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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외환·역외 원화결제: MSCI 로드맵

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by 이설아빠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한국경제 설명회. 글로벌 운용사 대표의 첫 질문은 놀랄 만큼 단순했다. “원화를, 여기서 지금 바로, 24시간 거래할 수 있나요?” 한국 시장의 대답은 오래도록 “아직은…”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외환시장 24시간 개장과 역외 원화결제 시스템 도입을 공식화한 순간, 답은 바뀌기 시작했다. 시간의 벽(야간 공백)과 공간의 벽(역외 결제 부재)을 동시에 허무는 조치, 이 한 문장이 말해주는 변화의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고, 그 파장은 한국 자본시장 전체로 번져간다. 왜 지금인가? 그리고 이 변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


한국은 이미 거래시간을 새벽 2시까지 연장했다. 하지만 이는 “해외 투자자의 하루”를 온전히 포용하기엔 부족했다. 내년부터 ‘원칙적 24시간’으로 전환하고, 해외에서도 원화를 결제·보유·조달할 수 있게 만드는 역외 결제 인프라를 깔겠다는 계획은,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이라는 로드맵과 맞물려 있다.


요컨대, 접근성의 마지막 큰 벽을 허무는 움직임이다. 자본은 길을 따라 흐른다. 길이 곧 규칙이라면, 지금 한국은 길의 폭과 표지판을 세계 표준에 맞춰 새로 바꾸는 중이다.


‘열린 시간’과 ‘열린 공간’이 만드는 새로운 길


변화의 핵심은 세 갈래다. 먼저 24시간 외환시장. 런던 시간대까지만 닿던 거래는 뉴욕, 중남미, 중동까지 실시간으로 이어진다. 밤에도 호가가 붙고 체결이 안정되면 스프레드는 자연히 좁아지고, 대량 주문의 슬리피지도 줄어든다. 헤지 비용이 낮아지면 총거래비용(TC)이 내려가고, 그만큼 주식·채권·파생상품을 보유할 이유가 늘어난다. 가격은 더 연속적으로 형성되고, 한국 장이 닫힌 사이 해외에서만 생기는 ‘야간 갭’의 왜곡도 완화될 것이다.


둘째는 역외 원화결제. 가칭 ‘역외 원화결제기관’을 통해 해외 금융기관이 국내 원화 계좌를 보유해 직접 결제·보유·조달이 가능해진다. 홍콩의 CNH 모델과 닮았으나, 한국은 자본 이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 때문에 국내용/해외용 시장을 이분화하기보다, 전 세계 어디서든 ‘한 시장처럼’ 쓰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해외 투자자의 체감은 단순하다. “들어오고(진입)·버티고(헤지)·나가는(환매)” 모든 경로가 선진국 수준으로 매끈해진다.


셋째는 시장 미시구조의 정비다. 외국인 간 원화 거래·예치·대차의 규칙을 단순화하고, 야간에도 알고리즘·자동매매가 작동하도록 그물망을 손본다. 해외 기관의 등록 절차(RFI)도 명료하게 다듬어진다. 거래시간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밤의 유동성 공급자’가 규칙 위에서 일하도록 만드는 개혁이다. 제도가 유동성을 부르고, 유동성이 신뢰를 부른다. 이 선순환이 자리 잡을 때, 시장은 비로소 체질을 바꾼다.



MSCI 편입 로드맵: 왜 접근성이 관건인가


이 변화는 MSCI의 분류 기준과도 정확히 맞물린다. 경제 발전도, 시장 규모·유동성, 그리고 무엇보다 시장 접근성. 한국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마지막 항목이었다. 외환 헤지 환경, 결제·보관 인프라, 영문 공시의 투명성과 투자자가 실제로 겪는 불편이 체크리스트를 통하여 평가된다. 24시간 FX와 역외 원화결제의 결합은 이 질문에 대한 정면 답변이다.


벤치마크 AUM이 거대한 지수 네트워크에서, 국가지위의 한 줄 표기는 곧 돈의 흐름을 바꾼다. 편입이 현실화되면 패시브·액티브 자금의 자동·능동 유입이 맞물리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대형주의 유동성은 두터워질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리밸런싱으로 인한 변동성이 불가피하나, 중장기적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구조가 완화되는 방향이다.


그러나 리스크 관리도 중요


리스크도 분명하다. 시장이 24시간 열리면 해외 충격이 야간에 즉시 전파될 수 있고, 단기성 자금의 이동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한 안정화 룰과 백스톱이다. 언제 개입하고, 어떤 도구(시장안정조치, 스왑라인 등)를 어떤 순서로 쓰는지에 대한 가이드가 미리 제시되어야 한다.


다행히 외환보유액은 최근 4,000억 달러대에서 증가세를 보이며 8월 기준 4,163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절대규모가 모든 리스크를 덮어주지는 않지만, 야간 변동성을 흡수할 첫 방어선임은 분명하다. 결국 관건은 ‘보이는 규칙’이다. 규칙이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프리미엄을 만든다.


목적지가 아니라, 표준으로 가는 길


이번 개혁은 1997년 이후 한국 시장에 남아 있던 심리적·제도적 경계선을 허무는 작업이다. 24시간 개장은 시간을, 역외 결제는 공간을 연다. 이 둘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접근성 프리미엄’이 생긴다. 만약 우리가 여기에 예측 가능한 안정화 룰과 빠른 제도 정합성, 그리고 영문 공시·거버넌스 개선까지 보태면, 서울은 “아시아의 밤에도 열려 있는” 코어 마켓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원화는 한 걸음 더 준(準)국제통화에 가까워질 것이며, 한국 자본시장의 길은 더 넓고 더 빨라진다.


MSCI 편입은 ‘칭호’가 아니다. 글로벌 자금의 교통망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통행권이며, 그 자체가 표준을 향한 약속이다. 뉴욕에서 던져진 질문, “여기서, 지금, 원화를 살 수 있나요?”에 한국은 마침내 이렇게 답하려 한다. “예, 24시간. 어디서든. 불편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말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드디어 올바른 길 위에서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아제 남은 과제는 단 하나, 길을 멈추지 않고 표준을 향해 걷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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