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작가와의 만남 후기
유난히 날이 뜨겁던 지난 7월 19일, 홍대 부근 연남방앗간에서 <글의 맛, 일기를 에세이로>라는 주제로 이유미 작가와의 만남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작가와의 만남은 지금까지 가장 많은 분들이 참여를 신청해주신 행사였습니다. 막상 시도하려면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이었던 '3 문장 일기'. 10일 동안 480개가 넘는 참가 신청 일기들이 쏟아졌습니다. 만만찮은 필력의 일기들을 보면서 '일기를 에세이를 바꾸는 한 끗 차이, 글의 맛'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님들의 진지함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의 시작 전부터 많은 분들이 일찌감치 모였습니다. 그날 하루 글 짓는 방앗간이 된 연남방앗간. 브런치 작가님들은 일상의 일기가 한 권의 에세이가 되는 방법, 글의 맛을 살리는 ‘참기름 한 방울’ 비법이 나올 행사 장소 이곳저곳을 관심 있게 둘러보셨습니다.
이 날 행사의 주제에 맞춰 연남방앗간 2층에 그동안 브런치 작가님들이 직접 출간한 에세이 책들로 '브런치 책방_에세이 특별전'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다소 협소한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가님들이 주의 깊게 다른 작가들의 책들을 살펴보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조만간 브런치 작가님들이 쓴 새로운 에세이들을 책으로 만나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느낌이 기분 좋게 피어났습니다.
드디어 약속된 7시에 등장한 이유미 작가는 본인을 현재 29CM의 카피라이터, 워킹맘, 글 쓰는 작가이며, ‘글 쓰는 작가’가 자신의 마지막 직업이 되길 바란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유미 작가님은 브런치에서 지난 2년간 연재했던 내용으로, 올해에만 2권의 에세이집 <그럼에도 내키는 대로 산다>와 <문장 수집 생활>을 출간 경험이 있는 작가입니다.
"저도 제 에세이에 ‘왜 여기에 일기를 남기냐’는 댓글을 받은 적 있어요."
본격적인 강연으로 들어가서 작가님은 일기와 에세이의 정의와 차이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작가님도 두 가지의 뚜렷한 차이를 알 수 없었다고 해요. 그러나 저런 댓글을 받은 뒤, 작가님도 에세이에 대해 고민하셨다고 합니다. 작가님이 정리한 그 둘의 차이점은 이렇습니다.
일기는 쓰는 ‘내’가 중심인 글. 자신의 감정들을 시간 순으로, 의식의 흐름대로 나열한 것.
에세이는 읽는 사람이 중심인 글. 본인의 감정에 대한 구체적 사례로 맥락을 파악하고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깨닫는 과정을 쓰는 것.
그렇다면 이런 명확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일기와 에세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유미 작가님은 두 가지의 공통점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일기와 에세이를 써보니 이 둘의 공통점은 ‘솔직함’이라고 생각해요. 더 나은 나를 포장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재미와 공감을 위해 억지 불행을 표현할 필요는 없어요. 글 쓰는 과정에서도 내가 우선이어야 해요. 내가 행복하려고 쓰는 글이니까요."
일기는 솔직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에세이는 솔직한 게 낫다.
결국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솔직함'이 일기와 에세이를 구분 짓는 '한 끗 차이'이며, 글의 맛을 살리는 비법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미 작가님. 그녀는 계속해서 그 글에 있어 ‘솔직함’을 표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과 함께 일기가 아닌 에세이를 쓸 때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이야기했습니다.
1. 관찰 : 세상을 관찰하고 세상을 보는 나를 관찰한다.
제 에세이의 첫 소재는 지하철에서 파는 ‘전동 발 각질 제거기’ 였어요. 평소 필요했던 물건이었지만 파는 분을 부르는 순간, 발 각질이 많은 여자로 보일까 봐 선뜻 사지 못하는 제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괜찮아 보이고 싶은 사람이구나' 저에 대해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고요. 지하철 풍경, 행상인, 각질 제거제, 지하철에 있던 주변 사람들... 그리고 평소 생각지 못했던 나란 사람을 찬찬히 관찰했기에, 이 소재가 에세이로 써질 수 있었어요.
2. 보여준다 : 댓글,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혼자만 보면 그건 일기입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안 좋은 피드백을 주는 사람에게는 되도록 보여주지 마세요. 가급적 칭찬해주는 사람에게 보여주세요. 그래야 계속 써나 갈 수 있어요.
3. 쓰고 있는 사람이 될 것
에세이 작가가 되고 싶다면 에세이를 쓰고 있어야 합니다. 저에게 '에세이 작가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대답해요.
에세이 작가가 되고 싶다면 에세이를 쓰고 있어야 해요.
내키는 대로 일단 쓰세요!
수시로 글감 찾기 : 사소할수록 공감한다.
꾸준히 쓴다 : 문장력이 좋아 꾸준히 쓰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쓰면 문장이 좋아진다.
메모 : 뚜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낫다.
디테일 : '삶은 디테일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디테일에서 공감이 나오고 감동이 나온다.
의미를 의도한다 : 누군가에게 에세이를 소개할 때, 어떤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게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쓴다 : 내가 쓰고 싶은 주제여야, 독자도 읽고 싶어 진다.
대수롭지 않게 시작 : 제대로 알고 써야지가 아닌, 쓰면서 알아 나간다.
다양한 일에 감응할 것 : 영화 책, 드라마, SNS 이슈에 촉각을 세운다.
되도록 한 번에 쓴다 : 내가 한 번에 써야 독자도 한 번에 읽는다.
툭, 끝나도 된다 : 결론에 대한 강박을 버릴 것
두 개의 다른 이야기를 접목해본다 : 자연스러운 연결이 어렵다면 글의 번호 붙이기도 좋다.
많이 읽는다, 필사도 좋은 방법 : 필사를 하다 보면, 글의 풀이가 수학공식처럼 보여요.
빨리 쓴다, 가볍게 쓴다 : 다음에 더 잘 써야지, 이번 글이 끝이 아니니까!
이어서 이유미 작가님에게 사전에 미리 전했던 글쓰기 고민에 대한 문답 시간이 준비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글을 사랑하는' 작가님들의 현실적인 대화들로 공간이 채워졌습니다. 그중에서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브런치 작가님들과 함께 나누면 좋을만한 몇 개의 고민과 답변을 남깁니다.
Q. 제 글을 봐주시는 분들이 생겨서 좋긴 한데 부담이 생겨 의식하게 됩니다. 글쓰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A. 저도 독자들은 당연히 의식됩니다. 독자들을 의식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은 결국 내 글에 대해 욕먹기 두려운 것이고 칭찬만 받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칭찬만 가지고는 글 실력이 늘기는 어렵습니다. 너무 겁먹지 마시고 글쓰기 자체를 스스로 재미있게 생각하셔야 꾸준히 쓰실 수 있습니다.
Q. 내 주변 현실 이야기를 너무 솔직하게 쓰면 혹여나 읽는 이, 예를 들어 가족이 상처받을까 봐 걱정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솔직함에 대해 기준이 있을까요?
A. 저는 책을 쓰고 나면 꼭 시댁에도 책을 선물드려요. 근데 시댁과 관련된 글이 있는 책을 선물할 때 참 신경이 쓰여요. 그래서 저도 시어머니나 시댁 식구들이 제 에세이를 볼 것을 염두하게 되고 퇴고할 때 이 부분을 의식하기도 해요. (웃음) 내용의 흐름을 망치지 않고 솔직함을 유지하는 선에서 퇴고를 하긴 하죠. 꼭 안 좋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쓴다고 다 좋은 글은 아니니까요. 일단 쓰는 것이 중요해요.
"이야기를 쓰느냐, 가족과의 불화를 피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프로 작가라면 누구나 전자를 택해”
작가의 시작, 이사벨 아옌데
Q. 다양한 문구, 인용구들은 평소 메모했다가 적절히 사용하시는 건지, 글을 쓰시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건지요?
A. 저 같은 경우는 다른 작가들이 인용을 잘하는 것이 부러웠어요. 인용구가 있으면 글에 대한 신뢰감이 올라간다고 느껴졌거든요. 저는 필사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필사를 하게 되면 그 문장을 기억하는 정도가 달라요. 글을 쓰다 보면 필사했던 문구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때가 많아요. 그리고 저는 평소에 책 별로 파일을 만들어서, 수집한 문장들을 저장하고, 문서 내 문장을 검색해서 인용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어요. 아니면 순서를 바꿔서 좋은 문장을 발견하고 그 문장로부터 에세이를 한 편을 써보는 방법도 있어요.
하지만 김훈 작가 같은 경우는 작가라면 본인의 이야기를 써야지, 인용구로 남의 글을 빌려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해요. 인용구 사용에 대해서 판단은 본인이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이유미 작가님의 솔직하고 명쾌한 답변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함께 웃고 하다 보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저녁 9시,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에세이를 출간하고픈 꿈을 가진 작가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준비한 행사였습니다. 글은 거짓이 없고 요령이 없습니다. 꾸준히 쓴 만큼, 솔직한 만큼 공감받고, 디테일할수록 풍부해집니다. 앞으로 브런치에 어떤 일기, 어떤 에세이가 쓰일지 기대됩니다.
2시간 동안 글의 맛, 한 방울 비법을 아낌없이 전달해주신 이유미 작가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날씨에 흔쾌히 뜻깊은 시간 함께 해주신 브런치 작가님들께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일기들이 에세이가 되는 그 꾸준한 걸음걸음에 브런치가 함께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