 차이를 만들 것이다.
많은 기업과 기관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관행에 의존해 글로벌 인력을 운용해 왔다. 출장과 파견, 단기 체류와 현장 지원 사이의 회색지대를 감각적으로 건너왔다. 하지만 이제 그 회색지대는 빠르게 줄어든다. 심사는 보수화되고, 현장 단속은 구체적이며, 행정 명령은 ‘예외’의 정의를 더 엄격하게 만든다.
그 결과는 단순하다. 준법과 설계, 백업이 경쟁력이 될 것이다. 자유와 다양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관행은 더 이상 혁신을 지탱해주지 않는다.
자유와 다양성은 무제한 개방과 동일하지 않다. 안전, 사기 방지, 내국민 교육·훈련의 중요성은 분명하다. 그러나 혁신 생태계의 관점에선 균형이 핵심이다. 필요 분야에는 신속하고 예측 가능한 통로를 열어주고, 남용에는 정밀 타겟팅으로 대응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그 균형점이 무너질 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인재 확보 비용을 치르면서도 가장 느린 채용·이동 속도를 갖는 역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미국 소비자, 환자, 학생, 납세자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샌호세 공항의 라만은 결국 그날 밤 입국을 허가받지 못했다. 본사 팀은 회의를 연기했고, 한 달 뒤 다시 일정을 잡았다. 그의 자리에 임시로 투입된 외주 인력은 업무를 이어받았지만, 팀의 실험 스케줄은 한 분기 밀렸다. 제품 출시는 미뤄졌고, 그 지연은 작은 수치로 재무제표의 ‘손실’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회계가 담지 못한 진짜 비용은 사라진 가능성이었다.
그가 그 주에 팀에 합류했다면, 모델의 튜닝은 더 빨랐을지 모른다. 반도체 공정의 변수는 한 주 먼저 해결됐을지 모른다. 한 도시의 창업은, 한 국가의 경쟁력은, 그런 미세한 타이밍의 합으로 만들어진다.
미국이 위대한 이유는 늘 문을 열어둔 능력에 있었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부딪치고, 실패를 반복하고, 다시 시도하도록 허락한 제도와 문화, 바로 그 관용의 파이프가 좁아질수록 미국은 조금씩 미국다움을 잃게 된다. 반대로, 필요 분야에 예측 가능한 통로를 열고, 정교한 심사로 남용을 막으며, 국내 교육·훈련을 병행하는 균형을 회복한다면, 자유와 다양성은 다시 혁신으로 돌아올 것이다.
라만이 다시 공항 문을 통과해 팀원들과 하얀 보드 앞에 서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는 방금 배운 규정의 줄글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펜을 꺼내 들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어젯밤 생각한 방법이 있어요. 여기서 모델을 이렇게 꺾어보면 어떨까요?” 그 한 문장으로 프로젝트는 다시 굴러간다. 미국의 혁신은 그렇게, 열린 문과 섞이는 생각 사이에서 자라왔다. 그 문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지금 미국이 가장 서둘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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