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가진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좋은 글을 읽다 보면 가끔 무릎을 탁 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이렇게 표현하는 방법이 있구나!' 그런 글을 발견하면 작가와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그 작가의 '글력'이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글에는 분명 힘이 있습니다. 지난 11월 크리에이터스 데이 '글력' 강연에서는 작가와 출판 관계자 그리고 브런치가 한 자리에 모여 '글이 가진 힘'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조수용 카카오 대표이사
대표작 : 매거진 <B> 발행인
"일관된 형식을 만드세요, 형식에서 힘이 나옵니다." 매거진 <B>의 발행인이기도 한 조수용 대표님은 형식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B>는 매 호 하나의 브랜드에 대하여 종이책으로만 발행합니다. 인쇄했을 때 느껴지는 무게감,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매거진 <B>가 처음 몇 년을 버티는 동안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는데요. 주기적으로 발행되는 매거진이라는 형식 덕분에 그 시절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왜 인터넷에 쓰는 글은 가벼워 보이고 날아갈 것만 같을까요? 인터넷에 쓰는 글은 담는 모습을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글의 가치를 아무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브런치는 (그런 의미에서) 매거진을 발행하기에 아주 좋은 매체입니다. 브런치 형식의 아름다움은 담긴 글을 돋보이게 해 줍니다. 꾸준한 발행의 힘, 매거진의 힘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조 가수·영화감독
대표작 : 오늘도 무사
요조는 뮤지션으로서의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크고 작은 고비들을 등반해서 넘어갈 수 있었던 계기가 대부분 '편지'였다고 합니다. 글을 쓰는 게 너무 힘들고 피하고 싶었던 그때, 책방에서 어떤 손님이 준 두툼한 편지가 구원과 같았다고 합니다. 첫 문장은 "안녕하세요 언니, 제 취미는 요조입니다"였습니다.
"취미가 왜 요조인지를 일목요연하게 설득하는 논리와 일곱 장의 글이 향하는 지점이 저였다는 사실. 그 많은 활자들을 손으로 옮기는 시간까지 전부 다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몸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고마운 거예요." 요조는 사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게 가장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너무 가깝고 소중해서 피하고 싶고 부끄러운 그 마음. 어쩌면 그 마음을 극복하고 쓰는 첫 줄부터 글력이라는 게 생기지 않을까요?"
편지 쓰기가 어렵다고 느껴질 때, 요조가 전하는 꿀팁은 '시집에 편지 쓰기'였습니다. 시집에 편지를 쓰면, 시인과 2인 1조가 되어 내 부족한 부분을 시인이 채워줄 거라는 안도감이 생긴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편지를 받게 될 분이 큰 슬픔에 잠겨있다면, 심철규 시인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라는 책에 편지를 써서 선물하는 겁니다. 썸 타고 싶은 사람에게는 박상수 시인의 <오늘 같이 있어>라는 책에 뜨거운 마음을 적어봐도 좋겠지요.
대표작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사회에서 관계를 맺는 사람의 몸에는 글이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모두의 몸에는 언어가 쌓이는 겁니다. 몸에 쌓인 언어는 타인에게 매력적입니다. 몸에 묻은 글은 그 세계에서 그 사람만이 길어 올릴 수 있는 그 무엇, 글력입니다."
김민섭 작가님은 '김동식'이라는 또 다른 작가님을 발굴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소개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추천을 많이 받은 글을 읽던 중, '복날은 간다'라는 필명의 재미있는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를 계속 지켜보았는데 이 글쓰기는 무려 1년 반 동안 이어졌습니다. 성수동 한 카페에서 만난 '복날은 간다'님은 주물공장에서 일하는 33살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글쓰기를 따로 배운 적이 없어, 300편이 넘는 글을 올리면서 받은 댓글이 선생님이자 배움의 전부였습니다. 그는 스펀지처럼 댓글에서 글쓰기를 배웠고, 이로써 300번의 작법 수업을 거친 작가가 된 것입니다.
김민섭 작가님은 청년에게 출판을 제안했습니다. 300개 중 20개를 가지고 출판사에 가져갔고 본인이 기획을 맡았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명작가의 책은 며칠 만에 6천 권이 팔렸고 2쇄를 찍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동식 작가님은 그해 가장 책을 많이 판 소설가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물음표를 주변으로 확장시키는 것. 그것이 김민섭 작가님이 이야기하는 글력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장강명 소설가
대표작 : 한국이 싫어서, 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작가님은 글쓰기는 기예라고 이야기합니다. 많이 쓰고 갈고닦아야 글 쓰는 재능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와 운동이 다른 것은 코치가 없다는 점입니다. 사람마다 글쓰기 재능이 다르고 장애물도 달라서 스스로 코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글을 쓰면서 '내가 이걸 잘하는 것 같다' 혹은 '여기서 막히네' 같은 점은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요?
장강명 작가님은 복서를 예로 들었습니다. "내가 인파이터인지 아웃복서인지를 알려면 결국 한 경기를 다 뛰어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경기에 해당하는 분량은 원고지 800매 분량, 브런치 글로는 40~50편이라고 하는데요. 일기처럼 그때그때 쓰는 글이 아니라 미리 기획한 글을 브런치에 50편 써보는 것입니다. 그 한 경기를 뛰면 분명 막히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때 대부분은 포기를 하게 되지만, 그것을 돌파하면 본인만의 테크닉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장강명 작가님은 200매에 막히는 순간이 왔지만 기자 시절 칼럼을 쓰던 방법으로 고비를 넘겼다고 합니다. 그 테크닉은 후에 작가님에게 '도발적'이라는 평을 받게 되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고비를 넘기는 각자의 테크닉. 장강명 작가님은 그것을 글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대표작 : 나를 지키는 말 88
손화신 작가님은 마트료시카 사진을 먼저 보여줬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내 속의 진짜 내가 쓰는 행위'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쓴 글이 일기나 메모에서 그치지 않고 작품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써야 할까요? 손화신 작가님은 작품이라고 불릴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은 나만의 색깔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스타일이 있어야 비로소 내 것, 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타일은 머릿속에 염두에 두고 쓴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추구할 것은 계속 추구하고, 버릴 것은 계속 버리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그 글에는 나만이 남게 된다고 합니다. 마치 마트료시카를 열고 열어서 속 안의 알맹이를 얻어내듯, 손화신 작가님이 말하는 글쓰기는 '묵묵한 빼기의 과정'이었습니다. "글쓰기는 영원한 빼기입니다. 다 뺏다 싶을 때 한 번 더 뺄 수 있습니다."
대표작 : 봄이 달다, 사축일기
문학과 음악의 요정, 강백수 작가님의 '노래 만드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글을 쓰려면 재료가 필요합니다. 주제를 캐치하는 방법은 다양한 사람과의 대화입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알 때가 있습니다. 그게 화두인 것이죠. 물음과 답변이 반복되는 사이, 문장은 쉬이 정리됩니다. 그렇게 구해진 재료로 산문을 씁니다.
곡을 쓸 때는 글을 쓸 때의 정서를 유지하고 곡을 씁니다. 이후에 코드, 곡의 구조도 나옵니다. 산문을 문단으로 썰어서 이 틀에 넣으면 됩니다. 틀에 넣고 나면 부를 수 있도록 깎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글자 수를 맞추는 작업인 셈이죠. 먼저, 멜로디를 노트에 적고 글자를 그 멜로디에 맞춰서 넣는 겁니다. 이렇게 노래의 가사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강백수 작가님은 음악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가 믿는 것은 연주나 음악이 아닌 '이야기의 힘'입니다. 가사를 쓰기 위해 하나의 완전한 산문을 끌어오는 것은 이야기의 힘을 최대한 끌어냅니다. "진짜 글을 써보세요" 담담한 가사와 울림으로 전한 강백수 작가님의 한 마디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 막막해질 때가 있습니다. 왜 이 글을 써야 할까? 이 글이 좋은 글일까? 글을 계속해서 쓰고 발행하는 것은 어쩌면 끊임없는 의문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 6인 6색의 강연에서 작가님들은 글을 쓰다 막히는 지점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고, 그런 때를 돌파해 나가는 본인만의 꿀팁을 방출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마다 강점도 다르고, 장애물도 다릅니다. 여섯 명의 작가님들이 찾아낸 글력은 끊임없이 쓰고 퇴고하며 얻어진 자신만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이 강연이 여러분만의 글력을 찾아내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당신의 글력은 어디서 오나요?
*크리에이터스 데이는 콘텐츠 창작자 육성과 발굴을 위해 마련한 창작자 컨퍼런스입니다.
본 행사는 재단법인 카카오임팩트가 주관하고 (주)카카오, (주)카카오페이지가 함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