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도 결국 타인이다

가족의 비극을 시작하지 않는 법

by 수현씨

오늘 오전. 퍼플레이 컴퍼니, 양성평등교육원, 부너미와 함께한 여성 영화 집담회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식이 부모를 원망할 때 주로 하는 대사인 '엄마는 나보다 더 내 인생 응원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같은 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말에 새겨진 가족이란 이름 아래에서 당연시되는 역할 수행, 돌봄에 대한 강요에 대해 생각한다.

가족이란 뭘까.

가족이란 이름 아래 너무나 많은 고통이 묵인된다. 며느리의 시아버지 돌봄, 엄마의 자식 돌봄, 딸의 엄마 돌봄 같은 일이 비합리적인, 노동에 가까운 맥락에서 가족이란 이름 아래 자행된다.



집담회에서 나눈 가족에 대한 여러 말들 가운데 부너미 대표 이성경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가족은 전적으로 응원하는 관계, 뭐 그런 거 말고 <가장 친밀한 타인>이면 된다고. 가족이란 집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는 타인으로서, 자녀가 어릴 때부터 부모와 독립적인 관계를 맺는 훈련이 되어야 성인이 된 자녀와도 독립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골조의 말씀이었다.

일단 어린 자녀를 돌볼 때, 돌봄 노동을 당연히 부모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도 수행해야 한다. 또한 부모가 자녀의 일에 관심을 가지며 감정을 나누는 것이 당연하듯 자녀 또한 부모의 삶에 관심을 갖고 감정 노동에 동참해야 한다. 가정에서 부모가 아이의 일, 아이의 이야기에만 귀 기울이는 분위기가 아니라 아이 또한 부모의 일, 부모의 하루에 대해서도 귀 기울여 듣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집안일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본인 방 치우기나 빨래 개기 같은 본인이 수행할 수 있는 가사에 동참하는 것이 당연시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족은 서로에게 반드시 헌신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자식에게 온전히 헌신하는 것이 바람직한 부모상으로 그려진다. 특히 자식이 입시철을 지날 때 부모(특히 엄마)는 자식의 미래(사실 학업)에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바친다. 자식이 학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종류의 가사노동-빨래나 설거지, 자기 방청소 같은-은 면제된다. 그 부담은 살림을 하는 양육자에게 전가되게 되는데, 보통은 엄마가 그 부담을 짊어지는 대상이 된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인데, 입시를 지나 20살이 넘은 자녀는 어린이 대접을 받길 원치 않는다. '나만의 의견을 가진 어른'으로 대접받길 원한다. 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성인이 된 자녀와 부모가 집이란 공간을 공유할 시 부모는 여전히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동거인으로서 성인이 된 자녀 역시 가사노동의 일부를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데 한국 정서상 그렇게 되는 경우는 잘 없다. 여전히 부모가 성인이 된 자녀의 밥을 차리고 치우며 집안 대소사 처리를 맡는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경우도 있다. 자녀가 성인이 되자마자 가정의 금전적인 부분을 책임지거나 동생들의 미래를 대신 짊어지거나 부모를 돌보는 감정노동까지 수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성인이 된 엄마와 딸 관계는 이상하게 변질될 때가 많은데, 한국에서 '딸'이란 존재는 엄마의 친구이자 딸이자 배우자의 역할까지도 수행해야 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여기서 K-장녀란 개념을 가져올 수 있다. K-장녀란 단지 대한민국의 맏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맏이의 기능을 수행하는 모든 자식들을 대유한다. 부모의 감정을 살피고, 건강을 챙기고, 집안일을 맡아 처리하는 역할 수행을 하는 모든 자식들을 뭉뚱그려 K-장녀의 고통을 진 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비극은 건강한 거리감이 없을 때 생겨난다.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반드시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감이 물론 서운해질 수 있다. 엄마가 되어서 나를 지지해주지도 않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을 수도 있고 자식이 부모 마음 하나 몰라주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서운한 순간을 무심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가족의 비극이 시작되지 않을 수 있다. 친구가 내 감정을 세세히 다 알아줄 수 없듯, 가족도 친밀하지만 결국 타인임을 받아들여야만 진정으로 안정되고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다. 서로의 삶에 격렬하게 끼어들어 돕지 못해 안달 내거나, 개인의 삶을 지나치게 겹쳐두지 않는 무심한 지지, 무심한 환대가 <가족>이란 관계에 필요하다.


가족도 결국 타인이다.

그것이 서운하거나 슬픈 개념이 절대 아님을, 오히려 그런 거리감을 통해 서로를 더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됨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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